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코마, 히나코마





*단간론파 0, 1, 2의 스포가 크게 포함

 (2013년 책이기에 단간3애니 설정과는 무관)

*성적인 표현을 포함

*범죄, 폭력표현과 시체표현 있음

*조작과 망상이 과다 포함됌

*특정 질병 상태나 의료행위를 상기시키는 기술은 픽션으로써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님







창 밖으로부터 햇빛이 들어오는 일은 완전히 사라져, 불을 넣지 않은 실내는 어둠에 휩싸였다. 전등의 스위치는 마주보고 앉은 두 사람의 중간 부분에 있었지만 어느 쪽도 그것에 손을 뻗지않고 있었다.

실내는 결코 넓지 않아서, 예전에 머물렀던 연구실의 6분의 1정도의 공간밖에 없었다.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두 사람은 모두 등을 벽에 기대고 있었는데, 아무렇게나 뻗어놓은 서로의 발끝이 이따금 부딪힐 정도로 좁았다.

남자는 건너편의 무기력한 상대를 향해서 반응을 강요하듯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너를 들이밀면, 어느 놈이던 눈을 크게 뜨고서 놀라겠지」


어둠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상대는 내팽겨놓고 있던 다리를 제 쪽으로 접더니 텅 빈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별로, 아무도 놀라지는 않아」


입술을 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재회를 하면서부터 그의 입술은 계속 힘없이 열려있는 채였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사람을 날카롭게 꿰뚫던 그 눈빛도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망가진 인형인걸, 남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능동적인 기능을 하지 않으려고 했고, 그럴 기력조차도 잃어버린듯 했다.

남자는 벌떡 몸을 일으키고 일어서서 천천히 상대방 쪽으로 다가갔다. 땀이 날 정도는 아니지만 실내는 슬슬 더워지고 있었으므로, 느슨해진 넥타이의 매듭을 난폭하게 풀어내서 바닥에 던지고는 그대로 그의 옆에 앉았다.


「모두 빠짐없이 얼굴을 보고 싶어할 게 틀림없어. 설마 그 유령이 정말로 실제했다, 라고 듣게된다면 말야」


위트를 섞어 농담을 말해본 것이었지만 길게 늘어진 흑발이 창백한 얼굴의 양쪽에서 흔들흔들 흔들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유령같은 모습이라, 웃을 수 없는 농담이 되고 말았다.

그는 원래 그렇게까지 체격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때보다 상당히 야윈 것처럼 보였다. 공허하게 입술을 벌린 채인 표정과 맞물려서 그 인상은 마치 딴 사람 같았다.

과거에 함께 있었을 때에는 뭔가 말하려고 하면 바로 시시하다는 듯한 얼굴로 대답을 해줬었는데. 하지만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런 한때의 일은 이제 그의 머릿속에는 없는 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필요하다고 원해지지 않게 된 그를 도운 것이, 과연 그를 위해서였는지 어떤지를 생각하면, 남자는 고개를 끄덕일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황폐한 거리에서 잠적했던 그를 숨겨주고 이렇게 여기에 데려온 것은 자신을 위해서였다. 그를 구하려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죽은 거라고 생각했던 그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에 말 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와 자신은 잘라도 떼어낼 수 없는 관계에 있으니까. 이미 모교가 사라지고 수년이 지났고 서로 학생도 아니게 된 지금, 그와 자신을 연결하는 것이 있다고 하면 그건 그에게 품고있는 죄책감 뿐일지도 모른다.

왜 단념하지 못했던 걸까. 그런 후회는 셀 수 없을 만큼 했지만 이제와서 답이 나올 리도 없다. 답이 이미 나와있는 상황에서, 이렇다 저렇다 따질 일도 아니었다.

그가 얼굴을 들어 지금 뭐라고, 라며 허술한 목소리로 되물어왔다.


「그러니까, 모두 네 얼굴을 보고싶어 한다는 거다」

「……모두?」


드물게 반응다운 반응을 해줬기에 남자는 놀라서 주의깊게 그를 관찰했다. 겨우 입을 열 기분이 든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면, 그는 또 힘없이 벽에 몸을 기대며,


「누구도, 그런 것에는 흥미가 없어. 어느 한 사람도……」


라고 공허하게 중얼거리며 눈을 닫아버렸다.

긴 손발을 아무렇게나 내버려둔채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은 유령이라고 하기보다는 무덤에서 기어나온 시체 같았다.

데리고 나온 것이 과연 쓸모가 될 지 어떨지 의심스러웠지만 그의 재능을 끌어낼 수 있을지 어떨지는 자신의 재능에 달렸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밖에 없다.

눈을 감은 그에게서 이제 대화를 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남자는 일어서서 창문 곁으로 다가가, 물방울이 맺힌 유리창을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밖을 살펴보았다.

짙은 구름에 막혀서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았지만 한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눈부신 빛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선상의 빛은 빙글빙글 돌며 몇 초에 한번씩 방 안을 강렬하게 비췄다. 등대의 빛이었다.


「이제 곧 도착한다. 밤은 그렇게 덥지 않으니까, 뭐 그 차림으로 있어도 괜찮겠지」


돌아보면서 말하면 그는 이완된 몸을 옹송그리더니 지나칠 정도로 몸을 들썩였다. 얼굴에는 공포가 배어있었다.

두 사람을 태운 배가 향하고 있는 곳은 태평양에 있는 남쪽 섬이다. 빈말이라도 휴양지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메말라 있었지만, 황폐한 그 거리에 비하면 위험은 훨씬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섬도 사람도 아니고, 신변의 위협도 아니었다. 이제 저 섬에 있을 리가 없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한 사람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


「……」


아직 저기에 있는 건 아닐까, 라며 떨고 있는걸까. 아니면 이미 손이 닿지 않는 장소에 가버렸다는 것을 인정하는게 무서워서 떨고 있는걸까.

남자는 다시금 그의 곁에 다가가 머리 위에 툭 손을 얹어 길게 뻗은 흑발을 흐트러뜨리듯 쓰다듬어 주었다.

그는 그 행동에는 전혀 흥미를 표시하지 않았지만 남자가 자연스럽게 한 말에는 큰 반응으로 답해주었다.


「괜찮아,   」


그 말을 들은 순간 그는 가늘게 뜨고 있던 눈동자를 동그랗게 깜빡이더니, 뭔가 말하려는듯이 마른 입술을 떨었다. 남자가 무의식 중에 불러버린 것은 그의 이름이었다. 친구도 소꿉친구도, 그리고 부모에게조차 불린 일이 없는 그 이름.

그가 그것을 싫어하는 것을 떠올리고, 남자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아……미안. 나도 모르게 불러버렸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정신을 차렸더니 멋대로 목소리가 되어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를 불쾌하게 만들고 싶은건 아니었다. 그저 남자는 그 이름으로밖에 그를 부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의 일을 회상하면서 그의 옆에 앉자 그는 아무 대답도 없이 그저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



건배! 라고 말하는 선창보다도, 포효같은 주위의 괴성소리가 훨씬 크게 울렸다. 드링크바 용의 싸구려 잔이 부딪혀 깨질듯한 화려한 소리를 냈다.

히나타는 주위의 학생과 건배를 나누며 허리를 일으켜 멀리있는 멤버에게도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이쪽을 보지 않는 것 같아서 포기하고 자리에 앉았다.

고작 1년간 어울렸을 뿐이다. 특별히 사이가 좋다고 불릴만한 반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종업식 후 송별회에 동급생 3분의 2가 참여하고 있는 것은, 모두 어울리는 걸 좋아하기 때문인건가, 아니면 자신처럼 흐름에 거역하지 못하는 자가 많을 뿐인건가

코다카 고교의 학생들은 오늘 낮에 종업식을 마치고 내일부터 짧은 봄방학에 들어간다. 휴일 다음 새학기에는 반 배정이 있어서 지금의 반 친구들 대부분과는 다른 교실에 넘어가게 된다. 그것을 아쉬워하며 열린 것이 1-B 송별회였지만, 1학년이 2학년으로 진급할 뿐이라서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는 멤버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싸한 명목으로 모여서 떠들고 있을 뿐이다.

사이가 좋건 나쁘건, 내년의 반이 어떻게 되던, 전학할 히나타에게 있어서는 관계없는 일이다. 연한 오렌지주스를 홀짝거리며 히나타는 메뉴판을 훑어보았다.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점 중에서도 가장 가격대가 낮은 이 집은 다른 자리를 봐도 우리같은 돈이 없는 학생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큰 무리를 짓고있는 히나타들은 특히 눈길을 끌고 있었다. 너무 떠들면 가게에서 쫓겨나는 것 아닌가하고 히나타는 내심 조마조마했는데, 그런 걱정은 뇌의 어느 곳에도 두지 않는지 그들은 쓸데없이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반배정은 교사들이 정해서 가른다는 것 같더라」

「제비뽑기가 기본 아냐?」

「아니, 평범하게 생각하면 아이우에오 순으로 떼어놓지. 한 반이 아오키 투성이가 되면 어떡하려고. 성이 아베인데 출석번호가 두자릿수가 돼도 웃기잖아.」

「그럼 머리 좋은 놈이랑 멍청한 놈도 균등하게 나눌 것 아냐? 바보들만 가득한 반은 말도 안되잖아」

「그럼 선생들이 정한다는 것도 마냥 자유롭진 않단거네」

「그러니까, 이런 저런 결정 후에 선생들끼리 거래를 한단 거지. 이 녀석을 줘, 대신 이 녀석을 줄게, 이렇게」

「반대가 아니라? 이 녀석은 싫으니까 데려가줘, 일 게 분명하잖아. 서로 떠넘기고 있을걸」

「그런건 너같은 문제아 뿐이겠지」

「하?! 나 완전 모범생이라고」


목소리가 큰 것은 반에서도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이라기보다 잘난 체 하는 멤버들이었다. 테이블 4개를 연결한 자리의 중간쯤에 포진된 그들은 깔깔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그들이 무책임하게 호출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아직 주문이 정해지지 않은 학생들은 여종업원을 앞두고 급히 메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부른 본인들은 정작 또 다른 화제로 들썩이고 있어 여종업원이 온 것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


히나타는 잠자코 또 쥬스를 마셨다. 그들의 화제가 지겹다고 느끼는 건 아니지만, 입학했을 때에는 그들 사이에 섞여있었을 자신이 지금은 이렇게 끝자리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상황을 살펴보면, 빈말이라도 기분이 좋다고는 말 할 수 없었다.

좋지 않은 느낌의 응어리를 가슴에 안고, 가격이 싼 도리아에 반숙을 얹을지 어떨지 고민하고 있으면 어느새 주문을 끝낸 중앙 테이블이 「이상으로」라며 여종업원을 돌려보내려고 해, 히나타는 황급히 손을 들었다.


「아, 나 아직……」

「어라? 히나타 아직 주문 안했었나」

「아, 응」


모두가 무엇을 주문했는지 듣지 못했기에 계란을 얹는 건 관두기로 했다. 어차피 더치페이로 계산할테고. 만약 혼자만 비싼 값을 내게 된다면 뭔가 귀찮은 일이 될 것 같았다.

요리가 도착할 때까지 각각 드링크바에서 3번씩 리필을 해오고, 일부는 장난으로 서로의 음료를 섞어마셨다. 전에 여기에 왔을 때에는 분명히 합창회인가 무언가의 회식이었다고 생각하는데, 히나타도 메론소다와 우롱차를 섞어들곤 떨떠름한 얼굴을 했었다. 복수로 칼피스와 콜라를 섞어줬는데 의외로 맛있게 만들어져서 되려 모두들이 음료를 리필해와 히나타의 레시피대로 섞어마시는 판국이 됐었다.

그것은 고작 몇 달 전이었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히나타는 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극히 평범하게 반 친구들의 일원 중 하나였다.



