묘한 선택지가 내려온 것은 아마도 아침이었다.
삐삐삐, 알람 시계의 소리가 났고, 누군가 그걸 멈췄는지 딱 소리가 그친 대신 이런 말이 들려왔다.
「히나타군, 두가지 중에 선택하는 문제야. A나 B로 답변해줘. A, 빨리 일어나지 않으면 키스해버림. B, 제대로 일찍 일어나줬으니 키스해줌. 자, 어느 쪽?」
――뭐냐 그 YES or 네, 는.
라고, 히나타가 아직 잠이 가시지 않은 머리로 멍하니 생각하고 있으면 이불 위로 갑자기 무게감이 가중되어 켁, 하고 목소리가 샜다.
위에서 짓누르고 있었다.
「무거워……」
아무리 상대가 말랐다고는 해도 장신의 성인남성이 온몸으로 체중을 맡겨오면 역시 무겁다.
히나타는 이불째 남자를 들어내서 치우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방은 커튼이 걷어져 밝았고 창문으로부터 들어오는 산뜻한 아침햇살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아야야, 하는 목소리가 바닥에서 났다. 그쪽을 바라보면 이불채로 바닥으로 떨어진 코마에다가 마루에 한쪽무릎을 대고 등을 손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시선을 눈치챈 그는 이쪽을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좋은 아침, 히나타군」
「그래……」
「왠지 개운하지 않은 얼굴이네?」
「……뭐냐고 아까의 그 깨우는 방식은」
하품을 하며 방을 둘러보았다.
언제나의 맨션 속 침실으로 햇볕이 잘 들고있고, 아침의 밝은 빛이 구석구석까지 가득 차 있다. 방의 중앙에 있는 더블 침대에서 혼자 잠들어버렸던 것 같다. 평소라면 옆자리에서 잠꼬대하며 다시 잠들자고 졸랐을 코마에다가 오늘 아침에는 드물게도 히나타보다 일찍 일어나 있다. 알람 시계는 그가 멈추었는지 소리 없는 채로 침대의 머리맡에 있었다.
「평범하게 깨우는건 시시할것 같아서 선택지를 내본거야. 재밌었어?」
「아침에 하지 말라고. 선택하는 의미도 없고.」
「그치만」
코마에다는 히나타의 옆자리에 앉아 히나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히나타군 최근 집에 들어오는 것도 늦고, 지쳤다고 말하면서 금방 잠들어버리고. 밤이 안된다면 아침에 놀아버리자, 라고 생각했는걸」
「놀지 말라고……」
「아핫, 미안미안」
자다 일어나서 갑자기 장난을 걸어와도 금방 반응 할 수가 없다. 랄까 졸리다.
히나타의 목소리는 평소 이상으로 무뚝뚝해서, 히나타 자신도 그것을 자각하고 있었지만 코마에다는 그럼에도 기쁜듯이 생글생글 웃고 있다.
오랜만에 이런 얼굴 보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거기서부터, 그래, 최근에는 집에 돌아와도 제대로 대화하지도 않고 바로 잠들었었네, 라는걸 떠올렸다. 지난 출장의 뒷처리가 큰일이라 매일 잔업이 이어졌고 부상을 입은 것도 있어서 지쳐있었다.
코마에다는 미소지으며 히나타를 바라보고 있다. 사고회로가 보통 사람과는 먼 남자이지만 기분이 좋을 때에는 비교적 알기쉽게 얼굴에 드러난다.
기쁜듯한 코마에다의 얼굴을 보며, 혹시 어울려주길 원했나, 라고 생각했다.
「아」
코마에다는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켜 히나타의 앞에 섰다.
「그렇지, 일찍 일어나줬으니 키스해주지 않으면!」
하얀 손이 뻗어와서 잠버릇으로 평소보다 훨씬 뾰족하게 서있는 머리부분의 안테나를 달래듯이 상냥하게 쓰다듬는다. 어린아이 취급하는 듯한 그 행동에, 평소 같으면 그만두라고 소리쳤겠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싫지는 않았다.
「있지 히나타군, 키스해주길 원해?」
「……네가 하고 싶은 거잖아」
「아핫」
코마에다는 눈웃음치며 가만히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마주보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라고 한동안 이러지 않았단 것을 떠올렸다. 그랬더니 아까까지 아무런 생각도 없었는데 갑자기 안절부절해졌다.
코마에다는 숨을 내쉬더니 히나타의 뺨에 손을 대고 눈을 감으며 얼굴을 기울였다. 그와 만나게 된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고 이제 슬슬 익숙해져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히나타는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히나타의 뺨에 살짝 부드러운 감촉이 들더니 작게 츄우, 하는 소리가 났다.
「네, 아주 잘 했어요.」
코마에다는 밝게 웃으며 손을 떼며 물러났다. 매우 기분좋은 듯한 표정이었다.
히나타는 코마에다의 물러난 손과 웃는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보고 입맞춤 당한 자신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리고――이것 뿐이냐고, 라고 내심 생각했다.
아침부터 이상한걸 말해왔으니까 좀 더 대단한게 올거라고 기대했다.
「……지금 걸로 끝?」
「응」
「……어이, 어이어이, 너말야, 그런 식으로 말하면서 왔으면 마지막까지 제대로 하라고」
「에?」
「니가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그……뭐냐 좀 더 대단한게 올거라고 생각했다고」
대체로 코마에다는 이런 류의 서비스정신이 투철해서, 히나타가 따로 부탁하지 않아도 항상 대단한 것을 해준다, 라는 습관이 머릿속에 새겨져버렸다.
딱히 내가 떼를 쓰는 건 아니다, 라고 히나타는 생각했다. 코마에다에게 길들여졌을 뿐이다. 그거야 그런 식으로 말을 걸어오는데 기대하는 건 당연하다고. 보통이다, 보통.
「우으응……대단한 것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지만……그치만 아직 아침이라구?」
코마에다는 곤란한 듯한 얼굴로 창문 쪽을 바라봤다.
밝은 아침햇살이 창문의 금속장식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고 커튼은 바람을 타고 흔들리고 있다. 너무나도 상쾌한 광경이다.
히나타는 이불을 탁탁 두드렸다.
「아침이든 밤이든 관계 없잖아. 내가 개운해지질 못했는데.」
말이 조금 험하게 나갔지만 이제 개운해지는 것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코마에다는 가볍게 어깨를 움츠리더니 알겠어, 라고 말했다.
「그럼, 눈 감아줘……」
눈썹이 내려가고 조금 곤란한듯한 태도를 하면서도 코마에다의 표정은 또 기뻐보여서, 여전히 신난 태도는 이어지고 있는것 같았다.
다가오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역시 일만 하는 건 좋지 않아, 이런 스킨십도 중요하다고, 라고 생각했다. 얼굴이 헤벌레 풀릴 것 같아서 어금니에 꽉 힘을 넣어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하면……
꽝, 하고 머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아프잖아!」
――코마에다 이 자식 장난치지 말라고 여기서 박치기냐!
라고 외치려 벌떡 등을 일으켜세운 히나타는 그 바람에 알람 시계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삐삐삐삐 전자음을 울리는 자명종이 바닥에 나뒹굴며 여전히 소리를 내고 있다. 히나타는 아픈 이마를 어루만졌다. 알람 시계는 항상 침대 헤드부분에 두고 있었는데 왜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건가. 아니, 왜 울리고 있는 거지. 코마에다가 아까 멈췄는데……
방을 둘러보아도 코마에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마의 통증과 알람시계의 위치와 코마에다가 없는 상황을 생각하자, 아무래도 알람시계를 끄려고 침대 머리맡으로 손을 올렸지만 잡지 못하고 떨어뜨린 것이 이마 위에 부딪혀서, 그 통증으로 바닥까지 떨어뜨렸던 것 같다고 판단됐다.
히나타는 다시 한 번 방을 둘러보았다. 언제나와 같은 맨션의 침실로, 열려있는 창문으로 햇볕이 들어오고 있다. 방의 중앙에 있는 더블 침대에서 혼자 잠들어버렸던 것 같다. 평소라면 옆자리에서 잠꼬대하며 다시 잠들자고 졸랐을 코마에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허망하게 비어있었다.
방의 선반에는 코마에다가 두고 간 수수께끼의 장식품이나 수상한 책이 몇가지 남아있어서 그것들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조용히 빛나고 있다. 바닥에는 어젯밤 히나타가 적당히 던져둔 업무용 가방이 굴러다녔다. 코마에다가 있었을 때에는 항상 깨끗하게 청소되고 있었지만, 히나타 혼자 지내게 된 뒤부터는 청소기를 돌리는 횟수도 현저하게 줄어들어 구석구석 먼지가 쌓이고 있었다.
긴 꿈이었다. 게다가 굉장히 좋은 꿈이었다.
한참을 잠에 취해있던 히나타는 겨우 눈을뜨고 거기서 현실을 떠올렸다.
코마에다는 이 방에서 나간 것이다. 두 달도 더 전에.
***
동거인이 가출하더라도, 헛된 꿈을 꾸고 말았더라도, 사회인인 이상에는 평소처럼 같이 출근하지 않으면 안된다.
히나타는 수트를 입고 미래기관의 본부로 향했다. 인도 주위에는 히나타 외의 기관원 사람들이 있어서 모두 빠른 걸음으로 히나타를 앞질렀다. 빨리 걸을 기운도 없고 꿈의 충격때문에 얼빠진 눈을 한 히나타는 계속해서 추월당했다.
「좋은 아침, 히나타군」
본부에 도착하고 복도에 들어서자 등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돌아보면 뒤에 있었던 것은 키리기리로, 당당하게 히나타의 앞으로 와 섰다.
「부상 상태는 어때? 다음주부터 또 출장보내려고 생각중인데. 두시간 후에 3층 회의실에 와주겠어? 출장에 관련된 협의야」
「……어어, 알겠어」
키리기리는 용건만을 말하고 아침에 해야 할 일 때문인지 다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연하이지만 상사이기도 한 그녀의 등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히나타는 무심코 목소리를 올렸다.
「……키리기리!」
키리기리는 몸을 절반만 돌려 바라봤다.
히나타는 애매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 아냐……나중에 보자」
그녀는 조금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을 했지만 히나타의 사소한 언행에 신경쓰지 못할 만큼 바쁜지 다시 앞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키리기리에게 물어보는 것은 나중에 하자, 그녀를 상대로라면 어떻게 질문할지 잘 생각해둬야겠다고 히나타는 생각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소우다가 데스크에 턱을 괴고 커피를 마시면서 하품을 하고있었다.
제14지부에 소속된 77기생들이 모인 사무실이지만 교대로 반란분자의 제압을 위해 나가기 때문에 전원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오늘은 평소보다도 더욱 사람이 적어서 소우다와 코이즈미 밖에 없었다.
히나타는 소우다의 옆에 있는 자신의 책상에 털썩 앉아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소우다, 뭔가 들어온 정보는 없어?」
「……아? 무슨?」
소우다는 반쯤 졸고 있는지 돌아오는 답이 늦었다.
「내가 항상 묻고있는거 말야」
「아아~…? ……아아, 코마에다」
아직 잠에서 덜 깬것 같았지만, 히나타가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니 소우다도 겨우 의식이 깨어났는지 삼백안을 제대로 떴다.
「히나타, 너 아직도 포기 못한거냐?」
어이없다는 목소리가 들려와서 히나타는 무심코 말없이 노려보고 말았다.
「너는 기술분야이고 나와는 다른 인맥도 있고, 지인 중에 누군가 하나쯤은 소문 정도라도」
「없어 없어, 하―나도 없어. 코마에다 일같은거 아무도 모른다니까」
「그래……」
듣기 전부터 예상했던 답이지만 역시 실제로 들으면 조금은 풀죽는다.
어느날 느닷없이 실종된 코마에다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코마에다는 동거하고 있던 히나타의 맨션에서 나갔을뿐 아니라 이 사무실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게 되었고 미래기관의 본부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휴대전화는 연결되지 않는다. 히나타는 기관의 모든 부서에 찾아가 그의 행방을 물으며 돌아다녔지만 모두가 모른다고만 답했다.
「그 녀석, 기관에서 빠진 거 아니야?」
「아니, 기관에 소속되어 있는건 확실해. 인사부에 물어보니 그 녀석의 이름은 아직 명단에 있다고 그랬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답해준 인사부 사람조차도 코마에다의 행방은 몰랐다.
하아아, 생각지도 못한 큰 한숨이 새어나왔다. 소우다는 격려하듯이 가볍게 어깨를 두드렸다.
「그렇게 낙담하지 말라니까. 그자식 언제나 이곳저곳 어슬렁거리고 있었잖아. 조만간 돌아올거라고」
「그렇겠지……」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돌아오지 않는거 아닐까, 라는 불안이 씻겨지지 않아 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뭐―, 어이없는 사이코자식이었지만……너하고는 사이가 좋았었지」
「……」
「코마에다가 사라지게 된게, 네 팔이 골절된거 때문이었던가?」
「……그거랑 다리의 타박상」
「이제 다 완치됐는데말야」
반란분자의 제압을 하는 일을 하러 나갔다가 거기서 부상을 입었다.
히나타는 프로그램에서 깨어난 뒤 미래기관의 일원이 되도록 훈련을 받으며 전투원으로서 활동을 허가받았다. 원래부터 체격도 괜찮고 운동 능력도 나쁘지 않다. 판단력도 나쁘지 않다, 라는 것은 키리기리의 평가였다. 천재이지만 특정 분야에 한해서만 특화되어있는 동료들에 비해 히나타는 한가지 특출난 재주는 없어도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어 에이전트에 적합하다는 보증을 받았다.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임무는 성공적으로 마쳤다. 귀환하던 공항에서 다른 그룹의 폭발테러에 휘말려 날아온 콘크리트 파편이 뼈를 부러뜨린 것이었다.
현장은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응급처치만 하고 미래기관의 본부로 돌아와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다.
마중나왔던 코마에다는 새파래진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히나타의 상처가 팔과 다리 부상뿐인 것을 전해듣고는 일단은 안심한 듯 했다. 그리고는 잠시간 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히나타는 우스운 얘기를 해서 코마에다를 진정시킬 생각으로 부상의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어이없는 우연으로 부상당했다고.
「임무에서는 멀쩡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골절당하다니 정말 운이 없어」
하하, 히나타는 소리내어 웃었지만 그 부분부터 코마에다의 얼굴색은 파랗다고 할까 그걸 떠나서 백짓장처럼 새하얘졌다.
뭔가 쓸데없는 얘기를 해버렸나, 라고 생각했지만 코마에다의 행운의 반동인 불운능력이 오랫동안 없었기에 히나타는 그것의 중대성에 대해서 깜빡 잊고 있었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히나타군, 그건 위험한 징조야. 내 부모님이 살아계셨던 시절 얘기는 했었나? 하지 않았어? 그럼 지금부터 얘기해줄 테니까 잘 들어줘. 처음은 말야, 『운이 없는걸』이라는 부상에서부터 시작됐어. 임무에는 차질이 없었는데 잠깐 방심한 사이에 맞닥뜨리게 되는 그런 부상처럼 말이야. 내 아버지도 그랬어. 내가 어렸을 때에 아버지가 해외출장으로 치안이 나쁜 지역에 가게돼서, 거기에서는 무사했었으면서 귀국한 뒤의 온천여행 중에 교통사고를 당했어. 치안이 나쁜 지역에서는 멀쩡했는데 귀국 뒤에 그런 꼴을 당하다니, 『운이 없는걸』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 불운이 누군가에게 좌우되고 있는 거라면? 그 위험이 점점 심해지는 거라면? 내 아버지는 그랬어. 처음에는 운이 없는 부상이 시작이었어. 히나타군, 슬슬 너도……」
히나타는 도중에 검사받으러 가야했기 때문에 코마에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못했다.
단지 굉장히 싫은 예감이 들어서 코마에다에게 「집에 돌아가서 얼른 쉬어」「난 괜찮아. 무조건 괜찮아.」「어쨌든 집에 돌아가」라고 타일렀었다.
검사는 오래 이어져서 끝났을 무렵엔 이미 밤이 되어있었다.
히나타는 서둘러서 둘이서 살고있는 맨션으로 돌아갔지만 이미 코마에다는 사라진 뒤였다. 그가 자주 출장갈때 사용했던 가방과 코트 등이 옷장에서 없어졌고 그리고 그에게 전해줬던 집의 여벌열쇠가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단 몇 시간 동안에 일어난 일.
그리고 두 달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
점심 전에 회의실에서 키리기리와 만났다.
나에기도 동석해서, 그 두 사람이 모였다는 시점에서 다시 귀찮은 일을 맡게 될 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히나타군 부상은 완치된 거야?」
나에기가 온화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어, 덕분에」
다음에 키리기리가 손에 든 자료를 테이블에 펼치며 막힘없이 말했다.
「또 당신에게 부탁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일손이 부족해서. 행선지는 지난번 당신이 테러와 맞닥뜨렸던 지점이야. 반란분자가 근교 도시에 아지트를 세우고 있어서……」
히나타는 키리기리의 설명을 잠자코 들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전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바쁜 이 두사람과는 좀처럼 직접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다. 코마에다가 실종된 직후 히나타는 맨 먼저 키리기리에게 그의 소식을 물었는데, 그녀는 「모른다」고 즉답했었다.
하지만, 코마에다가 미래기관에 아직 소속되어 있는 것은 히나타가 두달간 조사한 것에 따르면 확실했다. 기관에 이름을 남긴 채로 실종됐다면 상층부로부터 조사 지령이 나올 것이다. (기관원은 절망의 잔당으로 날마다 위협받고 임무 밖에서 납치 감금 등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기관은 동료의 소재를 항상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코마에다가 기관에 소속한채로 실종됐는데 전혀 조사 지령이 나올 기미가 없다는 것은, 사실은 상층부는 그의 행방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히나타가 접촉할 수 있는 인간들 중 가장 상층부에 가까운 것이 키리기리와 나에기였다. 그들은 제14부지의 리더이기도 하고, 부하가 실종된다면 조사지령을 내리는 것도 그들이 할 일이었다.
키리기리는 그 때 「모른다」고 대답했지만, 상황을 생각해보면, 역시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뭔가 사정이 있어서 거짓말은 한 것은 아닐까? 이것이 히나타가 내린 추론이었다.
「――키리기리」
키리기리의 설명을 도중에 자르며 히나타는 목소리를 냈다.
그녀는 자료에서 얼굴을 들고 여느때와 같은 냉정한 눈으로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일은 맡을게. 뭐든지 할게. 그러니까……숨기는 일이 있으면 말해줘」
그녀의 옆에 있던 나에기가 슬쩍 키리기리를 쳐다봤다.
키리기리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무슨 얘기하는 거야?」
「코마에다를 말하는 거야. 전에 물어봤을때 거처를 모른다고 말했지만, 너 사실은 알고 있는거지?」
이번엔 키리기리가 나에기를 바라봤다. 눈으로 신호를 했다기보다는 단지 봤을 뿐인 행동이었다.
그녀는 조금 어깨를 으쓱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당신이 코마에다군의 거처를 묻고 다니는 것은 알고 있었어. 완전히 소문이 났는걸. 자연스럽게 소원해질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인것 같고, 내 판단 실수였던 것 같아.」
「……라는 건」
「코마에다군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 당신의 질문에 거짓말을 했던 건 사과할게」
「……!! 그, 그럼!」
히나타는 무심코 벌떡 일어나서 꽉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키리기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는 특수한 임무를 맡겨두었어.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그리고 은닉성이 높은 일이기도 해. 그 일이 끝날 때까지, 누구에게도 가르쳐줄 수 없어」
파고들 틈도 없이 확실하게 선을 그어버렸다.
하지만 겨우 찾아낸 단서였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 임무는 언제 끝나는데?」
「임무 종료 시기는 미정. 더 늦춰질 수도 있지. 당신도 이 일을 하고 있으니 알잖아?」
「비밀은 지킬게」
「당신에게 얘기한 시점에서 내가 비밀을 발설한게 돼 버려」
키리기리는 팔짱을 끼고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은 무엇을 물어도 말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무표정을 관철하는 그녀를 앞둔 히나타의 머릿속에는 괜찮은 반론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회의실은 일순 침묵이 돌고, 나에기는 뭔가 말하고 싶은듯이 입술을 움직였다.
「오늘 아침……꿈을 꿨어」
히나타는 대뜸 그것만을 말했다.
키리기리와 나에기의 시선이 일제히 히나타 쪽을 향했다.
「나랑 코마에다는, 얼마 전까지 함께 살고있었고……」
히나타는 흘긋 두 사람의 눈치를 봤다. 키리기리는 변함없는 무표정이었고, 나에기는 어쩐지 난처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히나타는 말을 이었다.
「모두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사귀고 있었어」
나에기는 살짝 키리기리 쪽을 바라봤다.
「그래서――」
코마에다와의 관계를 주변에 말한 적은 없었기에, 자신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지만, 이 냉정한 키리기리에게서 정을 얻어내려면 이 정도는 말하지 않으면.
「그래서, 내가 늦잠을 자고 있으면, 그 녀석이 깨워주는 꿈이었어……. 평소에는 반대로 그 녀석이 늦잠을 자고 내가 깨우는 역이지만, 뭐 꿈이니까 좋을대로 바뀌었던 거겠지」
나에기는 흘끔거리며 계속 키리기리를 쳐다봤다.
히나타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나는 그 녀석을 만나고 싶을 뿐이야!」
회의실에 히나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나에기는 이제 거의 눈알이 굴러가듯이 몇 번이고 키리기리 쪽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키리기리는 잠시동안 침묵했지만 이윽고 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나 자신의 수비의무를 지키겠습니다. 당신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녀는 나에기에게 자료를 전달했다.
「본론이 진행되지 않네. 나에기군, 설명은 네게 맡길게」
그러고는 회의실을 나갔다. 히나타의 말에 흔들리는 모습은 조금도 없었다.
――안되는 건가.
히나타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에기는 동정하는 듯한 얼굴로 히나타를 바라봤지만, 일은 일이었다.
「아, 저기, 히나타군, 계속해도 될까?」
「……어」
「현지의 협력자와의 연락을 취하는 방법말인데――」
자신의 책상으로돌아온 뒤, 출장을 위한 자료를 펼쳤다.
결국 회의는 키리기리 대신 나에기가 진행했고, 그는 내내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아서, 신경쓰게 만들어서 왠지 나쁜 일을 한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료를 화면에 띄우고 준비를 하려고 했지만 어떻게 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잠시동안 멍하니 있은 후에, 히나타는 마지막 발악을 생각해내고, 그것을 행동에 옮겼다.