자신에게도 키보가미네 학원으로의 입학 기회가 있다는 것을 히나타가 알게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계기는 실없는 잡담 속에 있었다. 반 친구중 하나가 문득 자신의 사촌이 키보가미네 학원에 입학하게 됐다는 말을 언급한 것이다. 그것을 듣던 히나타는 언제나처럼 맞장구를 치면서도, 마음 속에서는 울적한 말을 내뱉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천재가 넘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천재의 친구이거나, 친척이라고 말을 하는 놈들이 넘치고 있다. 연예인의 지인이라는 친구라던가, 유명인과 같은 맨션에 살고 있는 가족이 있다던가, 그런 것들을 자랑스럽게 떠드는……그런 놈들로 넘치고 있다. 평범한 놈들로 넘쳐나고 있다. 세상의 대부분은 그런 놈들로, 무언가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러니까 무엇도 나쁘지 않다. 무언가를 동경하는 것도, 뭔가를 해낼 꿈을 꾸는 것도, 그러면서 압력에 부딪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것도, 지극히 보통의 일이고 대다수가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무엇도 나쁘지 않다.)


거북한 기분을 씨앗삼아 강렬한 열등감에 시달리면서, 몇 번이고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아」를 자신에게 되뇌었다. 하지만 그렇게나 타이른 뒤임에도 그것이 먹히지를 않아서, 그 장소에서 벗어나고 싶어져서―― 거기서 언제나의 『발작』이 일어나게 될 것처럼 됐다는 걸 깨달은 히나타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우겠다고 말하면, 그 반친구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녀석 나랑 동갑이고, 지금 평범하게 고향에 있는 고등학교 다니고 있었거든. 그런데 내년부터 키보가미네에 입학한대. 다시 1학년부터 말야. 『예비학과』라고 들어봤어? 나 들어본 적 없었는데, 아무튼 요점은, 돈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일반인 학과가 시작된다는 것 같아」


히나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새까맣게 꿈틀거리던 마음 속에 상쾌한 바람이 불어드는 것을 느꼈다.


「……그거, 그 키보가미네에 다닐 수 있다는 거야? 학교는? 같은 부지 내에 있어?」

「부지도 같다는 것 같은데, 격리되는거 아닐까? 뭐 그래도 소문에 의하면 대학진학이 훨씬 유리하게 된다는 이야기야. 그거야 이상한 곳에 진학했다가는 키보가미네의 브랜드도 떨어질 테니까」


지금까지 맞장구 쳐주는 역이었던 히나타가 갑자기 화제에 달려들어 그는 놀란 듯했다. 

하지만 친척의 일을 자신의 일인양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즐거운지, 예비학과가 설립된 것은 작년이라는 점, 그러므로 아직 제1기 졸업생은 존재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밝은 장래가 약속되어 있는 것 아니겠냐는 것을 조금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나름대로 얘기꽃을 피운 후, 반 친구들이 『결국은 남의 일』이라고 화제를 끝내기 직전, 모든 얘기를 필사적으로 이끌어냈던 히나타는 불쑥 말했던 것이다.


「나도 들어갈 수 있을까」



거기서부터의 행동은 빨랐다. 이 나라의 정점이라고 불리는 키보가미네 학원에 대해서 조사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알아보고, 예비학과의 팜플렛을 가져와 부모님을 설득하고, 일단 형식만 마련된 입학 시험을 위해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입학 자격을 받았다. 여기까지 겨우 한 달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히나타의 집은 가난하지 않았고, 한 명의 아들을 대학까지 진학시키기 위한 저금도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비싼 학비를 마련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비도 문제지만, 키보가미네 학원의 예비학과는 입학금이 그야말로 엄청났다.

하지만 히나타는 부모의 설득에는 고생하지 않았다. 예비학과의 이야기를 하게된 이후부터 히나타의 상태는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바뀌고 있었다. 『발작』은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것을 지금까지는 주변에 잘 숨겨오고 있었는데, 발작이 일어나지 않게 된 것이다. 히나타가 안고 있는 깊은 상처를 알고 있는 부모님은 그런 하나뿐인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돈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동급생들은 히나타가 변화한 이유를 모른다. 모습이 이상하다고 직감한 동급생으로부터는 이상한 놈이다, 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후로 히나타는 급격히 사교관계가 나쁘게 되어, 학교 자체를 쉬는 날도 늘어났다.

이윽고 동급생들과 멀어져 이렇게 중심에서부터 벗어나게 되었지만, 히나타 자신은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앞으로 조금 더 어울리면 끝이다, 라는 기분 이상으로, 나는 변할 거야, 너희들과는 이제 다르다고, 와 같은 선민사고 기미마저 보였다.

물론 그것을 알고있는 소수의 친구들의 눈은 싸늘히 식어있다. 자연스레 히나타가 없는 자리에서는 그의 험담으로 시끄러워지는 일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 자식 태도가 나빠졌지, 그 자식 부모돈으로 대단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어, 와 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런 구석이 있었어, 처음부터 예비학과 설립을 기다리느라 이 학교에 잠정 입학했을 뿐이었어 등 사실이 아닌 것까지 소문이 되어, 그 중 몇몇은 히나타 본인의 귀에도 들어왔지만 역시 히나타는 신경쓰지 않았다.

키보가미네의 예비학과 학생 가운데, 이 1년간 본과로의 편입제도를 이용한 학생은 한 명도 없다. 키보가미네의 본과에 들어갈만한 소질을 갖고 있는 자를 학원의 스카우트들이 못 찾아낼 리가 없으니, 애초에 그런 사람이 예비학과에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앞으로도 편입제도는 사용될 일이 없겠지, 라고 히나타는 생각했다.

그럼에도 히나타는 그 현실을 받아들인 뒤, 이대로 열등감을 억제하면서 썩어가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비일상적인 곳으로 뛰쳐나가고 싶다고 생각해 전학을 택했다.

평범하게 있고 싶지 않다. 평범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살아있는 것조차 부끄러웠다. ――줄곧 감추어왔던 그 본심을 처음으로 바깥으로 끌어낸 것은 예비학과의 입학시험을 마치고 면접을 받았을 때였다.

명백하게 형식일 뿐이라고 보이는 부실한 면접을 받으며 히나타는 가볍게 실망했다. 눈 앞의 면접관은 필시 키보가미네의 관계자조차 아닐 것이다. 입학지망자를 기계적으로 처리할 뿐인 외부업자이거나, 그 비슷한 것이다.

하지만 히나타가 너무나도 확고한 지망동기를 늘어놓았을 때에, 문득 한 면접관이 히나타의 말을 되물어왔다. 무심코 입 밖에 내뱉고 만 히나타의 본심을 강한 어조로 반문했다.

지금까지는 반쯤 졸고 있는거 아닐까라고 생각될 정도로 일을 방치한 채 앉아있었을 뿐인 그 면접관이었지만, 아무래도 그 남자만은 학원의 관계자――게다가 상당히 중추에 있는 인간인듯 했다.

히나타를 꿰뚫는 눈, 물어오는 목소리, 찌르는 듯한 말과 행동, 모든 것이 보통 사람의 것이 아니어서, 거역할 수 없는 카리스마에 휩싸였다. 그것에 이끌리듯이 히나타는 자신의 가슴속에 있는 모든 것을 내뿜었다. 자신은 평범한 인간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필요없는 것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는 되고 싶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 학원에 입학을 지망했다는 것을.

그 고백이 무엇의 계기로 작용되는지 히나타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면접이 끝난 뒤, 그날 시험에 응시한 많은 학생들 중에서 히나타만이 귀가 중에 부름을 받아 시험장인 외부시설과 별개의 장소로 안내되었다.

그 장소야말로 키보가미네 그 자체로, 게다가 원래라면 본과생마저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교직원동이었기에, 히나타는 걷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몸을 경직시키고 안내된 한 방으로 들어섰다.

거기서 히나타에게 제기된 말이야 말로――


「있지, 타바스코 좀 건네주지 않을래?」


강한 목소리가 날아들어, 멍하니 있던 히나타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어느새 요리가 나온 것 같았다.

히나타는 자신의 수중에 있던 타바스코나 케첩등의 조미료를 테이블 중앙에 밀어붙이고 자신이 주문한 도리아를 받았다. 많이 신세를 졌던 이 패밀리 레스토랑의 값싼 도리아도 이제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그런 것을 가슴 속에서 중얼거리며 스푼으로 치즈를 무너뜨렸다.

히나타는 입학 후, 학원 내에 기숙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예비학과용 기숙사는 일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조사했으니, 필시 특별한 곳을 용의해 준다는 것이 된다.

솔직히, 입학 후에 어떤 대우를 받을지 자세한 것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학원 측에서는 이것은 극비 프로젝트이므로 사전에 말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세부사항을 밝히지 않으면서도 부모의 승낙만을 받아냈다.

하지만 히나타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불안조차도 없었다. 그 키보가미네 학원이 막대한 비용과 기간을 들인 프로젝트의 최종단계에 관여하는 것이니까, 위험이나 불안요소 같은 것을 그들이 안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튼 입학금조차 면제될 정도의 대우로 입학을 하게된 것이다. 살게 될 장소도, 식사도, 무엇 하나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줬다. 그러니까 이런 패밀리 레스토랑에 올 일도 없고, 키보가미네의 부지 내에 있는 수많은 식당에서 좋아하는 요리를 고르면서 밤낮없이 『초고교급』의 맛에 입맛을 다시고―― 그런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 틀림없다.

반 친구들은 파스타나 조잡한 피자를 흘려가며 먹으면서도 이야기하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화제는 진로 문제로 넘어가는 듯했다. 히나타는 묵묵히 도리아를 입에 옮기면서 귀를 그쪽으로 기울였다.


「결국 2학년이 되면 금방 진로조사 받잖아? 1학년때는 의미 없다니까」

「그래도 우리 학교, 벌써 지망학교 판정 내주니까 쓰지 않으면 안 돼」

「솔직히 다들 뭐라고 썼어? 그보다 대학 안 갈 놈들이 있어?」


아주 조금 전만해도 이런 화제가 등판되면 자신도 장래에 불안감을 가졌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젠 다니던 학교도 관두었고 히나타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그런 태도가 얼굴에 드러났던 것인지, 희망하는 진로를 동급생으로부터 끌어내던 학생은 구석에 앉아있는 히나타를 발견하고는 어색한 듯이 입을 비틀어 뗐다.


「아―, 그렇네, 히나타는 학교 그만두니까 말야」


가볍게 흘려 말하려던 의도였겠지만 얼굴에는 부자연스러운 쓴웃음이 배어있었다. 히나타는 필요도 없는 타바스코에 손을 뻗는 척하고 자연스럽게 눈을 피하며 어, 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보지 않는게 좋았는데, 라고, 말을 꺼낸 학생의 주변으로 시선이 쏟아졌다. 한편 히나타의 소문을 몰랐던 학생들도 절반 정도 있어서, 그쪽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고 있다.


「엣 거짓말, 왜? 전혀 몰랐어, 등교 거부?」

「등교거부면 이런 곳에 오겠냐, 전학간댄다」

「전학? 거짓말, 왜 비밀로 한거야? 혹시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다 이런느낌? 어디 이사 가?」


질문 공격을 받으며 히나타는 점점 더 있기 불편해져서 눈을 내리깔았다. 가슴을 펴고 대답할 수 없는 것은 주변의 실망한 듯한 시선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딱히 비밀로 하려던건……」


어차피 돈으로 출세를 살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따지고보면 그렇게 예비학과에 갈 예정이었으니까.

하지만 좋은 대학에 가거나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히나타는 그저 평범하게 있는 것에 의문을 품지 않는 자신으로 있고 싶지 않았다. 여러 가능성에 눈을 감고,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키보가미네 학원에게 명확한 대가를 구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을 하고 싶었다, 그것 뿐이었다.

누군가가 나직히, 키보가미네에 갈 거래, 라고 대답하자, 히나타의 소문을 알지 못했던 학생은 급하게 말문을 잃었다. 눈을 깜빡이는 것만 반복하며 선뜻 말하지 못하는 상태로 히나타를 조심조심 살펴보았다.