미래기관의 데이터 베이스에 접속하고 각 기관원의 활동장소를 표시하게 만드려는 것이었다. 자신의 ID로 로그인하고 「코마에다」라고 입력해서 검색하면, 순간 삑, 하는 소리가 울리고, 화면에 새 창이 떴다.
『경고』
붉은 글자가 점멸한 뒤 미래기관 전체의 시스템을 관리하는 얼터에고가 팟 하고 표시됐다.
『안 돼 히나타군. 여기서부터는 히나타군의 ID로는 열람 금지야』
「그걸 어떻게든……」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지만, 화면 속의 얼터에고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이 대화 지난주에도 했었지?』
「부탁할테니까―」
『뭔가 해주고 싶어도, 나도 지시된 것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고……앗』
얼터에고는 갑자기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히나타도 그것에 이끌려 덩달아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사무실에는 마침 아무도 없이 히나타 혼자 뿐이었다.
애초에 시스템을 관리하는 얼터에고와 그걸 모니터로 바라보는 히나타는 있는 장소가 다르니까 이런 행동은 무의미한 것이지만, 얼터에고가 너무나도 인간스러워서 그 행동에 이끌리고 말았다.
「얼터에고, 무슨 일이야?」
『지금, 나에기군의 권한으로, 히나타군의 ID의 열람등급이 변경되고 있어』
「뭐……진짜로?!」
「응. 잠시 기다려줘」
또 새로운 창이 열리고, 『loading』이라는 글자가 나왔다.
아까까지의 회의실에서의 나에기의 모습을 떠올렸다. 키리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면피였지만, 사람이 좋은 나에기에게는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역시 나에기, 이래야 우리들의 리더지. 그렇게 생각하며 히나타는 마음 속으로 나에기에게 감사했다.
몇 초가 지나면 『loading』의 표시가 사라지고, 얼터에고는 활짝 미소지었다.
『열람 등급 변경 완료. 히나타군, 코마에다군의 상태를 알고 싶어?』
「어, 가르쳐 줘」
『그럼 오늘 밤 8시에 본부의 신세계 프로그램에 접속해줘』
「……에?」
『경과는 순조로워, 잘 됐으면 좋겠네』
「아니 내가 알고싶은 건 코마에다의 거처……얼터에고! 잠깐만!」
끼익 하는 소리가 나서 오피스의 문이 열린 것을 눈치챘다.
히나타는 즉시 화면을 바꾸고 디스플레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세계 지도를 표시시켰다.
「히나타군, 추가 자료」
온 것은 키리기리로, 히나타에게 USB메모리를 내밀었다.
「아까는 미안해. 하지만 나에게도 업무상의 책임이라는 게 있어」
「어, 어어, 알고 있어. 나도 미안했어」
「이 자료에 문제는 없었어? 다른 것도 준비해줄까?」
「아, 아니, 좋아, 괜찮아. 전혀 문제없어」
「그래?」
히나타는 긴장을 감추면서 답했지만, 키리기리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는 부탁할게, 라고 말한 뒤에 다가온것과 마찬가지로 소리없이 물러났다.
히나타는 주위를 확인하고 키리기리가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판단한 뒤 다시 화면을 전환했다. 얼터에고는 이미 사라지고 데이터 베이스의 검색 화면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한 차례 더 검색을 하려고 했지만 그만두었다.
밤 8시.
본부의 신세계 프로그램.
거기에 가면 어떻게든 되는 모양이다. 얼터에고와 나에기의 양심을 믿기로 하고, 히나타는 이번에야말로 출장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자바워크섬에 있던 신세계 프로그램은 복원 후 업그레이드를 반복하면서 다수의 상황을 재현할 수 있는 종합 치료적 시뮬레이터로 완성되었다. 복제되어 지금은 두대가 본부에 설치되어 있다.
본부에 설치할 때에는 상당히 싸웠던 것 같지만, 모처럼의 기술의 결정을 자바워크 섬에서 동결하게 놔두기에는 아깝다는 것으로 결국은 연구진행이 결정되었던 것 같다.
본부의 지하에는 그 프로그램의 두대가 있고 보통의 기관원으로는 제어실에 들어갈 수 없지만, 히나타는 피험자로서 등록되어 몇 번이고 프로그램을 겪었기 때문에, 자신의 ID로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섬에 있던 프로그램과 똑같이 천장이 높은 널찍한 공간에 프로그램의 중추인 기둥이 들어서있다. 그 기둥에는 피험자를 넣어두는 포드가 몇 대 이어져서,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모든 포드의 뚜껑이 열려있었다.
밤 8시, 히나타는 수트 상의를 벗고 스스로 머리에 센서를 접속한 뒤, 어려움없이 포드에 누워 내부의 패널을 제어했다. 익숙한 일이므로 특별한 긴장없이 그대로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이윽고 포드의 뚜껑이 자동으로 닫혀왔고, 그와 동시에 점점 의식도 멀어져갔다.
***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
부서지는 파도 소리
손바닥에는 모래의 깔깔한 감촉
히나타는 번쩍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따뜻한 공기가 몸을 감싸고 반소매의 팔에도 따뜻한 바람이 닿았다. 눈앞에는 징그러울 정도로 익숙한 자바워크섬의 푸른 빛 바다가 있고, 자신은 모래밭에 쓰러져 누운 채였다. 옆에서 야자수가 미미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히나타군」
그 야자수 그늘에는 나나미도 있었다. 언제까지나 그 시절과 변함없는, 여고생의 모습으로.
그녀는 히나타의 얼굴을 위에서 들여다보며 살짝 미소지었다. 그녀의 교복치마가 남국 바람에 흔들렸다.
「……어, 나나미」
히나타는 일어서서 몸 위의 모래를 털어냈다. 히나타도 고교생 무렵의 아바타가 되어있어서, 육체도 현실보다 젊었고 복장도 학생복 차림이 되어있었다.
「얘기는 들었어. 따라와.」
그녀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고 히나타는 그 뒤를 따랐다.
「일단 목적지로 이동하자. 아, 히나타군이 프로그램에 들어오는 건 오랜만이지? 업데이트 내용에 대한 설명, 필요해?」
나나미는 걸으면서 그렇게 물었다.
두 사람은 첫번째 섬을 걷고 있었다. 위에서 내리쬐는 태양이 피부를 찔렀다.
「업데이트인가……혹시 모르니까 설명해주지 않을래?」
「알겠어」
나나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세계 프로그램의 두 대의 현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신세계 프로그램은 기억의 치환만이 아니라 극히 단순한 치료를 목적으로도 쓸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주로 가벼운 세뇌가 의심되는 절망의 잔당과, 절망의 잔당과의 전투에서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기관원을 위해서 사용되고 있었다. 프로그램에 들어가면 「환자」에게 가장 편안한 시츄에이션이 가상세계에 형성되어 그 시츄에이션 속에서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고 치료를 시도하려는 의도였다. 현재에는 더 미세한 조정을 위해서 실험과 분석을 반복하는 게 한창이었다.
나나미는 여기까지 설명하고는 말을 끊었다.
「뭐, 히나타군은 프로젝트에 들어왔으니까, 이런 건 알고 있었지?」
「……? 아니, 처음 듣는데」
이야기 도중, 두 사람의 앞을 소우다가 지나갔다.
그의 아바타도 갱신되지 않은 채로 히나타랑 나나미와 똑같은 고등학생 시절의 모습 그대로였다. 피곤한듯이 하품을 하고있다.
「소, 소우다?」
히나타가 저도 모르게 소우다를 부르면, 눈치챈 소우다가 나른한 듯이 손을 들었다.
「여, 히나타와 나나미」
「너, 너 여기서 뭐하는 거야?」
「뭐냐니, 저녁 식사 후의 산책 중인데」
「……하?」
「히나타 너도 방금까지 함께 먹었잖아? 장난 치는 거냐?」
히나타는 멀뚱멀뚱 소우다의 아바타를 바라보았다.
히나타의 기억이 확실하다면, 소우다는 오늘 정시 퇴근하고 귀가하고 있을 테였다.
「오늘은 벌써 졸리니까 난 별장에 돌아갈게」
소우다는 그렇게 말하며 한 번 더 크게 하품을 하고 호텔을 향해 걸어갔다.
히나타는 나나미를 바라보았다. 설명해 달라는 의미를 담고.
「어라, 히나타군, 몰랐어? 방금전 소우다군은 NPC야.」
나나미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설명을 이었다.
「업데이트 이후에 나같은 NPC가 많이 추가되었는데, 그동안 있었던 프로그램의 피험자를 모델로 한 NPC야. 방금전 소우다군은, 수학여행 때의 소우다군을 모델로 한 NPC인거지.」
모델로 했다는 표현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소우다 그 자체에 가까웠다. 외모도, 언행도 본인 그대로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렇다면, 내 NPC도 있다는 거네」
「응, 히나타군을 모델로 한 NPC도 물론 있어. 지금의 하나타군이 아니라, 수학여행때의 히나타군을 복사한 것이 말야」
「헤에……」
피험자로서 프로그램 내의 행동은 모두 분석되어 향후에 활용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무서웠다. 낯선 자신이 하나 더 존재하고 프로그램 내에서 독자적으로 살아있다니.
「뭔가, 내가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놀랍네……」
「역시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정신이 불안정하게 된 사람들의 회복에는 타인과 접속해서 즐거운 기억을 갖는 것이 효과적이야. 히나타군들처럼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프로그램에 접속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그만한 인원이 모이는 일은 잘 없으니까. NPC를 사용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기도 하고. 아, NPC는 아직 개발도중이니까 지금은 소우다군과 히나타군이랑 닮아있어도, 조만간에 독자성이 발현되어 전혀 다른 캐릭터가 될 예정이야.」
그 말을 듣고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 프로그램 내에서는 너무 많은 일이 있었기에, 자신과 닮은 존재가 이곳을 활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폭주하지는 않을까, 다른 사람에게 악용되지는 않을까, 불안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나미는 옆에서 히나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읽어냈다는 듯이 척척 대답했다.
「괜찮아. 프로그램은 치료를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NPC는 필요할 때에만 불러낼 수 있고, 악용될 일은 없어」
「……그렇게 바라고 싶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점이란 말이지」
하아, 나나미가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한숨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히나타는 뭐라고 답해야 할 지 몰랐다.
「환자의 스트레스 완화에 효과가 있다면, 폭넓은 NPC 사용이 허용되고 만다…… 구조적인 문제야. 지금 막 이 부분을 조정중이거든, 꽤 손이 많이 갈 것 같아」
「……?」
히나타는 그 말에 대해서 더 자세히 파고들어 설명을 들을 셈이었는데, 나나미가 그것을 가로막듯이 확 얼굴을 들었다.
「도착했어」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물 위의 별장이 있었다.
나나미는 히나타의 별장 앞에 멈춰섰다.
그녀는 얌전한 얼굴로 문을 가리키고 있다. 히나타는 무의식 중에 꿀꺽 침을 삼키며 그 앞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별장이라면, 데이터가 그때 그대로라면 열쇠가 고장나서 누구라도 간단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코마에다는……여기에 있는 건가?」
「있다고 하면 조금 다를까나. 매일 밤 8시에 이곳에 오시거든. 최근 두 달 내내.」
2개월이라고 한다면 코마에다가 실종된 시기와 일치한다.
「오신다」는 표현이 조금 걸렸지만 어쨌든 코마에다는 아직 프로그램에 로그인하지 않았지만 곧 온다는것 같다. 그렇다는 건, 별장 안에 매복해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걸까.
「프로그램 중에 그녀석은 뭘 하는데?」
나나미는 입을 열어 히나타의 질문에 답하려고 했지만 입만 뻐끔뻐끔 움직일 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 나나미?」
나나미가 얼굴을 찡그리며 후우, 숨을 내쉬었다.
「……안 돼. 코마에다군이 이곳에 『환자』로서 오고 있으니까, 치료내용은 사생활 보호 때문에 내 입으로는 말 할 수 없게 되어있어」
「내가 여기에 들어가는 건 괜찮지?」
「지금은 히나타군도 똑같은 『환자』로 로그인되어 있으니까, OK」
「그, 그래」
나나미는 등에 맨 배낭을 부스럭거리며 뒤지더니, 안에서 오래 된 전자학생 수첩을 꺼내들어 히나타에게 전달했다.
「나는 여기서부터는 들어갈 수 없어. 뭔가 일이 생기면 이 학생수첩으로 불러줘. 음성에 반응하도록 되어 있으니까」
「어어」
「그리고, 샤워룸에 시야 방해 필드를 설치했으니 거기 숨어서 지켜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땡큐」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준비해줘서 매우 고마웠다.
나나미는 잘 됐으면 좋겠네, 라고 말했다.
히나타는 자신의 별장 문에 손을 얹었다. 열쇠는 부서진 그대로였다.
슬쩍 안으로 들어가면 그때와 똑같은, 특징없는 방이 눈 앞에 나타났다.
제대로 정리되어 있고, 침대 시트도 깔끔하게 되어있었다. 모노쿠마의 선반이 철거된것이 유일한 변경 사항이었지만 그 선반이 줄어든 덕분에 더더욱 개성이 사라져있었다.
나나미가 지시한대로, 샤워룸에 몸을 숨기고 있기로 했다. 예전처럼 전면이 유리로 되어 방에서 다 보이는 것 같지만, 나나미는 여기에 시야 방해 필드를 설정했다고 말했다. 매직미러 같은 원리일까.
대기시간은 몇 분 정도였을까. 그보다 더 길었을 지도 모른다.
별장의 열쇠가 망가진 문이 철컥 열렸다. 야윈 몸의 남자가 실내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코마에다가 드디어 왔다.
히나타는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코마에다는 고등학생 시절의 모습으로, 수학여행 때의 복장 그대로였다. 그리운 흰색 티셔츠에 카키색 코트를 입고 있다. 왼손도 멀쩡히 달려있어서 그는 그 왼손을 사용해서 문을 닫았다. 샤워룸에 숨어있는 히나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듯 코마에다는 천천히 방을 둘러본 뒤에 침대에 앉았다.
그의 모습을 보는건 2개월 만인가. 프로그램 중이어서 아바타는 고교생의 모습이라 현실세계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의 존재를 드디어 보게되어 히나타의 심장 소리가 빨라졌다. 당장이라도 샤워룸을 뛰쳐나가 이 멍청아 라고 크게 야단치고 싶었다.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던 건지, 뭘 했던 건지. 왜 아무런 말도 없이 모습을 감춘 건지. 그가 사라진 이후 몇 번이나 그의 꿈을 꿨던가. 자고 일어난 뒤의 허망함을 몇 번이나 겪었던가. 이런 기분을 맛보게 한 책임을 지게 하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돌아와주지 않으면 곤란했다.
샤워룸에서 나와 그를 붙잡으려고 생각했다. 그 때였다. 다시 문이 열리며, 새로운 손님이 찾아왔다.
히나타는 그 손님을 보고 흠칫 놀랐다. 찾아온 것은――자신이었던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의 모습을 한 히나타 하지메가, 별장 안에 나타났다.
「히나타군」
코마에다는 미소지으며 침대에서 허리를 일으켰다.
가짜 히나타는 여, 라고 말하며, 일어선 코마에다의 어깨를 가볍게 잡으며 앉도록 부추겼다.
「코마에다, 기다렸어?」
「으응, 나도 방금 왔는걸」
「그래?」
두 사람은 웃으면서 상냥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샤워룸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진짜 히나타는 혼란스러웠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눈 앞의 히나타는 그야말로 옛날의 자신 자체였다. 학생복의 하얀 셔츠에 동안으로 볼에 어린기색이 둥글게 남아있는 앳된 모습. 코마에다 앞에서 조금 수줍은 듯한 모습을 하는 자신을 보고있자니 견딜 수가 없었다.
저 자식은 누구냐고――라고 생각하자마자 바로 답은 나왔다.
NPC. 방금 전에 만났던 소우다는 히나타가 프로그램에 들어온 순간 불러낸 NPC라는 것 같았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히나타가 환자로서 로그인한 순간, 히나타의 스트레스 완화에 가장 효과있는 NPC로서 히나타와 허물없는 사이인 소우다가 가동된 것이다.
히나타를 모델로 한 NPC도 마찬가지로, 코마에다를 위해서 불러낸 것이지 않을까.
침대에 기대앉은 코마에다와 NPC히나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가만히 침대에 앉은채 창문이나 텔레비전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어색하다는 것은 아닌지, 코마에다는 NPC히나타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치고, NPC히나타는 겹쳐진 코마에다의 손을 꼭 잡아왔다.
그 부자연스러운 침묵의 이유를 히나타는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다. 코마에다와 사귀기 시작했을 때, 단둘이 있게 되면 히나타는 쑥스럽고 부끄러워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이런 식으로 무뚝뚝하게 입을 다무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말을 꺼내고 싶지만 꺼내지 못하고, 코마에다 쪽에서 먼저 말해주지 않을까, 그런 태도로 일관했던 옛날의 자신. 이렇게 객관적으로 눈 앞에 펼쳐지는 과거의 자신을 보고있자니,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다.
「있지, 히나타군, 시간도 한정되어 있으니까 말야……」
코마에다는 묘하게 색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NPC히나타의 뺨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그 순간, 히나타는 이해했다. 그의 그 어조에서 눈치채고 말았다. 그건 번개와도 같은 직감으로, 이해한 순간, 등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코마에다는 매일 밤 8시 프로그램에 접속해, NPC히나타를 불러내서, 무엇을 해왔던 것인가.
프로그램은 치료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 스트레스 완화에 효과적이라고 인정되면 NPC의 사용이 허가된다. 나나미가 그렇게 말해준 것이다. 코마에다는 환자로서 로그인해, 스트레스 완화 때문이라는 핑계로 NPC히나타와 무엇을 해왔던 것인가.
――설마, 아니, 그래도 설마 그런 바보같은 짓은……
동요하는 히나타와 상관없이 코마에다는 상체를 들이밀며 NPC히나타에게 입맞췄다.
츄, 라는 소리가 들려와, 샤워룸에 있던 히나타는 무심코 「아아?!」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지만, 음성 방해 필드도 함께 설정되어 있었는지 코마에다는 이쪽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코마에다는 NPC히나타의 어깨를 천천히 무너뜨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이렇게 말했다.
「날 치료해줘……줄곧 외로워서, 너무 불안해. 너와 하지 않으면 내 스트레스는 해소되지 않아. 너의 역할은 환자의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거잖아?」
설명적인 어조였지만 그것이 NPC의 인증에 필요한 말이었는지, NPC히나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NPC히나타의, 코마에다가 말하도록 내버려두고 자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도 과거의 소극적인 자신과 겹쳐져서 히나타는 그것도 싫었지만, 무엇보다도 예상했던 것이 그대로 맞아떨어져서, 황급히 샤워룸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있지, 히나타군, 섹스하자!」
――코마에다는 스트레스 완화를 핑계로 프로그램에 접속하여 NPC히나타를 불러내서 함께 자고 있었다. 그런 거였다.
바보냐고! 라고 소리치고 싶은 기분과, 이대로라면 NPC의 자신과 코마에다의 섹스를 지켜보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기분이 겹쳐져서 초조해졌다.
하지만 샤워룸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손잡이는 얼은듯 굳어져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히나타는 황급히 전자 학생수첩을 들여다보며 「나나미!」라고 외쳤다. 하지만 나나미의 대답은 없었다. 전자 학생수첩 속에서 문자창이 떠올라 설명할 뿐이었다.
『치료 중이므로 출입 금지』
「웃기지마!!」
히나타는 샤워룸의 문을 있는 힘껏 걷어찼지만, 역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치료는 시작되고 말았다.
눈 앞의 광경을, 히나타는 얼빠진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코마에다는 금세 옷을 벗어 던졌고, 발 근처에는 아직 바지가 걸려 있었지만 거의 전라에 가까운 꼴이 되어있었다. NPC히나타는 셔츠 단추를 풀고 코마에다의 위에 올라타서 그의 피부를 어루만졌다.
각도적으로, NPC히나타의 등이 딱 좋은 부분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젖꼭지를 만지고 있는것 같았다.
이렇게 관찰하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기운이 빠졌다.
NPC히나타는 코마에다의 다리 사이에 몸을 밀어넣고 있었고, 코마에다의 하얀 다리가 스르르 뻗어 NPC히나타의 허리를 꼬옥 감쌌다.
「있지, 핥아줘…」
NPC히나타는 말 없이 허리를 구부려 코마에다의 피부 위에 입술을 대고는 가슴의 돌기를 핥았…을 것이라 생각됐다.
「응, 응, 그렇게…앗」
코마에다의 몹시도 만족한듯한 숨소리가 들리며 달콤한 목소리가 단속적으로 울렸다. 히나타의 허리를 감싼 코마에다의 두 발끝이 쾌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동그랗게 오므라들어 꼬물거렸다.
「하아―…, 앗, 저기, 깨물어줘」
샤워룸에서 듣고있을 뿐인 히나타조차 선뜻할만큼 녹아내린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NPC히나타는 코마에다의 바람대로 유두를 깨물어줬는지, 코마에다의 발끝은 점점 동그랗게 말려들었다.
「읏, 으응…, 있, 지, 할짝할짝, 해 줘」
조르는 것이 보통이 아니었다, 라고할까, 굉장히 직구였다.
「흐앗, 앗…그거 좋아…좀 더 해줘……」
점점 달콤함을 더해가는 코마에다의 목소리에 반응하게 될 것 같아, 히나타는 간신히 냉정을 유지했다.
요구가 몹시도 구체적인 것은, 역시 NPC니까 회화부분의 복사에는 한계가 있어서, 섹스의 데이터가 모자라 코마에다가 만족하도록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지시를 세세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분석하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앗, 잠깐 기다려…」
코마에다는 NPC히나타의 움직임을 저지하고,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겨우 얼굴을 볼 수 있게 됐다. 코마에다의 얼굴은 몽롱하게 풀려있었지만 어딘가 완전히 달아오른것 같지는 않게도 보였다.
「좀 더 키스하자, 응?」
NPC히나타가 무언가 반응을 하기 전에 코마에다 쪽에서 팔을 둘러와 키스했다.
그 대사를 지겨울만큼 들은 기억이 있는 히나타는 무심코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직 히나타가 경험이 많지 않았던 시절, 바로 직접적인 행위를 하고싶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려고 서두르면, 코마에다에게 자주 저지당하고는 「좀 더 키스하자」라고 말해졌었던 것이다. 그것을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제대로 전희에 시간을 들여줘, 라는 우회적인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의 히나타는, 코마에다는 키스를 좋아하는구나,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NPC히나타의 움직임 자체는 데이터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매끄러웠지만, 섹스 중이라고 생각하면 초보자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어색했다. 그것이 오래 전 자신의 서툴렀던 섹스를 표현하고 있는듯해, 지켜보는 것이 불편했다.