「그치만, 그, 히나타는……」


그 눈과 마주친 순간, 히나타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는 것을 느꼈다.

머리도 그다지 좋지 않고, 운동신경도 평균 수준에, 예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밖에 별다른 특기가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말이 하고 싶은 거겠지.


(말하고 싶다면, 말하면 되잖아. 아무런 재능도 없으면서 어떻게, 라고 말하면 되잖아…… 왜, 왜 너희들에게 그런 얼굴을 할 권리가 있는 거야! 너희들도 똑같다고. 아무런 재능도 없으니까 이런 곳에서 이렇게 하찮은 일로 시간을 허비하고……!)


그런 히나타를 보고 당황한 학생은, 아하하, 하고 형편없게 만들어낸 웃음으로 감싸려는듯이 말했다.


「그……꽤, 평범하잖아? 그래서 좀, 놀랐다고 할까」


적당히 돌려말하는 표현으로 잘 얼버무린 덕분에 분위기는 약간 풀어진 듯했다. 옆에 있던 아이가 「나도 놀랐어」 라고 가볍게 입을 떼더니 일반인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예비학과의 시스템을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히나타는 쓴웃음을 짓고 뺨을 긁적이며 「그런 거야」라고 가볍게 대답했다. 붉어진 얼굴은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속에서는, 숨을 뱉어내면 위 속의 모든 것을 쏟아낼 것만 같은 정도의 구역질을 참느라고 필사적이었다.

히나타를 『평범』이라고 칭한 그녀에게는 어떠한 악의도 없을 것이다. 공격당했다고 느끼는 것은 히나타의 일방적인 생각으로, 그녀에게는 무슨 잘못도 없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혐오에 시달리고 사라지고 싶어져서, 주변을 둘러보면 평범하게 있는 것에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 눈들을 용서할 수 없어서――

침착하자, 괜찮아, 아무것도 나쁘지 않아, 무엇도 무섭지 않아, 힘내왔잖아, 내일부터 변하는 거잖아. 열심히 자신을 타이르며 어찔어찔한 머리를 흔들고 눈을 열었다.

기분 나쁜 땀이 솟아, 셔츠가 끈적끈적하게 살에 붙어왔다. 부활동을 끝내고 그대로 얼굴을 비친 학생들은 학교지정의 체육복을 입고 있었으므로, 종업식 후에 한 번 집에 돌아갔던 히나타도 교복 그대로 오게됐는데, 지금만은 목을 옥죄는 넥타이가 이렇게도 불쾌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예비, 라는 건 본과가 되기도 하는거야?」


최근 히나타와 대화하기 어려웠던 학생이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몸을 내밀며 물어왔다. 지금 당장 졸도하는게 가능할 정도로 기분이 나빴지만, 동요를 감추는데는 성공한 듯했다. 혹은 누구도 히나타의 안색 같은 건 보고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 편입 제도가 있어」


일단 팜플렛스러운 대답을 전해줬다. 주위가 가볍게 술렁였다. 지금 빨리 사인을 받아두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보다 본과 인간의 사인을 부탁하는 게 먼저라던가, 야유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예비학과는 뭔가 단어가 나쁘다고 할까, 좀 더 괜찮은 이름은 없었냐라고 느끼지 않아? 예비라고 하면 뭔가, 물건 같잖아. 보충품 같고. 요컨대 이군학과라는 거잖아?」

「그 편이 차라리 낫네. 일군에 가기까지 한 보, 라는 느낌」


예비학과를 알지 못했던 학생들이 자기 멋대로인 것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면서, 확실히 자신이 가슴을 펴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그들의 지적에 동의했다. 만약 『평범과』 같은 거였다면, 분명 이렇게까지 실망하는 눈으로 바라보지는 않았을 텐데――거기까지 생각하고, 평범, 이라는 말이 다시 가슴에 박혔다.

입학시험의 면접에서 털어놓았던 것처럼 히나타는 평범하게 존재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평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키보가미네의 입학을 결정했다는 것인데, 『예비』라는 단어 하나에만 관심이 쏠리고, 히나타의 각오 등은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았다.

식은 도리아는 아직 몇 입이 남아있었지만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는데에 급급해 스푼의 움직임은 둔해지고 있었다.

그 때, 반대측의 테이블에 있던 한 학생이 재미없다는 듯이 불쑥 말했다.


「근데 키보가미네에서 예비학과가 만들어진 건, 소문에 의하면 그냥 자금을 걷기 위해서라던데…… 그러니까, 그냥 착취대상이라고. 봉이라고 할까.」


친척이 예비학과에 입학한다고 말했던 그 학생이었다. 본래 자신이 주목받았어야 할 화제를 히나타에게 빼앗겨 재미없었던 것일까. 다소 도발적인 말투에 주위가 어색한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식으로 말할 거 없잖아, 라고 그의 옆에 있던 여학생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히나타를 감싼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정의감이 강한 타입이라 말했을 뿐이었겠지만. 내심 그녀도 속으로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굳이 입 밖에 꺼낼 필요는 없잖아, 라고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또 배의 밑바닥에서부터 부글부글 분노가 들끓었다.

지적당한 것에 기분이 나빠졌는지, 아까의 학생은 가벼운 태도로 「미안」이라고 중얼거리며 꾸민듯한 태도로 히나타를 다시 쳐다보았다.


「뭐, 모처럼 새로운 곳에 가게 되었고, 너도 즐거운 학교생활을 보낼 수 있다면 좋겠네. 내 사촌도 있을 테니까, 같은 반이 된다면 재밌을거야」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속마음일 것이다. 필시 히나타가 사라진 뒤 그들은 멋대로 뒷얘기를 계속할테지. 그럴 때에 자신의 사촌이 같은 학원에 있는 그는 히나타의 소문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면 그가 원하는 대로 화제의 중심에서 얘기할 수 있을 테니까.


「히나타라면 바로 어울릴 수 있을거야. 너, 불편하지 않다고 할까, 어느 그룹에나 있을 법한 느낌이고」

「알 것 같아! 뭐랄까, 눈에 띄지 않는?」

「맞아. 입학식은 언제야? 캐릭터 드러낼 만한 자기소개 준비해가지 않으면 묻힌다고. 아, 그치만 예비학과니까 결국 평범한 놈들밖에 모이지 않으려나」


목소리가 큰 중앙집단에게 반쯤 바보취급을 하는 듯한 성원을 받으며, 히나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뇌 속에서 중얼거리고 있는 악다구니를 입 밖에 내지 않도록, 남은 도리아를 단숨에 먹어치우며 화제로부터 멀어졌다.

그들도 히나타의 화제에는 질렸는지 신학기의 반 예상의 얘기로 돌아가고 있었다. 히나타를 밖으로 내보내고 요란스럽게 들떠있는 그들을 보며, 히나타는 아직도 구역질과 싸우고 있었다.

기밀만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테이블에 주먹을 내동댕이치고, 가슴을 펴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나는 예비학과 따위가 아니라고, 키보가미네 학원에 선택받았다고.





2차의 노래방에 가지 않을 마땅한 핑계가 생각나지 않아, 무심코 「내일은 입학식이니까 일찍 돌아가고 싶어」라고 진심을 털어놓고 만 것은, 그 정도로 히나타에게 여유가 없다는 증거였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나왔을 때에는 한 눈에 보기에도 안색이 나빠져 있었기에 친구들이 만류하는 일은 없이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전차에 갈 수 있었다. 상태가 나쁜 것을 드러내고 말 거였다면 참지말고 훨씬 전에 돌아가는 게 나았는데. 비록 분위기가 나빠진다고 해도, 이제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니까.

고등학교 근처 역인 이곳에서 집 근처 역까지는 다섯 역 정도를 거쳐야한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서 어떻게든 앉고 싶었지만, 5분쯤 지나 도착한 전철은 퇴근길 사람들로 혼잡했다. 일단 기다리면, 다음은 역마다 서는 보통 전차가 온다. 하지만 전광판을 보면 10분 이상 기다리게 될 것 같아, 히나타는 어쩔 수 없이 혼잡한 차내에 올랐다.

좌석 옆의 구석을 확보하고 난방으로 따뜻하게 된 기둥에 기대며 밖의 경치를 바라보면, 창문에 비친 자신의 심한 얼굴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경치라도 보고 마음을 달래려고 했는데 더 기분이 우울해졌다.

눈을 감고 몸을 맡기며, 천천히 호흡을 반복한다. 섬세한 전차의 진동이 기분 나쁘다. 얼른 집에 돌아가서 침대에 들어가고 싶었다.

느릿한 호흡을 반복하며 가만히 있으면, 전차는 점점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멈추었다. 아직도 앞으로 네 정거장이나 지나야 하는건가, 라고 미간을 찌푸리다가 주변이 술렁대는 기미를 느끼고 무거운 눈꺼풀을 올렸다.

정차된 곳은 어두운 선로의 위로 역의 플랫폼은 보이지 않았다. 수십초 정도 후에 앞 역에서 긴급 정지 버튼이 눌려서 안전 확인을 위해 잠깐 정차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최악이다. 인명사고가 아니라면 몇 분 뒤에 곧 움직이겠지만, 성능이 너무 좋은 난방 탓에 전차 내의 공기는 완전히 고여가고 있었다. 몇 분 동안 감내할 수 있을까.

자신이 기대고 있는 기둥 저편에서 좌석에 앉은 직장인들이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좀 늦겠다고 전하는 것이 보였다. 마시러 가기로 약속이라도 했던 거겠지. 잡음이 귀에 들어오면 한층 기분이 나빠져서 생각하는 일이라도 해서 기분을 떨쳐보려고 했지만, 뇌 내에 메아리치는 것은 반 친구들의 말들 뿐이었다.

평범. 눈에 띄지 않아. 예비. 보충품. 봉.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들의 말 하나하나에 그만둬, 시끄러워, 너희들도 똑같은 주제에, 라고 반박하지만 뇌내의 목소리는 멈추는 일이 없었다. 점점 목소리는 비웃음이 섞여가고, 고통받는 히나타를 바라보며 서로 웃고있다.

그것을 뿌리치려고 가볍게 머리를 좌우로 흔든 순간, 뇌내의 소란은 뚝 그치고, 대신에 추접스러운 목소리가 하나 떨어졌다.

――불쌍하네. 평범한 사람이란 것만으로, 살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다니 말야.

담배와 술로 문드러진 목소리다. 그것을 들은 순간 먼저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하고, 목구멍 속까지 손가락을 넣은 것처럼 신 침이 목끝까지 올라왔다.


「우, 윽」


두손으로 입가를 뒤덮고 작은 신음을 뱉어 겨우 견뎌냈다. 이마에는 가득 땀이 맺히고 있었다. 눈 앞의 경치가 앞뒤 좌후로 흔들흔들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아아, 위험해, 라고 생각한 다음 순간에는 균형을 잃고 뒤에 섰던 승객에게 부딪히고 말았다. 물컹, 하고 발밑에 뭔가가 있었다. 뒷걸음질 치느라 구두라도 밟고 만 모양이었다. 번쩍 정신이 든 히나타는 얼굴을 숙인 채로 죄송하다고 작게 인사하며 얼굴을 돌렸다.

부딪히지 않았다면 그대로 쓰러졌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일 입학식에 못 갔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차피 입학식에 참여할 예정은 없지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그 학원에 가게 되었으니까,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게 알려지면 최악의 경우 입학이 취소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돌아갈 장소가 없는 히나타는 대체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전차는 아직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승객들은 다음 방송이 없는 것에 조금씩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언뜻 주변에 눈을 돌려 승객을 관찰하고 있으면, 문득 히나타의 등 뒤로부터 손이 뻗어왔다. 자연스러운 태도로 내민 스마트폰의 화면을 보여준다.