「응……흐우……」
츄, 츄읍, 하는 소리가 울리고, 코마에다는 얼굴 각도를 바꾸어가며 깊게 입맞추고 있었다. NPC히나타는 그다지 얼굴을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 옛날의 나도 저랬지……코마에다에게 받기만 하고……라고 히나타는 먼 산을 바라볼것 같은 기분이 됐다.
「으응―……하아」
긴 키스를 마친 코마에다가 입을 떼고 숨을 내쉬었다. NPC히나타는 드디어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며 코마에다를 양 팔로 꼬옥 끌어안았다. 그것만으로도 기쁜지, 코마에다는 NPC히나타의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적대며 후후, 작게 웃었다.
평소라면 절대로 볼 수 없는 각도에 있는 표정이었다. 히나타는 샤워룸에서 멍하니, 그 기쁜듯한 얼굴의 코마에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얼굴은 순식간에 흐려지더니 우울하게 변했다.
「히나타군……미안해」
그 말은 NPC히나타를 향해 말한 것일까.
「무슨 일이야?」
NPC히나타가 그렇게 물었다.
「응…, 이런 일을 하게 해서」
「나는 이게 코마에다의 정신 안정으로 이어진다면, 얼마든지 어울려줄 거야」
NPC는 그야말로 치료사같은 어투로 답했다. 코마에다는 조금 슬픈듯이 웃으며 NPC를 응시했다.
NPC히나타의 설정이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섹스는 어디까지나 치료를 위한 행위로, 코마에다와 연인 설정이라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뭔가 신경쓰이는 거라도 있는건가?」
NPC히나타는 코마에다의 등을 천천히 어루만지며 물었다. 코마에다는 힘을 빼고 NPC히나타에게 몸을 기대며, 응, 이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히나타군을 떠올려버렸어」
히나타는 움찔, 하고 경직했다.
문맥을 따져봤을때, 분명히 자신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NPC히나타는 이번엔 코마에다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넘기며, 천천히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나라면 여기에 있잖아」
「여기에 있는 히나타군 말고, 또 다른 쪽 말야」
코마에다는 헤실헤실 웃었다.
「두고 와버렸어. 화내고 있을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거지?」
「응. 나랑 있으면 그는 계속 위험에 처하게 될테니까. 좀 더 일찍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너무 질질 끌었어」
코마에다가 말하는 것을 들으며, 역시 그게 집을 나간 이유였냐, 라고 히나타는 내심 생각했다.
그런건 진작에 각오했었다고, 이제와서 뭘 말하는 거야, 라고 반론해주고 싶었지만, 샤워룸의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 올바른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후회도 하지 않아. 그치만……가끔 굉장히 쓸쓸해져. 멘탈이 약해지고 있는 걸까?」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지」
NPC히나타는 심리 치료사 같은 대답을 했다.
환경의 변화, 라는 단어를 듣고 히나타는 말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코마에다 쪽에서 집을 나간 것이다. 환경을 변하게 한 것은 코마에다 자신이다. 변화를 한탄하는 거라면, 당장이라도 히나타의 곁으로 돌아오면 그만인 이야기였다.
「쓸쓸해서, 너를 만날 때마다 이런 짓을 해버리고……」
「나와 만나는 것으로 네 정신이 안정된다면, 언제라도 와줘도 상관없어」
「아핫」
코마에다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콩, 하고 NPC의 이마를 가볍게 눌렀다.
「우―음, 히나타군이 그런 대사…말할까나?」
「그답지 않았어?」
「모르겠어. 히나타군, 뭐라고 말해줄까~」
샤워룸 안에서 히나타는 작게 혀를 찼다.
히나타가 코마에다에게 해줄 대사 같은건 이미 정해져 있다. 이런 이상한 놀이는 그만두고 당장 내 곁으로 돌아와, 다. 설마 실종중에 이런 멍청한 짓을 하고 있을 줄은. 걱정하게 만든 벌로 한 방 정도는 때리게 해줘라.
진짜 히나타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걸 모르는 코마에다는 또 키스를 재개했다.
「응―…」
그는 NPC히나타의 목에 팔을 두르고 어딘지 기분이 좋아보였다.
「있지, 혀끝 쪽이나, 뒤쪽 빨아줘. 거기 기분 좋아」
「이렇게?」
「응」
「……너, 지금 내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우와, 지금의 나같아.
히나타는 얼굴을 찌푸리며 NPC히나타를 노려보았다.
이 NPC는 히나타 하지메답지 않은 순간과 반대로 히나타 하지메를 아주 닮아있는 순간, 어느 쪽도 공존해서, 자신인건지 타인인건지 볼수록 알 수 없게 되었다.
「으응, 옛날의 히나타군 같아서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어」
코마에다는 즐거운듯한 목소리로 말하며 살짝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키스를 시작했다. 질척이며 서로 얽혀있는 혀끝이 보여서, 히나타는 점점 진절머리가 났다.
「으응…응…」
――이거, 언제까지 이어지는 거냐고……
머리를 쥐어뜯고 싶어졌을 시점에 코마에다가 확 얼굴을 들고, 아, 하고 밝은 목소리를 냈다.
「맞아, 좋은 일이 생각났어. 이왕이면, NPC의 너에게밖에 할 수 없는 일을 해보자!」
코마에다는 NPC히나타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 귓속말하기 시작했다.
방에 두 사람밖에 없는데 웬 귓속말이야, 저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냐고, 라고 히나타는 생각했지만, 덕분에 대화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NPC히나타는 코마에다의 얘기가 끝나자 한동안 기묘하게 침묵했지만, 아무런 감흥도 없는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코마에다가 꺼낸 말의 의미를 몰랐기 때문에 데이터 베이스로부터 정보를 검색하기라도 한듯 한 그런 부자연스러운 침묵이었다.
그는 한 박자 쉬더니 이렇게 말했다.
「펠라말이지? 별로 상관없지만」
샤워룸의 히나타는 커헉, 하고 아무것도 마시지 않은 목에서 뭔가를 역류시키듯 기침했지만, 유리 너머 두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샤워룸의 손잡이는 여전히 굳어진 채로, 전자 학생수첩도 『치료 중이므로 출입 금지』라는 글자만 그대로에 반응이 없었다.
「뭔가 부끄러운걸…」
코마에다는 드물게 수줍은듯한 얼굴을 하곤 침대 위에서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각도가 옆쪽을 향해 있어서 그 중심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아마 보지 않는 편이 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NPC가 그것을 정면에서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진짜 히나타 하지메인 자신은 볼 수 없다는 건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NPC히나타는 로션병을 손에 들고 쑥스러운 기색도 없이 거의 무표정이었다.
「코마에다, 펠라 받아본 적 없었어?」
NPC히나타의 표정은 초기의 나나미가 대답하는데 시간이 걸렸을 때의 멍한듯한 얼굴과 어쩐지 비슷했다. 데이터 베이스로부터 정보를 찾아내는데 신경이 쏠려 표정을 만들 여유가 없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응. 나같은 걸 빨게한다니, 히나타군의 입이 더러워지는걸! 받게될 것 같아졌을 때에도 항상 거부했었어!」
코마에다는 묘하게 한껏 들떠서는 힘차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펠라 해주려고 했을 때마다 단호하게 거부하고, 때리고, 걷어차고, 안테나를 뽑으려는 등의 저항을 해왔던 코마에다의 속마음을 이런 곳에서 알게되어, 히나타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겨우 그런 이유였냐.
「너는 해줬고?」
「나는 괜찮아. 하지만 히나타군이 하는 건 절대로 안 돼」
「그럼 나는?」
「너는……히나타군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히나타군이 아닌걸」
NPC히나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코마에다는 그것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기울였다.
「아, 상처받았어? 미안?」
NPC히나타는 국어책 읽듯이 대답했다.
「아니, 별로」
그는 그대로 예고없이 고개를 숙여 코마에다의 성기를 입에 물었다. 아마도. 코마에다의 허벅지가 딱 알맞게 가리고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응…」
코마에다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히나타는 저도 모르게 샤워룸의 유리를 내리쳤으나 손등만 아파질 뿐이고 유리창엔 금조차 생기지 않았다.
「앗, 이거…엄청…기분 좋네…」
언제나 혈색이 나쁜 코마에다의 뺨에 생기가 돌아 붉게 물들었다. 수줍어하는 건지 웃고있는 건지 애매한 얼굴이었다.
NPC히나타는 하기 불편했는지 코마에다의 허벅지 위에 손을 얹고 확 하고 바깥쪽으로 다리를 벌렸다.
――아, 보인다.
코마에다의 다리가 벌어진 덕분에 샤워룸에 있는 히나타에게도 보이게 되었다. 뭐 별로 보고 싶은건 아니지만, 아마 보지않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래도 모처럼이니까……라고 합리화하며 바라봤다.
NPC히나타는 할짝할짝 귀두 쪽을 핥으며 손으로 기둥을 훑고 있었다.
그리고는 귀두를 덥석 입에 담았다. 그대로 귀두를 빨아내고 있는지, 코마에다의 벌어진 무릎이 부들, 하고 떨렸다.
「앗, 앗……흐아……」
NPC히나타는 NPC인 주제에 약삭빠르게, 귀두를 입으로 우물거리면서 로션병의 뚜껑을 열더니, 손끝을 적신 뒤에 코마에다의 뒷구멍으로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앗 차거」
「미안」
NPC히나타는 바로 성기에서 입을 뗐다.
「아니, 처음할때 같아서 왠지 즐거워」
코마에다는 별다른 뜻 없이 그렇게 말했을지 모르지만, 우회적으로 옛날의 자신이 야유받고 있는 느낌이 들어 히나타는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NPC히나타는 다시 음경을 볼에 가득 차도록 입에 물었다. 오른손은 뒷쪽 구멍을 건드리고 있다.
「응……」
코마에다는 이물감이 있는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후우, 하고 숨을 돌리고, 아마도 힘을 빼고 있는 것 같았다.
NPC히나타는 손가락을 두개로 늘리고, 성기의 뒷편을 끈적하게 핥아올렸다. 코마에다의 성기는 크기는 평균적이었지만 조금 가늘어서, 히나타의 것보다는 빨기 쉽게 보였다.
「으응…하…」
NPC히나타는 손가락을 빼고 꽂기 시작하고, 또 입으로는 재차 귀두부분을 삼켰다. 자신과 거의 똑같은 외모의 사람이 그러고 있는 것을 보게되다니 묘한 기분이었다. 자신의 NPC라는건 과연 자신인가 아니면 타인인가? 외모가 너무 닮아있기 때문에 자신이 저렇게 하고있는 듯한 기분이 조금이나마 들어서, 허리 안쪽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히나타는 머릿속으로 이거 끝나고 나면 때린다, 이거 끝나고 나면 때린다, 를 반복하며 평정심을 유지했다.
앞과 뒤 양쪽을 모두 괴롭혀져서 코마에다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앗…아…아앗」
즈츕, 즈츕 방 안에 생생한 소리가 울렸다.
코마에다는 손을 뻗어 NPC히나타의 귀 언저리를 어루만졌다.
「있지, 있지…앞 쪽, 할짝할짝 해줘…」
또 직구로 조르는 거였다.
NPC히나타는 순순히 지시에 따라서 물고 있는 입을 잠시 떼고 성기의 앞쪽을 할짝할짝 핥았다.