『괜찮아? 역무원 부를까?』


깜짝 놀라서 돌아보면 방금 부딪힌 남자가 걱정스럽게 히나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분명 엄청난 얼굴을 하고 있었겠지. 실제로 쓰러지기 직전의 모습을 보인거나 마찬가지니 「아무것도 아니다」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입학을 앞둔 지금 조금이라도 소란을 일으킬만한 일은 피하고 싶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무리하지마. 비틀거리고 있잖아. 다음 역에서 내리는 게 좋겠어. 걸을 수 있겠니?』


남자는 빠르게 문자를 입력해서 다시 화면을 보여주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던 히나타는, 내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답할 뻔 했지만 「걸을 수 있겠니?」라고 질문이 끝났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 마침 다음 역에서 내리니까, 화장실까지 데려다줄게』


그 화면을 보인 후, 남자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말았다. 이윽고 연락이 밀린 차내 방송이 흘러나와, 안전의 확인이 되었다고 말한 후 전차는 천천히 추진되기 시작했다.

몰래 얼굴을 훔쳐보면 그 남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어렸다. 키는 자신보다 컸지만 나이는 가깝지 않을까. 사람이 좋아보이는 온화한 얼굴을 하고있어, 누구나 잘 도와줄법한 호청년처럼 보였다.

전차는 역 바로 앞에서 멈춘 듯했고, 최고 속도에 도달하는 일도 없이 다음 역에 도착했다. 내릴 문은 히나타가 기대고 있던 문의 반대측으로, 히나타는 남자의 손에 이끌려 비틀거리면서 홈으로 내려왔다.

밤의 찬 바람이 불어왔지만 구역질을 날려줄 것 같지는 않았다. 입고 있는 코트 속에는 열기가 갇혀있어, 벌써 3월인데 자켓만 입는 것으로 충분했다고 히나타는 후회했다.

앞을 걸어가는 남자는 얇은 카키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안에 입고있는 것은 회색 니트다. 추위를 많이 타는 걸까, 연결된 손 끝이 싸늘하게 얼어있었다.

남자가 이 역에서 내리려고 했다는 건 정말이었던 것 같다. 익숙한 듯이 일직선으로 화장실 쪽으로 히나타를 데리고 갔다. 지나치는 도중 역 안에 있는 소바집의 음식물 냄새가 물씬 풍겨 구역질이 났다. 히나타가 입가를 누르면, 그는 걸음을 멈추고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죄송합니다」

「이런 얼굴색이었으니까, 내가 아니었어도 내버려두지 못했을 거야. 조금만 더 참으면 돼」


처음 들은 남자의 목소리는 차분한 음색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 어울리는 목소리라고, 히나타는 생각했다.

분명 좋은 환경에서 자랐음이 틀림없다. 만약 히나타가 지금 자신처럼 상태가 나쁜 사람을 발견한다고 해도, 이렇게 부드럽게 상대를 보살펴 줄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말을 걸지 말지 망설이다가 결국 말을 걸지 못하거나, 역무원을 찾으며 두리번거리다가 그 사이에 다른 사람이 구해주고 말거나, 그렇게 끝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그것과 비교하면 이 남자는 굉장히 신중했다. 전차 안에서 말을 걸지않고 휴대전화로 문자를 입력해서 보여줬던 것은, 말을 걸면 주변의 주목을 모으기 때문에 그것을 신경썼기 때문이었겠지.


(나에게는,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는……)


구역질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 헤아려주고, 공기가 나쁜 전차 안에서 끌어내주고, 망설임없이 화장실로 안내해주고――아니, 주저없이 안내할 수 있던 것은 우연히 그가 내리려고 했던 역이었다는 『운』의 문제겠지만, 그럼에도 히나타는 완벽한 그를 앞두고 답답한 열등감을 품고 있었다.

사람과 자신을 지나칠 정도로 비교하는 것, 그것은 이미 어릴 적부터 히나타의 버릇이 되어있었다. 뒤처지는 자를 보면 안심하고, 같은 처지의 사람과 나란히 서면 『나는 달라』라고 혐오감에 사로잡히고, 이렇게 우월한 사람을 앞에 두면, 자신의 평범함을 되새기게 된다.


(안 돼, 이런, 것만 잔뜩, 생각해선……)


버텨내려고 발을 내딛은 순간, 콘크리트 지면이 구부정하게 왜곡되어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의식이 날아가서, 히나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쓰러진 힘으로 급히 잡고있던 손이 떨어진 남자는 놀라서 뒤돌아보고, 홈에 나가떨어지기 직전에서 히나타의 몸을 껴안았다. 그 옆을 걷고있던 여자가 작게 비명을 올리며, 몇 걸음 물러나면서 내려다보았지만, 히나타가 그 장소에서 구토하자 힐 소리를 또각또각 울리며 재빨리 도망쳤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주위를 구경꾼들이 에워쌌다.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자, 무슨 일인가 흥미 위주로 들여다보는 자, 토사물을 밟지 않도록 두 팔을 벌리고 호소하는 자.

그 중앙에, 더러운 입가를 누르고 콜록거리는 히나타의 등을 쓰다듬고 있는 남자는 자신의 니트가 더러워진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습으로 걱정스럽게 히나타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괜찮아, 신경쓰지마. 진정될 때까지 앉아있자. 아, 그래, 물 마실래?」


미안, 미안, 하고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는지 그는 상낭하게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어깨에 매고 있던 작은 가방에서 페트병을 꺼내더니, 조심히 뚜껑을 열고 히나타의 손에 쥐게 했다.

어딘가에서 산 직후인지, 병을 잡으면 아직도 차가웠다. 가득 들어있는 물을 조금만 마셨지만, 토한 직후의 입을 댔으니 돌려주는 것도 그래서 나중에 돈으로 갚겠다고 생각하며 병 째로 받기로 했다.

찬물이 입 안과 인후, 식도를 깨끗하게 씻어준 듯해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구역질 탓으로 눈가에 배어있던 눈물을 열심히 닦으며 얼굴을 들었다. 안심한듯이 웃는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조금은 얼굴이 나아진 것 같은걸. 토했더니 편해졌어?」

「아, 어어……」

「다행이야. 정말로 힘들어 보였으니까」

「아, 아니……다행이 아니잖아, 너,」

「아, 역무원님, 여기예요」


덩달아 기분이 나쁘게 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악취에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남자는 달려온 역무원을 향해서 한 손을 들었다.

어차피 이른 시간부터 진탕 마신 주정꾼이겠지, 라고 생각하고 온듯한 역무원은 구토물 처리용 분말을 주변에 뿌리며, 웅크리고 있는 것이 학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태가 나쁜 건가, 구급요원을 부르는 것이 좋을까, 라고 간호하던 남자를 향해 물어왔다.

구급차가 불린다면 그때야말로 내일 이후의 예정이 무너지고 만다. 히나타가 붕붕 고개를 가로저으면 남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히나타를 가리키고, 「이제 괜찮다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남자가 말한대로, 위에서 소화되지 못했던 것들을 뱉어낸 덕인지 몸은 놀라울 정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대량의 땀이 흘러나왔고, 무너질 정도로 두근거렸던 심장도 가라앉고 있었다.

더러워진 홈을 깨끗이 처리해준 역무원에게 몇 번이나 머리를 숙이면서 남자의 손을 잡고 일어서자, 먼발치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거미 새끼들이 흩어지듯 떠나갔다.

히나타의 옷은 더러워지지 않았지만 쓰러진 히나타를 꽉 껴안았던 남자는 마음껏 토사물이 뿌려진 채였다. 친절한 마음으로 보살펴주었던 사람에게 오물을 뿌리다니, 대체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히나타는 무엇인가 말하려고 했으나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얼굴 할 것 없어. 괜찮다니까, 씻고 올테니까 말야」

「씻는다니……」

「화장실 세면대로 충분해. 너도 입을 헹구는게 좋지 않겠어?」


확실히 입을 헹구고 싶었고, 그렇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이만 여기서」라고 헤어지기도 어려워서 히나타는 안내해주는 대로 역내의 화장실로 향했다.

최근 공사가 끝난 직후인듯 화장실은 넓고 청결했다. 전차 시간이 어긋나고 있기 때문인지 선객은 많지 않았다.

히나타는 양 손으로 물을 담아 입을 헹구는김에 첨벙첨벙 난폭하게 얼굴을 씻었다. 차가운 물 덕분에 정신이 맑아졌다. 얼굴을 들어 거울을 보면 짧은 앞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손수건 같은 꼼꼼한 것을 갖고있지 않다는 걸 깨닫고 얼굴을 찡그렸지만, 히나타가 가방을 뒤지는 것보다 먼저 옆에서부터 면 손수건을 내밀고 말았다.


「자, 이거 써」

「됐어……거기까지 신세지는 것도 염치없으니까」


개처럼 부르르 얼굴을 흔들어 물기를 날려버리면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손수건을 접어넣었다.

코트를 벗은 그는 조심히 개어 거울 앞에 두고 양팔을 교차시켜 더러워진 니트를 벗었다. 아래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듯 마른 앞가슴이 드러났다. 하얀 피부에 순식간에 소름이 돋는 것을 보고 히나타는 당황하여 화장실 입구로 눈을 돌렸다. 지금 누군가가 온다면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놀랄 것이 틀림없었다. 3월이긴 하지만 얇은 코트를 입은 인간들이 넘치는 역에서 반나체의 남자의 모습은 어떻게 봐도 붕 떴다.

물과 비누로 슥슥 니트를 문지르고 있는 모습을 보며, 히나타는 곤란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거, 어디서 말릴 건데」

「집에서. 여기서 금방이야.」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응답했기에 히나타는 더욱 얼굴을 찡그렸다.


「……집까지 입고 갈 셈이야?」

「위에 코트 입을 거니까 괜찮아」

「감기 걸린다고……」


남자가 멋대로 더럽힌 것이라면 모를까 니트를 더럽힌건 히나타의 탓으로 그에게 잘못은 일절 없다. 그런 상황에서 젖은 옷을 입혀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적어도 자신의 옷이라도 대신 건네야 한다고 생각하고, 넥타이에 손을 걸어 풀려던 히나타는 거기서 자신의 가방 속에 티셔츠 한장이 들어있는 것을 떠올렸다.

반년 전에 문화제 준비를 하던 중 더러워져도 상관없는 옷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입었던 옷이었다. 가지고 돌아가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어서 계속 사물함 안으로 파고들어가던 것을 마지막 날인 오늘 갖고 돌아온 것이다. 한 번 집에 돌아갔을 때 두고 온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무심코 그대로 가져와 버린것 같다.


「빨지 않은 거라 미안하지만……이거라도 입고 가」


일단 코에 파묻고 냄새를 맡고부터 그에게 내밀었다. 조금 먼지 냄새같은 게 났지만 흠뻑 젖은 니트를 입고 돌아가는 것보다는 나을 거였다.


「됐어. 네 거잖아」

「학교에서 작업복으로 썼던 거야. 오래전부터 사물함에 넣어놓기만 했으니까, 냄새날 지도 모르지만…… 집에 돌아가면 버려도 상관없는 옷이고」

「그런, 버린다니. 그렇게 말해준다면 사양말고 빌리겠지만……정말로 괜찮아?」


히나타로서는 이런 헌 것을 내미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기에, 이런 거밖에 없어서 미안, 하고 사과하면서 그에게 건넸다. 역시 추웠던 것인지 그는 받은 티셔츠를 바로 껴입고 소름이 돋은 팔을 문지르며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고마워. 딱 맞는걸」


딱 맞다고 하기에는 조금 목부근이 헐렁한 것 같기도 했으나 그것은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기보다는 티셔츠가 늘어난 탓이다. 지금까지 실내복으로 맹활약했던 것인데, 흰 바탕에 의문의 프린트가 박혀있는 그것을 다시 보면 뭐랄까 미묘한 디자인이었다. 이런 게 취향이라고 생각되는 건 싫었기에, 엄마가 멋대로 사온 거야, 라고 변명을 더했다.

남자는 별로 디자인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고 그 위에 코트를 입고 씻어낸 니트의 물기를 빼기 시작했다.

완전히 물기가 빠질것 같지 않다고 생각해 티셔츠를 넣어두었던 봉지도 그에게 주기로 했다. 이것도 집에 있던 쇼핑백이지만, 비닐이라 물이 새지는 않을 것이다. 남자는 「덕분에 살았어」 라며 고맙게 받아들였지만, 애초에 이런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게 히나타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건가.

씻은 니트를 봉지에 넣은 뒤 두 사람은 화장실을 나왔다. 남자는 히나타를 홈까지 보내주겠다고 말해서 히나타는 고개를 저었지만, 이것도 인연이고, 라고 말해져서 거절하지 못하고 남자와 둘이서 홈까지 돌아오고 말았다.

다음 전차까지는 아직 10분 정도가 남았다. 이 역을 잘 알고있는 듯한 남자는 홈의 안쪽까지 걸어가 비어있는 벤치에 앉았다. 전차가 올때까지 어울려줄 모양이었다.

히나타는 가방 속에서 몰래 지갑을 열어, 그 안에 있는 지폐를 모아잡아 남자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거……세탁비나, 아까 물 대신이야. 전혀 사례가 되지 못하겠지만……」


평소 세탁같은 것은 따로 클리닝을 맡겨본 적이 없기에 시세를 몰랐지만, 어쨌든 가진 돈은 5천엔 정도밖에 없었다. 니트 한장 정도 세탁값은 되겠지.

남자는 깜짝 놀라며 지폐를 히나타에게 돌려줬다.


「신경쓰지 말라니까. 이거 싸구려야」

「그럴 거 없잖아. 받아줘.」


서로 사양하고 떠넘기는 와중에 지폐 사이에 끼어있던 영수증이 바람에 흩날렸다. 히나타는 얼굴을 붉히며 그것을 줍고 구겨서 가방 속으로 넣었다.

고집 센 히나타가 어떻게든 돈을 떠맡길 것을 깨달은 것인지, 남자는 팔짱을 끼고 으음, 하고 생각에 잠겨, 「그럼」이라며 앞을 가리켜 이상한 무늬가 프린트 되어있는 셔츠의 가슴에 손을 댔다.


「돈은 필요없으니까, 이 셔츠를 줄래?」


갑작스런 제의에 히나타는 지폐를 쥔채 「하?」라고 반문했다.


「……아니, 그 티셔츠 줘도 전혀 상관은 없지만, 아니 그보다 돌려줄 생각이었냐고? 버려도 된다고 아까 말했잖아」

「버리지 않아. 나, 전혀 옷이 없어서. 부끄러운 얘기지만, 내일 입학식에 입고 갈 옷이 없더라구」

「어이, 그런걸 입학식에 입고간다니……」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라고, 라고 쏘아붙이려던 히나타는 일순 움직임을 멈추었다.


(입학식?)


지금은 아직 3월이다. 보통의 학교의 입학식까지는 일주일 이상이 남았다. 혹시 대학생은 아닌지 생각했지만, 대학의 입학식이라고 해도 보통은 4월이다. 3월 중에 입학식을 치르는 학교라니, 아무래도 『보통』은 아니었다.

히나타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단 하나의 짐작가는 것을 입 밖에 냈다.


「너, 설마……키보가미네 학원, 의」

「어라, 잘 알고 있네. 혹시 너도?」


남자는 태연하게 답하며 반가운 듯이 히나타에게 물어왔다.


「아니……그, 나는」


순간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못하고, 무심코 말을 더듬고 말았다. 키보가미네에 입학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간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스카우트 제도에 의한 입학이 아니고 그렇다고 보통 예비학과에 입학하는 것과도 또 사정이 다르다. 그런 얘기를 하면 사정을 물어볼 게 뻔할 것이고, 답해줄 수 없는 이상, 평범한 예비학과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을 생각하면 비참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눈 앞의 남자가 예비학과생이라면 그런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없겠지만, 이 남자는 틀림없이 뭔가의 재능을 갖고 있다고 히나타는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이 도움을 받았다는 상황 탓도 있겠지만, 얘기하고 있으면 어쩐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녀석은, 『보통』과는 다르다고.


「그, 키보가미네에는, 저……뭔가 재능이 있어서 스카우트된, 겁니까?」


저도 모르게 경어를 사용하고 말았지만 그것은 히나타가 아니어도 그랬을 것이다. 키보가미네 학원의 학생이라고 하면 죄다 신문이나 뉴스를 시끌시끌하게 만드는 인간 뿐이다.

하지만 남자는 큰 소리로 아하하, 웃더니 겸손하게 양 손을 흔들었다.


「설마. 그렇게 보여?」


솔직히, 히나타는 그것을 듣고 안심했다. 역시 그렇다. 전국에서 선택받는 엘리트가 이런 곳에서 걷고있을 리가 없다. 세상은 압도적인 수의 범재들로 채워져 있다, 고.


「자, 이거」


남자는 가방 속에서 봉투를 꺼내보였다. 히나타에게 도착한 것과 같은 것으로, 키보가미네 학원의 휘장이 인쇄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그 속에서 꺼낸 한장의 편지는 히나타에게는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당첨된 당신을, 『초고교급의 행운』으로서 당교에 입학시키게 되었습니다.』


코마에다 나기토 님. 제일 위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것이 이 남자의 이름인 것 같다. 히나타는 문장을 몇 번이고 반복해 읽다가, 중얼거렸다.


「『행운』……?」

「우습지? 내 『재능』은 그 정도라는 소리야」


남자는 웃으면서 봉투를 가방으로 되돌렸다. 이것을 가지고 다닌다는 건 이런 식으로 얘깃거리로 삼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그도 자신처럼 선택받은 일이 기뻐서 견딜 수가 없는 걸까. 히나타는 사람 좋아 보이는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추첨에서 뽑혔다, 는건……즉, 평범한 고등학생이란 거잖아? 그걸로 키보가미네에 입학한다니, 두렵지 않아……?」

「두려워?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그거야, 주위엔 『초고교급』투성이잖아? 그런데 자신만 평범한 인간이면, 불편하지 않을까, 하고」


히나타의 질문은 지극히 정직한 그대로였다. 만약 히나타에게 같은 편지가 도착한다면, 처음 며칠은 발을 구르며 환호하겠지만, 막상 입학하게 된다면 무서울 것이 뻔했다. 어떤 재능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천재들 속에 섞여버리면, 자기소개의 순간부터 부끄러워져 견딜 수 없어질 것이 눈에 훤했다.

하지만 남자는 히나타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오히려 기분좋은 일 아닐까? 나도 평범하진 않으니까 말야. 뭐, 이런 보잘것 없는 『행운』이지만」


시원스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 미소가 지금까지의 온화한 미소와는 다르게 보였기에, 히나타는 잠깐 경계심을 품었다.


「이것이 도착했을 때의 충격은 잊혀지지 않아. 지금까지 키보가미네 같은 건 나하고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었고, 의식했던 적도 없었지만,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내가 바라고 있는 것들이 갖추어져 있는 장소였던 거야. 이 편지를 보고, 나는 드디어 깨달았어. 나는 『행운』이었구나, 라고」


많은 뜻이 함축된 말투였다. 그는 편지의 문장에서부터, 히나타가 알고 있는 『행운』과는 다른 무언가를 받아들였다는 것처럼 보였다.


「무슨 소리야……?」

「나에게는 불운을 청산하는 힘이 있거든. 그 자각은 계속 있었어. 지금까지는 그걸 『행운』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지만 말이야. 오늘 너에게 걸려버린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도, 그것 때문이야」


아핫, 즐겁게 웃는 그는, 역시 아까까지와는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히나타를 간병해줬을 때에는 안심시키려는 듯이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지금은 뭔가에 사로잡힌 듯한, 뭔가 거무칙칙한 것을 가슴에 품고있는 듯한, 그런 웃음으로 보였다. 눈이 웃고 있지 않다는 것을 히나타는 눈치채, 등골이 오싹해졌다.

히나타가 겁내는 눈으로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남자는 연기가 들어간 태도로 히나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가 좋은 사람이라서 다행이야. 악당이었다면, 처벌당했을 거야」

「……처벌?」

「응. 내게 오물을 토하고 달아나버리는 사람이었다면, 분명 너는 반죽음 정도로는 당했을 거라고 생각해. 아, 걱정하지마, 내가 아니라, 내 『재능』이 그런 성격이야. 나를 괴롭히는 악을 반드시 처벌해주는, 그런 구조로 되어 있거든. 그러니까 내 불운은 청산 당한다는 거야. 예외 없이, 반드시.」


웅변식으로 말하고, 한 번 깊게 숨을 들이쉰 뒤 그는 당돌하게 웃으며 검지를 히나타의 눈 앞에 들이밀었다.


「제정신이 아니야, 라는 얼굴 하고 있네」


제대로 맞췄다. 정곡을 찔려 심장이 튀어올랐다. 반사적으로 그 손가락으로부터 얼굴을 돌리고 말았다.

제정신이 아닌게 분명하다. 그런건, 재능도 뭣도 아니다, 그저 종교같은 것이 아닌가. 그의 얘기를 듣고 느낀 소감은 그것이었다. 키보가미네에서 안내가 온 것으로 뭔가에 씌이고 만 것일까. 입학하는 것에 꺼림칙함을 느끼지 말라고 본능이 일해서, 자신에게도 재능이 있다고 맹신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나도 평범하지 않다고. 그래서 내일부터 시작될 학원 생활이 기대돼서 참을 수가 없어! 왜냐면 그곳은 『보통』이 아니니까 말야!」


아하하하, 몸을 접고 웃는 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히나타는 떨리는 주먹을 꾹 쥐었다. 계속 손에 들고있는 채였던 지폐에 쭈글쭈글 주름이 생겼다.


『1번 선에 전철이 옵니다. 위험하니 흰색 선의 안쪽으로……』


홈에 안내 방송이 나오자 선두 열차 두개의 라이트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히나타는 도망치듯 일어섰다. 남자도 천천히 일어서고, 승차구를 향하는 히나타를 배웅하러 왔다. 건강히 지내, 라고 말하는 그는 전차 안에서 걱정해줬던 때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고마웠어」


어색한 인사를 말하며, 도착한 전차에 올라탔다. 차 안은 이번에도 혼잡했다.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문 부근에 서자 남자는 애교있는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잘 가」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발차 멜로디가 몇 번 울리고, 천천히 문이 닫혔다.

남자의 입이 움직이면서 뭔가를 외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 어디에선가 만날 수 있다면 좋겠네」



*****



생물학동에 개인 연구실이 주어진 것은 입학하고부터 한달 후의 일이었다. 동부 지구의 넓은 부지에 만들어진 건물은 모두 새로운 것들로, 이런 연구실을 준비하려고 생각하면 빈 방은 잔뜩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올해 신입생을 어떻게 배정할 것인가(장소 등의 공간 문제뿐만이 아니라, 주로 비용 면에 한해서)의 배분을 정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스카우트했으면 연구실 정도는 사전에 미리 준비하라고 얼간이들아, 라는 더러운 말은 삼키며, 마츠다는 최대한 붙임성 좋게 연구실의 열쇠를 받았다. 3층의 막다른 곳, 면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일등장소였다.

기숙사와 연구소가 떨어져 있는 탓에 제대로 침실로 돌아갈 수 없게 되리라는 건 연구에 착수하기 전부터 예상 가능했던 일이다. 그 예상대로 마츠다가 기숙사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대량의 빨래를 갖고 세탁소에 갈 때 정도로 한정되어 있었다.

동기 중에 연구가가 없는 덕분에, 마츠다에게 할당된 예산은 사전에 얘기된 것보다 일부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일부러 언론 취재를 데리고 가는 것을 조건으로 어딘가의 대학 병원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기재들이라면 손이 닿는 곳에 갖추어 놓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대량의 문헌은 집에 있는 것을 들여온 것만으로 꽉 찼기 때문에 우선 더 사들이는 것은 자제하기로 했다.

장소도 있고, 시간도 있고, 기재들도 있다. 그 환경에서 하나 빠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바란 것은 아니지만, 학원 측이 제시해오기 시작한 때는 그야말로, 마츠다가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타이밍과 딱 맞아떨어졌다.