그것에 감격한듯이 코마에다의 무릎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 하아―…, 아아……그거, 기분 좋아」
달콤한 목소리로 울며 무릎을 흔들거린다.
히나타는 핥는 것보다 입에 물어서 해주는 편이 기분 좋았지만, 코마에다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넣고 빼기를 반복하고 있는 손가락이 기분좋은 곳을 문지른 것인지, 이번에는 허리가 움찔 튀어올랐다.
코마에다는 NPC히나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있지, 아까 부분이야」라고 말했다. NPC히나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손가락이 구멍에서 빠진 뒤에, 다시 쑥 밀고 들어갔다.
입으로는 귀두를 끈질기게 빨고 있었지만 움직임이 일정하다고 할까, 너무 똑같은 것만 반복하는 것 아니냐고 샤워룸에서 보고있는 히나타가 멍하게 생각했을 때에, 코마에다는 다시 NPC히나타의 귀를 더듬었다.
뺨에는 완전히 혈색이 돌아 붉어져 있었지만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은 얼굴이었다.
「저기…거기만 계속하지 말고, 여기라던지」
코마에다가 손가락을 뻗어 제 손으로 귀두의 잘록한 부분을 문질렀다. 가늘고 하얀 손끝이 자위를 하듯이 움직였다.
얄팍한 허리도 움찔거리며 손가락을 기분좋은 곳에 닿게하려는 듯이 들떠서는, 스스로 앞뒤로 흔들고 있다.
――우왓, 야해……
히나타는 한순간 그렇게 생각했지만 가볍게 머리를 가로젓고 끝나면 한대 때린다, 끝나면 한대 때린다를 뇌속에서 되풀이했다.
NPC히나타는 순종적으로 시키는 대로 앞쪽을 핥기를 멈추고 이번에는 귀두의 잘록한 부분을 괴롭혔다. 혀 끝으로 낼름낼름하며 핥아져서 그것이 좋았는지 코마에다는 등을 젖히며 입술을 이로 깨물었다.
「응, 으응, 그거, 좀 더」
둔한 NPC도 학습을 통해 슬슬 깨닫게 됐는지 지금까지의 정보를 전부 모아서 괴롭히고 있다.
성기 전체를 빨아올린 뒤에 선단 부분을 할짝할짝 핥고, 귀두의 잘록한 부분을 입술로 잘라내려는듯 물었다. 구멍을 출납하는 손가락은 발견해낸 기분좋은 부분을 세게 꽂아넣거나 문지르거나, 리듬을 바꿔가며 공격했다.
코마에다의 얼굴이 점점 녹아내리기 시작해, 반쯤 열린 입에서 신음 소리가 커져가고 있었다.
「흐…아으…아앗…, 응…」
그는 양손으로 NPC히나타의 귀를 더듬고 매만지고 있었다.
이것저것 지시당해 NPC도 힘들어 보였지만, 허벅지 사이에 끼여서 사랑스럽다는 듯이 쓰다듬어지는 건 조금 좋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앗, 앗, 히나타, 군」
코마에다는 질끈 눈을 감고 히나타의 뒷통수로 손을 돌렸다.
「좋아, 앗」
높은 목소리가 울려서, 무심코 가슴이 두근거렸다.
「히나타군, 히나, 타군, 좀 더 해줘…좋아…」
코마에다의 무릎부터 아래부분이 크게 움직여 발가락이 시트를 밀어내듯이 움찔거렸다. 손은 NPC히나타의 뒷통수를 가볍게 붙잡고, 허리도 흔들려서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이 전해졌다.
――나는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지?
샤워룸에서 지켜보던 히나타는 무심결에 자문자답하고 말았다.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2개월 전에 실종된 이후부터 이런 짓을 하고 있었다니. 히나타가 더 이상 다치지 않기 위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않고 모습을 감췄다는 것은 둘째치고.
넘겨짚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어떻게 봐도 나를 엄청나게 좋아하고 있잖아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도망치는 거야
코마에다의 허리가 움찔 튀어올랐다.
「히나타군, 좋앗, 앗, 앗, 나와…!」
끝은 맥없게, 그는 소리없이 사정했다. 코마에다의 허리께가 불안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NPC히나타가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앗, 하아, 하아…」
분노와, 한심함과, 흥분되는 기분이 여러가지 뒤섞여서, 히나타는 샤워룸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욕망을 뱉어낸 코마에다는 녹초 상태가 되어 침대 위에 온 몸을 맡기고 있다. 하아, 하아, 숨 쉴 때마다 그의 얄팍한 가슴이 오르락내리락거렸다. NPC히나타는 그런 코마에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 상냥한 손놀림에 또 열이 받았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샤워룸의 문 손잡이에 손을 대면……이번에는 스르륵 문이 열렸다.
어라, 라고 생각하며 전자 학생수첩을 보면, 『치료 종료』라고 표시되고 있었다.
히나타는 샤워룸에서 발을 내디디면서 코마에다와 NPC히나타의 앞으로 나섰다. 먼저 눈치챈 쪽은 NPC히나타 쪽이었다. 그는 「아…」라고 조금 멍청한 목소리를 낸 뒤, 무표정으로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자신과 같은 얼굴이 올려다보는 것은 묘한 기분이었다.
「으응…, 무슨 일이야?」
호흡을 추스린 코마에다는 조금 더디게 얼굴을 들었다.
눈 앞에 저승사자처럼 우뚝 서있는 진짜 히나타 하지메와 침대 위에 걸터앉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고 있는 NPC히나타 하지메,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코마에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라? 히나타군이 두명? 나 언제 그런 설정 했었지…」
그는 NPC가 두명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히나타는 우선 자신의 NPC에 눈길을 주고는 학생수첩 너머로 나나미에게 말을 걸었다.
「나나미. 이 자식을 종료시켜」
『라져』
나나미의 목소리와 함께 NPC히나타의 모습에 지직 노이즈가 걸렸다. 그의 모습은 가장자리부터 무너지듯이 사각형 조각들로 분해되어 스윽 사라졌다.
코마에다는 NPC의 소실을 바라보며 멍한 얼굴을 했다.
그러고는 다시 히나타를 올려다보았다. 거기서 겨우 뇌가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는지, 코마에다는 침대 아래에 떨어뜨려 놓았던 코트로 바로 손을 뻗어 히나타가 갖고있는 것과 같은 전자 학생수첩을 꺼내들고 빠른 어조로 외쳤다.
「프로그램 종료!」
『종료해여』
그 틈에 끼어들어 히나타는 학생수첩에 다시 한 번 말했다.
「나나미, 코마에다는 어디서 프로그램에 접속하고 있는거야?」
『관리실의 예비부터야. 히나타군이 접속한 방과 별도로 예비용으로 관리실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로그인하고 있어』
「그 방은 어디 있는데?」
『히나타군이 접속한 방 바로 아래네』
「알겠어. 나나미, 내 로그아웃을 10분 빠르게 해줘. 코마에다는 그 뒤야.」
『라져』
「앗 잠깐만, 그거 치사하지 않아?!」
코마에다가 크게 말하자 히나타는 기다렸다는 듯이 버럭 화냈다.
「뭐가 치사하단 거야! 너 밖으로 돌아오면 두고보자고!」
코마에다는 히나타의 말을 무시하려는듯이 자신의 학생수첩을 향해 소리쳤다.
「우사미, 내 로그아웃을 더 빨리 해줘!」
『할 수 없어여, 치아키쨩의 설정이 먼저 끝나버렸어여』
「에에……」
히나타의 손 안에 있는 학생수첩에 창이 나와, 『로그아웃 준비중』이란 문자가 표시되었다. 코마에다가 갖고있는 학생수첩에도 같은 표시가 나오고 있을 것이다. 그는 원망스러운 얼굴로 학생수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알몸으로 있다는 것에 드디어 생각이 미쳤는지, 이제와서 뒤늦게 드러난 맨 피부 위로 코트를 입더니 거기다 후드까지 뒤집어썼다.
침대 위에서 히나타에게 등을 돌리고, 벽 쪽을 바라보며 몸을 웅크린채 앉아있다. 알기 쉽게도 「피하고 있습니다」라는 꼴이었다.
머리에 쓴 후드모자를 벗겨내고 한 대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지금 그러지 않아도 현실세계로 돌아와서 해도 될 일이다.
「네가 프로그램에서 깨어나는 순간에 바로 붙잡아 줄게. 도망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히나타는 극히 평범한 어조로 그렇게 말 할 셈이었지만, 의도하지 않게도 목소리가 낮아지고 말았다.
후드를 깊게 뒤집어쓴 코마에다는 슬쩍 히나타 쪽을 돌아보더니 슬금슬금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그 눈은 어딘지 모르게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그 눈으로, 재잘거리며 얼버무리려는 듯이 웃었다.
「히나타군…아까까지 NPC의 너와 만났던 탓일까? 진짜 히나타군은 굉장히…그, 표정이 풍부한걸…」
「그건 당연하지. 살아 있으니까」
「뭐랄까, 얼굴이 무서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뜻밖이었다. 프로그램에서 나온 뒤, 현실세계에서 코마에다를 어떻게 할 지 생각하면 웃음이 새어나올 것 같은 기분인데.
「그래? 나는 즐거워서 죽을 것 같은데」
「뭐가 그렇게 즐겁…앗, 말하지 않아도 돼, 듣고싶지 않아」
코마에다는 다시 벽으로 얼굴을 돌리고, 둥글게 몸을 말아 웅크렸다.
히나타는 자신의 신체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눈치챘다. 로그아웃의 징후였다.
「그럼, 나중에 보자」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을 걸었지만, 코마에다는 웅크린 채로 반응하지 않았다. 자포자기한 것처럼 보였다.
――눈을 뜬 순간의 몸의 무거움과, 땅이 발에 닿지 않고 둥실 뜬 듯한 부유감. 만취한 듯한 느낌과 흐릿한 시야. 기분이 나빴지만 이것은 늘상 있는 것이었다.
과거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 프로그램을 여러 차례 반복했던 히나타는 이 감각에 익숙해져 있었다. 피험자의 각성과 동시에 포드가 열리는데, 히나타는 포드가 전부 열리기 전에 의식을 되찾고 몸에 접속된 센서를 얼른 떼어냈다. 포드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열림과 동시에 즉시 밖으로 나왔다.
프로그램 각성 직후는 안정을 취합시다, 라고 배운 것은 완전히 잊어버렸다. 나나미에게 들었던 대로 관리실에서 뛰어나와 계단을 쏜살같이 내려가서 여기라고 생각되는 방의 문에 ID를 가져다댔다.
확실히 그곳에는 프로그램 관리실의 예비로 생각되는 넓은 공간이 있었고 위층보다는 적지만 기둥에 접속된 포드가 몇 대 준비되어 있었다. 뚜껑이 열려있는 포드의 옆을 차례차례 지나쳐 방의 안쪽에 있는 마지막 포드 앞에 멈춰섰다. 반투명의 유리 속에서 코마에다가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수트 상의를 벗어뒀고, 왼손이 존재하지 않아 그곳에 의수를 달고 있다. 분명한 현실세계의 코마에다였다.
포드가 열리고 코마에다가 천천히 눈을 뜨는 것을 히나타는 눈 앞에서 바라보았다.
코마에다의 눈꺼풀이 떨리며 몇 번씩 미세한 깜빡임을 반복한 뒤, 이윽고 천천히 눈에 초점이 맞춰졌다.