지금껏 주어졌던 기재와 시설은 마츠다에게의 『제공』. 하지만 이번 건은 이른바 『계약』 형태에 가까웠다. 즉 서로에게 조건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쪽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평소 같으면 적당히 건너뛰었을 문장까지 모조리 차분하게 훑어본 후에 마츠다는 계약서에 조심스레 사인을 했다.

만일의 일이 일어날 경우를 상정하듯 돌려말하는 것이 몹시 지독했지만, 요컨대 제시된 조건은 이런 것이었다. 마츠다의 분야에서 임상실험이 필요한 경우, 학원 측은 적절한 대상을 마련해주는 상황에 한해, 실험 환경을 준비한다. 대신 거기서 얻은 실험 데이터는 학원이 필요로 하는 형식으로 보고해야 한다.

그리고 종이에는 써있지 않은 중요한 포인트에 대해서는, 구두로 직접 전해주었다. 학원이 준비하는 실험체와의 계약은 학원 측이 하고, 거기에 마츠다 개인은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고. 즉 무슨 일이 일어나도 책임은 학원이 진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굉장히 좋은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모든 책임을 학원에 맡긴다는 것은 무슨 문제가 발생한 경우에는 약점을 전부 붙잡히게 된다는 말도 된다. 마츠다에게도 인생을 건 선택이었다. 

승낙을 하게 된 이유는 심플하게, 거부권이 없는 것을 헤아렸기 때문이었다. 마츠다를 위해서 이미 실험체를 준비해 뒀다, 라는 그럴싸한 이야기를 슬쩍 내비쳤기에 상세사항을 들어보면, 그 실험체란 그들 관리의 손이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곳에 준비된 자――즉 이 학원에 영입된 학생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그 시점에서 예비학과의 인간이겠지라고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은 예비학과가 설립됐을 때에 돈뿐만이 아니라 인간도 학원의 연구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인체를 이용한 임상실험은 지금같은 세상에서는 간단히 이뤄질 일은 아니다. 학원의 관리 하에 있는 인간이라면 은폐하기 쉬운 것은 확실하겠지만, 마츠다는 난색을 표했다. 거기서 온 건 학원의 정점에 군림하는 평의위원회의 멤버로 그들은 어두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던 것이다. 본과도 예비학과도 아니다, 너를 위해 입학시킨 학생이 있다, 라고.

그렇게까지 학원 측에서의 기대가 컸다고는 마츠다에게 있어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마츠다를 위해서 상상 이상의 대규모 무대가 마련됐다는 것이다. 그것을 무無로 돌려보내려고 하면 그들도 가만히 물러서지는 않겠지. 결국 지금와서 사인을 하는 것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이 학원에서 수년간 만족스러운 생활을 보내기 위해서는 사실상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나 불만이 있다면 학원측이 준비한 이 프로젝트에 참가함으로서, 기껏 배당받은 생물학동의 연구실에 머물 수 없게 된 점이다. 물론 학생들 눈에 띄는 곳에서 인체실험 등을 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지만, 기숙사와 연구소, 게다가 프로젝트 룸을 왕복할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프로젝트 룸이 마련된 곳은, 사람을 멀리하란 의미에서 본다면 당연한 선택이겠지만, 교직원동 중의 한 곳이었다. 그곳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손쓰는데 일주일이 걸려, 준비된 생체인증기에 지문을 확인시키며 방 안으로 들어간 것은, 마츠다에게 이 프로젝트의 이야기가 제기된 후 한 달 뒤의 일이었다.

당분간은 거기에 기재를 반입하거나 프로젝트의 계획서를 눈으로 훑어보거나 하는 날이 계속됐다. 프로젝트의 개요를 읽어보면 확실히 마츠다에게 제안이 왔던 것을 납득할 만한 내용이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감정, 기억, 사고와 같은 그것들을 작용시켜 어느 정도 컨트롤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내걸고 있었다. 마츠다가 이 학원에 입학하게 된 계기인 개인 연구 성과는 기억분야의 것이었지만, 이번 프로젝트가 가장 목표로 하는 것은 감정의 제어였다. 흥미 관심 욕심, 그리고 두려움의 컨트롤에 대해서 연구하여 일정한 성과 혹은 견해를 올리는 것이 마츠다에게 부과된 사명이었다.

도저히 간단한 과제는 아니었다. 재학중의 몇 년간 그런 성과를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면 인류가 지금까지 이뤄낸 역사는 뭐였냐는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마츠다가 그것들을 능가하는 유례없는 천재라고 한다면 그것도 가능할 일이지만, 감정에 대한 접근법은 전문으로 연구해온 분야가 아니었다. 학원 측도 그것은 알고 있는 듯해, 프로젝트 진행에 있어 하나의 방안을 제시했다. 그것이 『정신외과』 라는 선택지였기에, 마츠다는 겨우, 그들이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프로젝트의 환경을 만들어 왔는지를 이해했다.

마츠다의 재능을 기르기 위한 최대한의 환경, 이라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그 금기를 건들려고 했던 것이 틀림없다. 필시 마츠다가 모르는 곳에서는 뭔가 다른 의도가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그것에 한 몫을 보탤 뿐인 일이다.

분하긴 했지만 여기까지 판이 커져버린 이상,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서 준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부담감이 조금은 덜어졌다. 권리, 의무, 책임이라는 것이 붙으면 아무래도 사고가 주춤하여 곤란하니까. 마츠다는 그런 곳에서 과민해지는 남자였다.



이 나라에서 꽤 오래 전에 부정당했던 정신외과에 부탁하기로 결정한 후, 일을 실현시키기까지는 거기서 2개월 정도의 준비가 필요했다. 마츠다가 수술을 하는 것은 아니고, 학원의 주문에 대해 파고들어 수술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마츠다에게 맡겨져, 그것만으로도 꽤나 신경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인체실험을 다루는데 이렇게나 단기간에 얘기가 진행되는 것도 반대로 상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역시 이 문제의 전모는 훨씬 거대하고,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오고가고 있는 것이다.

마츠다가 실험체의 소년과 만난 것은 입학하고 반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학원에 들어왔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까지 어디서 무얼 했었냐고 물어봐도 대답하려고 하지 않았다. 역시, 마츠다를 위해서 데려왔다는 건 거짓말이다.

소년의 이름은 히나타 하지메라고 했다. 전달된 데이터를 보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극히 평범한 소년으로, 모든 수치가 이상적일 정도로 평균치를 맴돌고 있었다. 신경쓰이는 점은 그야말로 성장중으로 여겨지는 신체의 불안정함과, 다음은 어떻게 해도 패기가 없는 점이라는 걸까.

여름이 지나고, 수술날짜를 2주 앞둔 날, 프로젝트 룸을 찾은 히나타는 언제나보다도 패기가 없고 얼굴은 핏기가 사라져 창백해져 있었다.

수업 이외에는 대체로 이곳에서 보내게 된 마츠다는 소파 침대나 책상에 거기다 냉장고나 전자렌지까지 들여서 완전히 생활감이 물씬 느껴지는 방으로 만들었기에, 처음에는 긴장한 표정으로 방문했던 히나타도 꽤 익숙해져 있을 터였는데, 이날만은 낌새가 이상했다.

정기검사 때문에 침대에 누운 히나타는 묵묵히 조치를 준비한 뒤에 마츠다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수술……하는거죠」


마츠다는 장치하던 기기에 손을 댄 채로, 한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동요를 눈치채지 않게 하려고 크게 어깨를 으쓱하고 숨을 내쉬었다.


「하는 건 내가 아니야. 전문 외과의가 할거니까 안심해」


그것을 들은 히나타는 놀라 마츠다를 쳐다봤다.


「마츠다씨가 하는 게 아닌가요」

「저기 말야, 내게 메스를 맡기고 싶은 거야? 말해두겠는데, 이 나라에서 전문의 자격증을 따려면 의대를 졸업하고 6년의 연수를 쌓지 않으면 안된다고. 나한텐 10년 정도가 부족하고, 애초에 나는 외과에 관심이 없어. 알겠어?」


입학시기부터 말하면 히나타와 마츠다는 동기와도 같다. 전에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1년 정도 보내고 키보가미네에 입학한 것까지 치면 실제의 나이도 같다. 그래서 쓸데없이 경어를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하지만, 히나타는 왜인지 경어를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도대체 키보가미네는 이 소년을 사용해 무엇을 하려는 건가, 마츠다로서는 그 진상을 아직도 알 수 없었다. 자신에게 맡겨진 부분만으로도 충분할 정도로 거대한 이야기였으니까, 이 이상은 건드리지 않는것이 신변에 좋겠지. 아마 학원 측도 마츠다의 이런 총명함을 사서 프로젝트에 끌여들였을 테니까.

마츠다가 놀란 것은, 히나타가 수술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프로젝트 내에서 그 얘기가 결정된 것은 벌써 두달 전 일으로, 당연히 히나타도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실험체와의 계약은 학원 측이 하고 거기에 마츠다 개인은 전혀 관여하지 않을 것――그 약속에 따라 히나타와의 조정에는 마츠다는 관여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설마 이제와서 알게 되었다고는 생각도 못했다.

말해선 안된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되면 마츠다도 하기가 불편해졌다. 설마 어떤 수술인지조차도 듣지 못한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면 과연 마츠다도 가슴이 괴로웠다. 하지만 이렇게나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자신의 눈에 기구를 넣고 뼈를 뚫어 뇌를 건드린다는 것을 들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히나타가 입술을 떨면서 마츠다에게 고백한 불안은, 수술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저는, 변하는 건가요?」


침대에 누운 채 똑바로 천장을 보며 그는 그렇게 말했다.


「공포도, 고통도, 한심함도, 다 지워진다고 들었습니다. 자랑스러운 자신이 될 수 있다고. 자신도 타인도 용서할 수 있게 된다고. 하지만, 무서워요. 그렇게 되면, 평범하게 있는 것을 받아들인단 건가요? 의문도 품지 않게 되나요? 만약 그렇게 됐을 때, 저는 지금의 저를 어떻게 생각하게 되죠? 그건, 정말로 저인 걸까요.」


얇은 시트 위에 올려진 손가락 끝이 눈에 보일 정도로 떨고 있었다. 이윽고 눈의 초점이 맞지않게 되더니, 딱딱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츠다는 노골적으로 혀를 차며 언제나처럼 두꺼운 수건을 눈 위에 덮어 그의 시야를 차단했다.


「안심하라고 말했잖아, 두 번 말하게 하지마, 쿠즈. 그리고 질문은 한 번에 하나로 한다. 아니면 얌전히 입 다물어.」


*쿠즈, 고미쿠즈, 카스 등의 단어는 직역하면 모두 쓰레기기에, 따로 번역하지 않았음


공포도, 고통도, 한심함도, 다 지워진다――그것은 이번 수술의 설명으로는 정확하다. 감정을 컨트롤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프로젝트가 선택한 것은, 우선 그것들을 둔화시키는 것이었다. 옛날에 사용했던, 불안을 없애는 데 가장 유효했던 외과 수술을 채용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 때문이다. 현재로는 항정신약물의 작용에 의해서 제어하고 있는 그것을 근본부터 물리적으로 바꾸어버림으로써 이후 발생하는 변화를 연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는 그 『첫걸음』을 위해서 준비된 실험체로, 감정을 둔화시킨 뒤 자기 자신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프로젝트에서 전혀 들은 것이 없다. 거기서 마츠다가 헤아릴 수 있는 사실은 하나――이 소년은, 만약 일이 잘못되었을 때 사라지더라도 문제없는 재료로써 이곳에 제공되고 있다는 것.


「걱정 안 해도 너는 『평범』이 아니게 될 거다」


불쑥 말하면 히나타의 떨림은 진정되었다. 입가가 어색하게 미소지은 것을 보고, 마츠다는 다시 안타까운 심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히나타가 이렇게 발작적으로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데이터 상에는 일절의 이상이 없는 그가 실은 정신질환의 종류를 안고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 적도 있지만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정기보고에 올리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프로젝트를 관할하는 상층부에서는 그 일을 이미 파악한 것 같았고, 트라우마 같은 것을 하나 갖고 있을 뿐이라고 짧게 설명해줄 뿐이었다.

마츠다가 생각하기로, 상층부는 히나타가 이런 인간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프로젝트에 불러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정서장애라고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그것에 가까운 증상이 있다면 성과를 관찰하기 쉽기 때문이다.

히나타의 상태를 보면, 속아서 끌려온 것도 아닌 것 같으니 아마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학원은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있는 실험대를 원했고, 히나타는 그것의 제거를 희망했다. 그런 것은 아닐까.

앞머리 주변에 작은 흡판과 칩을 붙이고, 마츠다는 셔츠의 소매를 걷어붙이고 그에게 물었다.


「너, 항상 그렇게 겁내는 건 왜 그런거야」


히나타의 몸이 움찔했다. 바들바들 입술이 떨리며 가느다란 숨소리가 새기 시작했다. 그것을 예측한 마츠다는 그의 오른팔을 억누르며 준비된 주사기 끝을 재빨리 정맥에 찔렀다.


「진정하고 말해봐. 가급적 평소처럼」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귓가에 속삭였다. 약이 주입되며 굳어있던 히나타의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강제적으로 진정시키는 것은 두번째였다. 첫번째는 지난번 정기검사때, 마츠다의 가벼운 말에 과잉반응한 히나타가 이성을 잃었기에 진정시키려고 어쩔 수 없이 투여했다. 그때 가벼운 수면상태에 빠졌던 히나타가 마츠다의 물음에 대해서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기에――마치 동급생에게 말을 거는듯이 평범하게 답했던 것을 봤던 마츠다는 이러한 투약에 의해 그에게서 일시적으로 공포를 제거하고, 쓸데없는 사고를 막아냄으로써 히나타의 마음 속에 가라앉아 있는 무언가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학원 측이 뭘 감추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마츠다가 그것을 알아보는 것은 프로젝트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연구자로서의 탐구심에 따른 행동에 불과했다.


「나, 나는……나는……」


점점 목소리의 힘이 빠져나가고 히나타는 헛소리를 하듯이 중얼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두려워, 평범해선 안돼, 평범한 인간은, 천재인 인간보다 필요없으니까, 천재보다 살아갈 가치가 없으니까, 뭔가가 되지 않으면, 안 돼……」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어?」


물어보면 히나타로부터 대답은 없었다. 몸의 경직이 완전히 풀려서 졸음이 쏟아진건가, 라고 생각해서 눈가를 덮고있는 수건을 걷으면 제대로 떠져있는 그 눈가에는 고인 눈물이 구슬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 내가, 그렇게 생각했어. 평범으론 안된다고. 좀 더, 자신을 믿을 만한 무언가가 있어서, 떳떳하게, 가슴을 펴고, 사람들의 도움이 되는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지금까지 막연하게만 보였던 불안을 입에 담는 히나타로부터, 처음으로 구체적인 에피소드에 접할 단어가 튀어나왔다.

마츠다는 주위에 시선을 돌려 사람의 눈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한걸음 더 파고들었다. 그가 숨겨오기만 했던 그 기억에 접근하기 위해서.


「그때라니 언젠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

「어렸을때……」


판단력이 떨어진 것일까, 그는 반사적으로 마츠다의 질문에 답했고 띄엄띄엄하면서도 스스로의 기억을 더듬으며 간간이 언급했다.


그것을 들은 마츠다는, 조금이나마 구제된 기분이 되었다.

만약 수술을 통해 히나타가 이런 기억으로부터 해방된다면 그것은 그에게도 매우 좋은 일이 된다.

자신을 그렇게 타이르면서,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이 길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을 마츠다 자신도 눈치채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눈 앞에 있는 이 불쌍한 인간을 마주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



수술이 진행되던 날 밤, 아직 깨어나지 않는 히나타에게로 발길을 옮긴 마츠다는 끔찍한 얼굴과 마주하게 되었다.

굳게 감긴 눈 가운데 오른쪽만이 심하게 부어있었다. 청자색으로 변색되어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몰골이 되어있었다. 왼쪽 눈은 아주 조금의 붓기 밖에 남아있지 않은 걸로 보아 오른쪽의 수술때 무슨 착오가 일어난 것은 일목요연했다.

유능한 신경 외과의사를 데려왔다는 건 아무래도 말 뿐이었던 것 같다. 전신 마취 하에 진행된 수술이므로 환자가 난동을 피웠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단순하게 기구의 취급을 잘못했거나 손이 미끄러졌다던가 공부 부족에 의해 어딘가의 혈관을 상처입혔다던가, 그런 것이다.

수술이 실패했다는 보고는 올라오지 않았다. 수술 후 시간이 흘러도 그는 눈을 뜨지 않았지만 바이탈 사인은 안정된 그대로였다. 생명의 위험에 노출되게 되면 마츠다에게도 연락이 있을 것이므로 일단 상태를 지켜보자는 것이 되겠지. 혹은, 앞으로의 경과를 관찰연구해야 하는 마츠다와 달리, 수술자 자신은 부탁한 수술(눈 구멍으로부터 기구를 넣어 전두엽과 시상 사이의 신경경로를 훼손한다는 간략한 것)만 끝내면 그 뒤의 일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츠다의 속에서는 매우 불길한 예감만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이런 꼴사나운 수술자국이 남은 얼굴을 보고 낙관적이게 되긴 어려웠다.

히나타가 깨어난 것은 수술 다음날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마츠다의 프로젝트 룸에 오기까지는 한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수술 후 불안정한 점이 있으면 안된다며 외과팀이 경과 관찰에 시간을 들였는데, 그 동안 마츠다는 히나타와의 접촉이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그것이 더욱 불안을 부추겼다.

딱히 직감이 날카로운 편이라는 게 아니라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이번에는 보기좋게 그것이 맞아떨어진 것 같다.

한달 후, 프로젝트 룸에 히나타를 데려온 건 마츠다의 프로젝트를 감독하는 입장에 있는 생물학의 교원이었다.

그는 휘청거리는 히나타를 침대에 걸터앉게 하고 자신은 소파에 뽐내듯이 걸터앉아, 양해도 구하지 않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보고있는 대로, 대실패야」


그것만을 말하고 분하다는 얼굴로 히나타를 바라본다.

마츠다는 1밀리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히나타에게 시선을 빼앗겨, 정밀기계가 늘어진 방 안에서 흡연을 한다는 것을 지적할 여유가 없었다.

살짝 다가가 보지만 히나타는 얼굴은 커녕 눈조차 마츠다에게 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어이, 라고 말을 걸어봐도 반응이 없다. 어깨에 손을 얹고 흔들면 인형처럼 흔들흔들 흔들렸으나 손을 놓으면 다시 원래대로 굳어버렸다.


「……수술을 실수한 겁니까」


힘없이 침대 위에 올려져있는 오른손을 잡고 표면의 피부를 손톱 끝으로 강하게 눌러본다. 손톱 자국이 붉게 남을 정도로 힘을 줘봐도 히나타는 표정의 변화도 없고 시선을 움직이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번 수술의 가장 큰 목적은 히나타가 안고있던 불안과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이런저런 것들에 겁먹는 기분을 둔화시키는 데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으로부터 흥미나 관심과 같은 욕구를 어느 정도 빼앗으면 인격이 어떻게 변화하는 지도 연구대상으로 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본래의 목적이라기보다 부작용으로 발생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의 감정만을 생각대로 잘라낸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히 될 리 없다.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있는 불안을 의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수술에 불과했다. 그 폐해로,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 둔해지고 자발성의 저하가 초래되는 것은 예상 범위 내였다.

그렇지만, 통증 자극에마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여기까지 자력으로 걸어오는 것이 가능했으니 식물인간이란 건 아니겠지만, 일체의 커뮤니케이션을 나누지 않도록 되어버렸다면 이는 당초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 된다. 그것은 감정을 컨트롤했다고 말 할 수 없으며, 그냥 폐인을 만들어 낸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생물교사는 콧구멍으로 가득히 연기를 내뿜으며 주머니에서 꺼낸 휴대용 재떨이 속에 긴 재를 떨어뜨렸다.


「실수했다, 인가……. 어려운 부분이군. 수술 자체의 결과로서는 뭐 당연한 것이겠지. 네 프로젝트의 실험체로는 충분한 연구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이 녀석은 이제 쓸모없어졌어. 단계 2의 예정은 고치게 될 거다.」


그는 노력을 기울여서 확보한 실험체가 벌써 고물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만 걱정하고 있을 뿐으로, 눈 앞의 불쌍한 한 인간에게는 아무런 흥미도 갖지 않았다. 마츠다도 실험체를 동정할 기분은 되지 않았지만, 속이 답답한 것은 담배 연기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대체 학원은 히나타를 사용해 무슨 일을 하려고 했을까. 실패에 대한 낙담상태를 보아하니 역시 마츠다가 생각해온 이상으로 큰 기대가 움직이는 일인 것 같았다.


「또 다른 실험체를 알아봅니까」


일부러 교원의 표현을 빌려서 물어보면 신경에 거슬렸는지 그는 부루퉁한 모습으로 손에 들고있던 담배 끝을 재떨이 속에 넘겼다.


「입을 벌리고 먹이를 기다리는 사람은 편해서 좋겠구나.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사라져도 좋은 인간』을 찾는 것은」

「실험체의 제공은 학원 측으로부터 제시된 조건이니까요, 저는 편한게 당연하죠. 그래서, 편한 저는 편하게 연구를 계속하면 되는 겁니까? 아니면, 여기서 끝내는 겁니까.」


엷은 웃음을 띄면서 공격적으로 물어보면, 교원도 입가를 끌어올렸다.


「올해 신입생들은 생기넘쳐서 좋군. 젊을 때에는 뭐든 물어뜯는 것이 능력이니까. 있는 힘껏 불평부리라고」


충고로도 응원으로도 해석되는 말을 고하고,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난다. 마츠다도 일어났지만, 히나타는 그 어느 쪽에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여전히 어딘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네 프로젝트는 예정대로 진행된다. 그렇다고 해서, 무엇을 얻게된다고는 말 하지 않겠지만, 안심해도 좋아. 누구도 성과 같은 걸 바라고 있지 않으니까. 기대도 하지 않고. 아아, 물론, 너에 대해서가 아니라 거기 있는 고물에 대해서야.」


교원은 히나타를 턱으로 가리키고는, 두꺼운 종이 다발을 마츠다에게 넘겨주고 방에서 나갔다. 담배연기와 정적만이 남은 방에서, 마츠다는 넘겨받은 자료로 눈을 떨어뜨렸다. 한달 동안의 히나타의 관찰사항에 대해 쓰여있는 듯했지만, 데이터가 잡다하게 나열되어 있을 뿐, 빈말이라도 정리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자료였다.


「실패라는데. 어떤 기분?」


종이 다발로 히나타의 머리를 두드려본다. 지저분하게 자라난 머리카락이 귀 근처에서 흔들릴 뿐 아무런 항의도 돌아오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이랑 생년월일, 말 할 수 있겠냐」


그의 앞에 서서 조금 큰 목소리로 물어보았지만 역시 소용없었다. 그전에 눈 앞에 있는 마츠다로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말하는건 이해하겠어?」


안 될 것이라고 알면서도 확인한다. 히나타는 한 번 눈을 깜빡했을 뿐 그 이외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츠다는 머리를 벅벅 긁고 자료를 데스크 위에 던졌다.

마치 자발성을 잃어버린듯 했다. 청력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말의 의미를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마츠다는 시험삼아 히나타의 양 어깨를 잡고 침대로 무너뜨려봤다. 그러면 예상대로 히나타의 눈은 스르르 감겼다. 다시 한 번 일으키고 보면 또 연다. 또 한 번 자료를 들춰보면 근력도 어느 정도 떨어졌다는 것이 기재되어 있었다. 긴 시간 외과팀에서 해방되지 못한 것은, 걷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인 것 같다.