깨어난 코마에다는 퍼뜩 놀라는가 싶더니 센서를 쓴 채로 포드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히나타가 그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아, 아파, 놔줘」
「네가 도망치려고 하지 않으면 이러지 않는다고」
코마에다의 팔을 꽉 붙잡은채, 센서를 떼어내고 몸을 끌어올렸다. 그는 날뛰었지만, 프로그램 각성 직후인데다 히나타만큼 프로그램에 익숙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해 움직임이 둔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그대로 히나타에게 끌려갔다.
밤도 깊어 미래기관의 본부 지하층에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덕분에 히나타는 당당하게 수면실 침대에 코마에다를 밀어넣을 수 있었다.
야근의 수면을 위한 파이프 침대가 몇 대 준비되어 있고 발 근처에 담요가 개어져 있었다. 그곳으로 코마에다를 몰아붙였다. 등을 세게 부딪혔는지 우윽, 하는 신음소리가 샜지만 그 정도는 참으라고 말하고 싶다.
「일단, 변명을 들어볼까」
히나타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 말하는 것엔 도가 튼 코마에다는 괴로운듯한 얼굴을 하면서도 술술 지껄이기 시작했다.
「히나타군, 나에게서 떠나는 편이 좋아. 또 네가 다치게 될 지도 모른다고. 나의 이 능력은 아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야. 지난번 너의 부상으로 그걸 잘 알게 됐어. 기관이 최근 평화로워서 그만 방심하고 말았는데, 나는 누구하고도 함께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야」
「너, 프로그램에서 NPC의 나와 섹스할 정도로 날 좋아하면서, 그걸로 괜찮아?」
「그거랑 이거랑은 사정이 달라. 너의 몸이 위험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아까는 그렇게나 좋아한다고 말했던 주제에」
「좋아하지만……좋아하니까 이러는 거……」
말하고 나서야 그 발언의 부끄러움을 깨달았는지 코마에다는 얼굴을 붉혔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귀여운 반응이었지만 슬프게도 코마에다에게 익숙해진 히나타는 맨 먼저 이상하다고 느끼고 말았다. 코마에다치고 너무 솔직했기 때문이다.
코마에다는 대체로 우정의 의미의 좋아해, 에 대해서는 굉장히 수줍어하지만, 애정의 의미의 좋아한다에 대해서는 의미를 알 수 없네, 라던가 취향이 유별나네, 라던가 이상한 말을 잔뜩 말하면서 상황을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았다.
「알아줘……널 위해서란 말야」
코마에다는 야무진 얼굴로 히나타를 올려다보았다.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진심으로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히나타와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게 성가신 거였다.
문득 거기서 코마에다의 왼쪽 의수가 슬슬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깨닫고, 히나타는 그 의수를 꽉 틀어잡았다. 아얏, 하는 소리가 샜지만 무시했다.
「너, 지금 뭐 하려고 했어?」
의수의 앞을 바라봤다.
파이프 침대와 붙어있는 벽에 화재 경보기가 있었다.
이걸 눌러서 사람을 부르려고 했다는 것을 깨닫고, 히나타는 머리 뒤쪽이 급속도로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까지 하는거냐.
「나는……진심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너에게서 떨어져보일거야」
코마에다는 양 팔을 붙잡힌 채로 아래에서 히나타를 노려보고 있었다.
착한 척하면서 화재경보기를 누르려고 했다는 것과, 그리고 이 반항적인 눈을 보고, 히나타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좋아, 때리자
순간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니지, 때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한 손으로 코마에다의 양 팔을 바로 고쳐잡은 뒤, 자신의 수트 넥타이를 풀어 그의 손목을 파이프 침대 머리맡의 기둥에 묶었다. 코마에다는 엑, 꿍얼거리며 팔을 흔들고 날뛰었지만 프로그램 각성 직후라 아직도 움직임이 둔하다. 프로그램을 몇 번이고 반복해 익숙해진 히나타와는 움직임에 차이가 났다.
「잠깐, 히나타군, 여기 야근하는 사람들이 오잖아」
「잠궈두면 돼. 닫혀있으면 다른 층의 수면실로 가겠지」
코마에다가 다리로 얼굴을 걷어찼기에, 아 귀찮네, 라고 생각하며 다리를 벌리게 해서 그 사이로 몸을 밀어넣었다. 아직 발끝이 버둥거리고 있었지만 이걸로 얼굴은 찰 수 없게 됐다.
코마에다는 자신의 자세를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히나타군……말해두겠는데, 무슨 짓을 당해도 난 생각을 바꿀 마음은 없으니까」
「알고 있어」
「그럼 무슨 생각으로」
「일단 널 데리고 돌아간다. 이건 벌써 결정됐어」
「결정되지 않았어」
「그전에 지금 엄청 열받으니까, 일단 그걸 해소하는게 먼저다」
히나타는 팔짱을 끼며 생각하는 척을 했다. 어차피 해야할 일은 벌써 정해져 있었다.
「『나같은 걸 빨았다간 히나타군의 입이 더러워져』인가……」
그 말을 듣고 코마에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히나타는 의식하여 웃는 얼굴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된 미소가 지어졌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좋아, 오늘은 잔뜩 해줄테니까」
「해주지 않아도 돼!」
「거짓말 치지마. 기쁜 주제에」
코마에다는 버둥대며 다리로 등을 걷어찼지만 이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아픈걸」
무심코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면, 그걸 본 코마에다는 순간 히익, 하는 얼굴을 했다. 언제나 저런 식으로 질린 표정을 짓는 것은 히나타 쪽이었기에, 코마에다의 저런 얼굴을 보는 것은 꽤 신선했다.
「아우…아앗, 하앗」
넥타이의 속박은 완전히 풀려버렸지만 코마에다가 달아나려는 듯한 모습은 없었다.
파이프 침대의 위에서 후배위 자세로 퍽퍽 내리치고 있다. 코마에다의 허리가 두려운듯이 움츠러들었지만, 확실하게 붙들어서 놓아주지 않았다. 수면용 침대는 간단하게 만들어져 있는지 끼익끼익 커다란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오랜만에 자안뜩 할 수 있게 돼서, 최고로 기분 좋았다. 벌써 몇번인가 내보낸 뒤였지만 오랜만이라 그런지 아직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옛날의 자신을 모델로 한 NPC는 서툴렀지만, 지금의 히나타는 코마에다의 느끼는 부분을 아주 잘 알고있다. 성기의 안쪽, 전립선을 도려내듯이 예리하게 찔러 문지르면 코마에다의 목소리가 한층 더 높아지고, 박힌 성기를 조이는 힘도 꾸욱 빠듯해졌다. 평소에는 일부러 빗나가게 하면서 애태우지만 오늘은 무조건 가장 기분좋은 곳만을 잔뜩 괴롭혀주고 있었다.
「앗, 앗, 싫, 히익…」
코마에다는 소리를 너무 지른 탓인지 목소리가 쉬어있었다.
하얀 손이 비틀거리며 뻗어와 허리를 꽉 잡고 놓지않는 히나타의 팔을 힘없이 때렸다.
「그만, 그만해…」
찰싹찰싹 몇 번인가 때려졌지만 무시했다.
「지쳤어…」
「…아아?」
「지쳤어어, 쉬게해 줘……」
때리고 있던 손이 힘없이 시트 위로 떨어졌다
히나타는 몇 번인가 안쪽까지 비틀어넣듯이 강하게 박아올린 뒤에 작게 신음하며 욕망을 뿜어냈다. 뿜어내는 동안에도 자극을 구하듯이 허리가 움직이고 말았다. 코마에다의 등골이 바르르 하고 떨린다. 힘없이 고개를 떨군 목덜미의 새하얀 색에 유혹당해, 코마에다의 목에 이를 세워 잘근 씹었다.
전부 싸지른 뒤에 붙잡고 있던 허리를 천천히 놓아주면 코마에다의 몸은 그대로 스르륵 침대 위로 쓰러졌다. 코마에다가 공기를 섭취하려고 헐떡댈때마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거렸다.
「너 안 쌌잖아」
히나타가 그렇게 말을 걸면, 코마에다는 엎드린 채로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됐어……이제 안 나와……」
그는 슬쩍 이쪽을 째려보았지만, 눈 주변이 붉어져있어서 하나도 위협이 되지 않았다. 작게 숨을 내쉬면 코마에다의 옅은 눈꺼풀이 서서히 감겨갔다.
――이제 슬슬 괜찮겠지
히나타는 그렇게 생각하고 코마에다의 힘이 빠질대로 빠진 몸에 팔을 둘러 천천히 뒤집었다.
「잠깐!」
쿵, 하고 후두부에 통증을 느꼈다.
체력을 전부 탕진했을 코마에다가 다리로 얼굴을 차고 있었다. 히나타는 손으로 그 발끝을 눌렀다.
「뭐…하려는 거야…」
코마에다는 팔로 받치고 겨우 몸을 일으키고는 이쪽을 노려보고 있지만 눈은 풀릴대로 풀려서 게슴츠레하고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아니…빨아주려고…」
「하아?!」
코마에다는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손으로 누르고 있는 발끝이 또 날뛰기 시작해 이번에는 발목을 제대로 붙잡아 꽉 눌렀다.
「됐어, 해주지 않아도 좋아, 아니 해주길 바라지 않아」
「뭐야, 아까 NPC한텐 명령했었잖아? NPC한테 말했다는 건 사실은 해보고 싶었다는 소리잖아」
「아니라니까……그거야 그건 히나타군도 아니고……」
「너 그 NPC를 마음껏 『히나타군』이라고 불렀다고」
「모델은 히나타군이니까! 다른 이름도 없고, 그래서 그렇게 불렀지만……그치만 진짜 히나타군인 건 아니고……」
코마에다는 횡설수설 불명하게 중얼거렸다.
히나타로선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 사실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NPC는 해본 적이 있는데 진짜 자신은 해본 적이 없다, 라는 상태인 것이 어쨌든간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상세계의 자신에게 경쟁심이라도 생기고 만 것일까?
뭐 상관없어, 해버리자. 그렇게 생각하고 코마에다의 잔뜩 시달려 풀죽어있는 성기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대면, 그는 얼빠진 비명을 질렀다.
「그만두라니까!!」
손으로 누르고 있는 다리가 심하게 날뛰어 그만 걷잡을 수 없게 되어, 있는힘껏 턱을 걷어차였다. 이건 과연 아팠다.
열받아서 손바닥으로 코마에다를 내리치려고 했지만, 올려다보는 코마에다의 얼굴색이 창백하고 눈도 어딘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모습이었다.
과연 히나타도 코마에다의 이런 상태를 보고는 손을 멈추었다.
이렇게나 싫어한다는 건, 설마, 무슨 트라우마라도 있는건가. 과거에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이. 코마에다의 능력의 반동은 무시무시하니까, 히나타에게 말해주지 않았어도 사실은 과거에 심한 꼴을 당해서, 펠라 당하는 것만큼은 아무래도 싫다, 던가.
생각이 짧았는지도 모른다. 히나타는 얌전하게 손을 떼고 코마에다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코마에다는 한동안 「응우으으」 하는 이상한 소리로 끙끙댔지만, 얼마되지 않아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런 짓을 했다간…히나타군의 입이 더러워지는데다……부끄러워」
코마에다는 입술을 꽉 깨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더러워진다, 는 것은 프로그램 중에도 들었지만, 부끄럽다니?
「그……일단 말해두겠는데. 나, 네 엉덩이에 박아넣거나 하고있는데……키스도 하고. 그건」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야……」
「에…?」
히나타의 머릿속에서 그것들은 비교적 가까운 행위로 묶여있었기에, 별개라는 말을 듣게되어 당황스러웠다.
「그러는 너도 내껄 빨거나 하잖아」
「나는 괜찮아! 네가 하는 건 안돼!」
「하아」
의미를 잘 모르겠다.
그러나 코마에다가 말하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은 뭐 자주 있는 일이었다.
일단 트라우마가 있는 것은 아닌듯 했다. 이유도 이상하고.
반론당하기 전에 얼른 해치우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코마에다가 신음하고 있는 사이 얼굴을 다리 사이로 들이밀어 그의 성기를 덥석 입으로 물었다. 실컷 사정한 탓인지 잔뜩 젖어있고 미묘한 쓴맛이 혀끝에 전해졌다.
코마에다는 「히익」하고 색기없는 비명을 질렀다.
「우와아―! 히나타군이 더러워져……! 우으으으……」
급기야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NPC를 향한 경쟁심에서 시작된 행위라고는 해도, 히나타도 뭘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울 정도로 싫은가.
일단 시작하면 하는 도중에 익숙해져서 기분 좋은 반응을 해주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코마에다는 이미 완전히 전부 다 사정한듯한 모양으로, 그의 성기가 딱딱해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하는 게 너무 늦었다고 할까, 하기 전에 너무 괴롭혀버린 것 같다. 모처럼 NPC의 하는 법을 훔쳐보고 코마에다가 좋아하는 곳을 학습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번에 하자」
히나타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뗐다.
뭐 이걸로 됐나, 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집으로 데리고 돌아갈 거니까,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이제부터는 기관의 비품인 GPS추적장치를 쓰던지 해서 절대로 도망칠 수 없게 대책을 취하지 않으면.
설득이라는 수단이 소용없는 상대이니까, 우선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방법을 먼저 사용하는 편이 좋다. 나쁘다고는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코마에다는 눈을 감고 있었다. 겨우 해방되어 긴장이 풀렸는지, 아니면 지쳐버린건지. 눈가에 눈물 자국이 남아서 편안하게 잠든 얼굴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아무튼 두 달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자, 열받았던 것과 그 밖의 여러가지 감정들이 전부 눈녹듯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아―……, 개운하다」
히나타는 중얼거린 뒤에 엉망이 된 수면실 시트를 어떡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개운했던 기분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다음날 아침까지로, 오전중에 키리기리에게 불려진 히나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특수한 임무를 맡겼었다고, 말했잖아」
그녀는 한숨을 섞어 그렇게 말했다.
미래기관의 본부 회의실에서 다시 협의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회의실에는 아무런 자료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키리기리는 팔짱을 끼고 히나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코마에다군을 말하는 거야. 그와 접촉한 거지?」
「……아, 어어」
「프로그램에 당신의 이력이 남아있었어. 겨우 임상실험이 한창이었는데. 이래서는 처음부터 다시 해야하잖아」
「……에?」
하아, 키리기리는 또 한숨을 내쉬고 긴 은발을 어깨에서 스륵 떨어뜨렸다.
어젯밤 히나타는 코마에다를 차에 태워 맨션으로 데리고 돌아와 몸을 닦아준 뒤에 침대에 뉘어 놓았다. 이러면 안되지만, 이라고 생각하면서 기관의 창고에서 반출한 GPS추적 장치도 오른손에 달아놓았다. 손목 벨트에 열쇠가 달려있어 웬만해선 떼어낼 수 없다. 물론 조만간에 풀어줄 생각은 있었다. 어느 정도 설득시켜서 코마에다의 도망의욕을 감퇴시킨 후에 말이다.
지나친 게 아니라고, 히나타는 합리화했다. 저쪽이 달아나려고 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속박같은 건 절대 아니라고.
「신세계 프로그램의 사용을 일반인에게 허용하자는 계획이 있어. 그것을 대비해 코마에다군에게 임상실험을 부탁했었어」
「어, 어떤 실험이었는데」
틀림없이, 코마에다에게 부탁받은 키리기리가 적당히 거처를 마련해주고 얼버무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직후에, 그 가설이 말도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키리기리가, 미래기관에 아무런 이득도 되지 않는데 코마에다의 부탁을 일부러 들어줄까? 라는 의문이었다. 언제나의 키리기리라면, 일에 관계없는 부탁은 우선 들어주지 않을 것이고, 애인과 다투어서 잠적하고 싶다는게 이유라면 더더욱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키리기리는 실험의 내용에 대해서 술술 얘기했다.
「내용은 여러가지야. 우선 NPC를 늘린 데 따른 거동실험. NPC가 어떤 행위까지 대응 가능한지에 대한 확인.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타입과 접촉을 지나, 프로그램에서의 커뮤니케이션에 몰두하면 어떤 차이가 나오는지……그리고 코마에다군은 왼손이 없으니까 똑같이 신체에 결손이 있는 사람이 가상 세계에서 그 부위를 얻게되면 그것을 어떻게 자각하는가」
「자, 잠깐만 기다려줘」
히나타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거, 키리기리가 부탁한거야?」
「일반인에게 임상실험을 하는 건 곤란하고, 기관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 최적의 피험자를 찾고 있었어. 조건에 맞는 범위 안에 코마에다군이 있었기에 부탁했고, 그는 받아들였어」
「그런 거 나는 들은 적 없다고!」
「신세계 프로그램은 여러가지 문제를 발생시켰었잖아? 일반인에게 사용하게 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아. 그렇기에 임상실험도 비밀리에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극히 일부의 인간들밖에 알지 못해」
나는 당신들이 사귀는 사이라는 걸 몰랐으니까, 알았다면 제대로 가르쳐줬을 텐데, 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그, 그렇지만 나나미도 얼터에고도 그런 얘기는 한마디도……」
「물론 그들에게는 전해줬어. 하지만 나에기군이 당신을 프로젝트 멤버로 설정시켜버려서, 얼터에고와 나나미상은 당신이 프로그램에 들어온걸 임상실험을 보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던 거야」
이왕이면 다른 설정으로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키리기가 한숨을 쉬며 말하는 것을 듣고, 히나타는 힘이 빠졌다.
듣고보면, 얼터에고도 나나미도 확실히 언동이 조금 묘했었다. 「프로그램에 오셔서」라던가, 「경과는 순조롭다」라던가……
「그래서, 당신에게 오늘 부탁할 일 말인데」
키리기리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히나타는 내심 뜨끔했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어쩐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임상실험. 끝나지 않았어. 당신이 난입했으니까」
역시
「다시 한 번 하지 않으면 안되거든. 코마에다군, 당신 집에 있지? 본부까지 데려와주지 않겠어?」
「자, 잠깐. 그 실험이라는 건 언제 끝나는 건데. 코마에다는 2개월이나 행방불명이었다고. 그 사이에 쭉 실험을 했단 거야?」
「그래」
키리기리는 단호하게 답했다.
「실험 기간은 최저 12주. 3개월이야. 도중에 트러블이 생긴 경우에는 좀 더 연장돼. 다시 한 번 코마에다군에게 부탁할거야」
――길어!!
히나타는 속으로만 외쳤다.
「그때 난입하지 않았으면, 앞으로 한달이면 끝났을 텐데……유감이네」
키리기리는 일부러인양 어깨를 으쓱했다.
3개월, 이란 단어에 히나타는 아찔했다. 2개월 보지 못한 것 만으로 그렇게나 초조했었는데, 여기서 3개월 더라니. 그것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
「자, 얼른 데려와」
키리기리는 용서없이 말했다.
히나타는 당황했다. 어젯밤 신나게 해버린 바람에 그 녀석 아직 집에서 자고 있어요, 라고는 말하기가 어려웠다.
「저, 그 녀석 뭔가 지쳐있는 것 같아서……실험도 너무 오래하게 되면 피로가 쌓이는 건 아닐까, 하고……」
「어머, 그래? 딱 좋아. 체력이 소모되어 있을 때 프로그램에 들어가면 어떤 영향이 나오는지 확인하면 되겠네」
――도깨비냐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뿐인데 그런 마음 속 목소리를 읽었다는 듯이 키리기리는 훗, 하고 작게 웃었다.
「농담이야. 코마에다군의 체력이 회복된 뒤에 데려와」
농담인데 전혀 웃을 수가 없었다.
히나타는 자신의 뺨이 굳어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번에는 석달씩이나 구속하지 않아. 2개월 분은 벌써 끝났으니까, 추가로 한 달만 하면 돼」
키리기리는 아무래도 먼저 떨어뜨린 후에 올려주는 타입인 것 같았다. 1개월, 이란 말을 듣자 히나타의 굳었던 뺨이 조금은 느슨해졌다. 한 달이라면, 뭐.
그 때, 수트 안쪽에 넣어두었던 단말기가 삐삐삐 소리를 내며 울었다. 그건 GPS추적 장치 수신기로, 꺼내서 확인하면 대상이 이동을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이동 방향은 맨션에서 기관 본부로 향하고 있었다.
대상은 물론 코마에다로 아무래도 그는 깨어난 뒤 본부로 오고있는 것 같았다.
「마침 이리로 오는 것 같아」
히나타가 중얼거리자 키리기리가 옆에서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그거, 이곳의 비품 GPS발신기네. 코마에다군에게 달았어?」
「에? 어어」
「……헤에……」
키리기리의 빤한 눈빛을 보고 그제서야 히나타는 수신기를 치웠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일에 관계없는 곳에 비품을 사용하는 것은 규칙 위반, 물론 히나타는 알면서도 그것을 사용했다. 나중에 신청서를 내면 되겠지, 라는 적당한 기분으로. 사용한 이유도 곤란했다. 애인이 달아날 것 같아서 위치를 파악하고 싶다는 이유라니. 게다가 키리기리라는 상사 앞에서 보이고 만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곤란했다.
「아니 이건, 그게」
「비품을 허가없이 사용하는 것은 규칙 위반이야」
「……네」
「할 일이 늘어났네. 내일까지 반성문을 제출하도록」
「죄송합니다……」
거기서부터 잠시간 코마에다가 도착할 때까지, 원래 제14부지는 미래기관 중에서도 미묘한 입장에 있다, 나에기는 지금까지 당신들을 너무 오냐오냐했다, 다른 부서들이 안 좋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적어도 순순하게 규칙 정도는 지켜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자각이 부족하다 등등의 설교를 당했다. 결국에는, 당신들은 이제 어른이니까 관계에 관해서는 간섭하지 않겠지만 GPS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라는 키리기리의 개인적인 지적도 잔뜩 받았다.
수신기 안의 대상은 서서히 본부로 다가오고 있어, 코마에다는 곧장 본부로 향하는 듯했지만 어제 그런 일을 당하게 했으니 그에게서도 불평을 듣게될 것이 뻔했다.
「듣고 있어? 히나타군」
「듣고 있습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엎친데 덮친 격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질리지 않고, 또 코마에다가 도망치려고 할 때의 방안을 멍하니 생각했다. 임상실험이 앞으로 한 달 남았다고 했으니 그 사이에 잘 생각해둬야겠다.
'번역1' 카테고리의 다른 글
un Quote 上 (R-19) (1) | 2016.12.07 |
---|---|
[히나코마] 스레소설 섹스리스커플 (0) | 2016.11.02 |
[히나코마] 스레소설 여장2 (0) | 2016.11.02 |
[히나코마] 스레소설 여장1 (0) | 2016.11.02 |
[카무코마] 그 날, 연구실에서 (R-19) (0) | 2016.1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