계속해서 읽어보면 수술 후에 눈을 떴을 때에는 이보다 훨씬 심한 상태였던 것 같은 구절이 들어 있었다. 마비와 실금과 같은 증상은 마침내 사라졌다는 회복의 경위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 정도의 증상이 있었다면 수술 자체도 훌륭하게 실패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생각했지만, 그들에게 적의를 가져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적어도 여기까지 회복했다는 건 앞으로의 회복에도 어느 정도 희망을 가져볼 만 했다. 마츠다에게 그 정보는 구원이 됐다. 이 인형을 상대로 연구를 추진해야 하는 건 매우 고통스러우니까 말이다.

설마 이 인형의 보모역할을 하라는 건 아닐테니까, 향후 처리에 대한 상세한 것은 추후 연락이 올 것이다. 수술 전의 그를 알고있는 바람에 복잡한 심정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동정하고 위로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마츠다는 무감정하게 그를 건드리며 그 반응을 확인했다.

간지럽혀 보아도 반응이 없다. 당연하지만 쓰다듬어도 무반응이었다. 주머니에서 꺼낸 샤프로 예고없이 허벅지를 찌르면, 몸이 한순간 굳어 표정이 꿈틀하고 움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목소리는 하나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실험체가 내뱉는 말은 더할 나위 없는 관찰 재료이다. 비록 변변한 말이 되지 않더라도 그가 지금 무엇을 느끼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우선 마츠다가 해야할 것은 그의 닫은 입을 열게 하는 것이었다.

물리적으로 열게 해볼까, 라고 생각한 마츠다는 그의 턱을 잡고 굳게 닫혀있는 입술 사이에 엄지손가락을 넣었다. 우선은 여기서부터 목소리를 내게 해, 말에 의하여 커뮤니케이션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야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입 안에 손가락을 밀어넣는 순간, 히나타는 힘껏 이를 세워 마츠다의 손가락을 물었다.


「아!」


짧은 비명을 지른 마츠다는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뽑았다. 가차없이 씹힌 엄지손가락의 첫번째 관절 부근에는 멋진 잇자국이 남아있어, 시간이 지나도 피부는 우그러진 그대로였다.


「너……아무것도 모른다는 건 아니란 건가……」


이 방어반응이 어떠한 심리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그의 안의 불안이나 공포같은 요소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만약 그것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그것을 전하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라고 하면, 그는 지금 이 무표정한 얼굴 아래에서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일까.

마츠다가 손가락을 빼내면 히나타는 다시 인형처럼 굳어 꼼짝하지 않았다. 마츠다가 다시 입술을 만져도 적의는 보이지 않아 마치 경계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방금 그의 허벅지를 찌른 샤프의 손잡이를 살짝 입술에 닿게하자 역시 빠득 소리를 내며 물어뜯었다.

대체 거기에 무슨 의미가 숨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반응을 보인다는 것에 마츠다는 흥미를 느꼈다. 시험삼아 그의 목덜미에 손을 얹고 보면, 맥박은 확실히 빨라져 있었다. 히나타 자신이 자각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의 마음은 무언가를 생각하고, 무언가를 느꼈음이 틀림 없었다.

연구할 가치가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불만을 말하지 않는 환자를 대상으로 자유롭게 실험을 할 수 있으니 더없는 기회가 아닌가. 마츠다는 호기심을 되찾고 방대한 관찰 데이터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의욕 속에, 전에 만났던 히나타 하지메라는 개인을 되찾기 위해서 전력하겠다는 마음이 있었는지 어떤지는, 마츠다로서도 알 수 없었다.



*****



「제가 수업에 나오지 않는 것을 땡땡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마츠다상은 그 이유를 알면서도, 저를 감싸주지 않고, 변함없이 교실 끝에서 모른 체하며 만화를 읽고 있었구요……. 그런데, 저, 그 다음날부터 갑자기 욕을 듣지 않게 되었어요. 제가 생각해 봤는데, 마츠다상이 몰래 뒤에서 말해준 게 아닐까요? 분명 그럴 거예요, 저에게 의뢰해온 건 마츠다상 쪽이었고, 제가 그것 때문에 괴롭힘 당해서, 만약 프로젝트의 비밀을 말해버린다면, 우후후, 분명 곤란할 테니까요! 그러니까 마츠다상은 상냥해요. 굉장히 상냥해서, 저, 너무 좋아요. 당신도 좋아하죠?」


나긋한 어조로, 그러면서도 단숨에 말한 츠미키는 붉은 얼굴로 호흡을 내쉬었다. 얼굴에 홍조가 생긴 것은 쉼없이 말하느라 산소부족인 것도 있었지만, 흥분한 탓기이도 했다. 언제나 쩔쩔매서 말하는 도중에 남이 참견하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마지막까지 제대로 말한 것이 기뻐서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보살펴주라고 본부받은 대상인 학생은 항상 이 교직원동의 구석진 방 속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방의 출입은 엄중하게 관리되고 있어 그가 스스로 이곳에서 나올 수는 없었다. 츠미키는 간병을 위해서 들어가는 것이 용서받아, 라기보단 그렇게 하도록 요구받아, 방 입구의 생체인증기에 자신의 지문을 등록했다.

창문은 있었지만 밖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처리가 되어있고 열리지 않는 구조였기 때문에 뭘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침대 위에 앉은 채 똑바로 정면을 볼 뿐으로, 창 밖의 풍경을 보는 일은 없었기에 크게 문제는 없어보였다.

간신히 빛은 들어오고 있어서, 그것을 인식하는지는 몰라도 지금이 낮이라는 것은 알 것이다. 교실에서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시간이지만 츠미키는 한동안 시중을 부탁받았기에 요즘 수업에 얼굴을 비출 일이 없었다. 물론 개인 사정으로 결석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학원 주도의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으므로, 대신 구성된 야간 특별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수면시간은 기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츠미키는 마츠다에게서 이 임무를 맡은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보건의원이라는 직함으로 스카우트된 츠미키는 어느 학생보다도 압도적으로 임상현장에 참여한 경험이 많았다. 집중 치료가 필요한 위독환자는 물론이거니와, 이 정도의 일상의 보살핌을 봐주는 정도는 쉽게 구사할 수 있다. 마츠다와는 달리, 본과생이면서도 많은 예산을 할애받지 못했던 츠미키에게 있어서는, 활약의 장소가 펼쳐지리라고는 바라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눈 앞의 환자는 이 학원에 재학중인 학생들과 비슷한 또래로, 츠미키가 돌봐주기 시작하고부터 한 달간 키가 자라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키보가미네의 학생인지 아닌지 츠미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츠미키는 그의 이름조차 몰랐다. 마츠다에게 물어보아도 「이름은 없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라고밖에 답변을 받지 못했다.

마츠다는 프로젝트 내의 조건에 따라 츠미키가 참가하도록 요청했을 뿐, 같은 반 친구의 친분으로 협력을 부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히나타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것도 프로젝트 조건의 사정에 불과했다.

히나타 하지메의 이름은 잊어라, 는 것은, 마츠다 자신이 상층부에서부터 들었던 말이다. 사정을 물어봐도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때 교사가 말했던 『사라져도 좋은 인간』 이란 말은 그러한 의미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이 프로젝트가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됐을때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인간이 되어 비밀리에 처분되는 것이다. 처분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마츠다는 몰랐지만, 생각하기도 싫은 내용임에는 틀림 없었다.

그런 사정을 전혀 듣지 못한 츠미키는, 엄중하게 갇혀있는 소년을 볼 수록 불쌍하다는 마음이 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학원의 감시보호 아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 자신은 빈말로라도 극진히 대접받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취급에 어려움을 느껴 이곳에 가둬둔게 아니냐는 것이 츠미키가 현장에서 받은 솔직한 감상이었다.

츠미키는 그의 뺨을 상냥하게 어루만지며,


「당신은 대체, 누구인가요?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나요……? 있죠, 당신의 이름은, 뭐라고 하나요?」


라고, 한숨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사람을 어루만질 수 있는 게 기뻐서, 츠미키는 필요 이상으로 그를 만지는 일이 늘고 있었다. 또래의 소년이라는 점도 있고, 몸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이상할 정도로 흥분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저 저항할 힘을 상실한 불쌍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츠미키도 알고 있었기에, 이것이 사랑인가라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았다.

뺨을 쓰다듬으며 턱이나 목젖 같은 남자다운 선을 따라가 기쁨에 젖으면, 예고도 없이 그가 입술을 열었기에 츠미키는 팟, 하고 손을 떼고 그의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아, 안돼요, 말하면 안돼요오, 죄송해요, 죄송해요, 듣고싶었던 게 아니에요, 제가 혼나니까 말하지 말아주세요……!」


그의 입을 막은 손에 따뜻한 숨결이 닿았다. 그는 몇번인가 눈을 깜빡이고 몇초가 지난 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츠미키는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더니 환하게 웃으며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후후, 착한 아이군요. 좋은 아이, 좋은 아이. 아주 착한 아이. 제 이야기를 잔뜩 들어주고, 저를 야단치지도 않고, 저를 의지해주기도 하고, 좋은 아이, 좋은 아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몇 번이고 손을 왕복시키면, 자란 앞머리의 틈사이로 츠미키를 보고있던 눈이 기분 좋은듯이 가늘어지더니, 이윽고 스윽 감겼다. 아이를 달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좋다고 마츠다로부터 들었던 그대로, 성장하는 몸과 달리 그 속내용물은 어린아이로 되돌아가는 듯한, 그런 인상을 받았다.


「어라, 또 늘어났네요……상처를 보아도 괜찮을까요?」


흘러내린 환자복의 어깨부분을 고치려하다가 문득 어깨에 낯선 거즈를 발견한 츠미키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서지컬 테이프를 뜯어 상처를 살펴보았다.

조치에도 불구하고 예쁜 직사각형 모양으로 잘린 상처에서는 연분홍빛 살점이 보이고 있고 거즈에는 배어나온 체액이 부착되어 있었다. 츠미키는 눈썹을 찡그리며 원래대로 테이프를 돌려놓았다.


「이번에는 무슨 실험을 당했던 거죠……? 이 근처는 새로운 피부가 재생되는것이 매우 느려요. 이런 처리로는 감염될 거예요……. 그치만 혹시 일부러 이런 식으로 관찰하는 걸지도 모르니, 저로는 무엇도 해줄 수가 없어요. 아아, 죄송해요,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해요, 부탁이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주세요……」


푹 고개를 숙였지만, 츠미키는 금방 고개를 들어 그의 모습을 살펴보며 우후후, 웃었다.


「연기예요. 당신의 눈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저를 멸시하거나, 야단치거나, 하지 않으니까요……우후, 후후후」

「너 항상 그런식으로 거울에 말 거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와, 츠미키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높은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뒤쪽에 마츠다가 서있어, 어이없다는 얼굴로 츠미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츠미키가 항상 사람들에게서 받는, 귀찮은 것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마츠다는 주로 어떤 인간이든 이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어서 특별히 츠미키를 귀찮다고 생각하고 있는건 아니었다.

입구의 생체인증기는 인증을 거치면 삐삐삐 하는 전자음이 울릴 것이었지만 말하는 것에 열중한 츠미키는 그가 온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침대 옆의 파이프 의자로부터 일어서려고 하다가 다리가 걸려 의자 채로 뒤로 꽈당 넘어지고 만다. 마츠다는 그것을 도우려 하지 않고 능숙하게 피했고, 츠미키는 벌러덩 뒤집힌 자세로 천장을 향해서 몇 번이고 사과했다.


「죄, 죄송해요, 죄송해요, 그런게 아니에요, 이 사람에게 악영향을 주려고 했던 게 아니에요, 마츠다상의 연구에 실례가 된다면 저,」

「야스케」


츠미키의 말을 가로막은 것은 침대 위에 앉아있던 그였다. 츠미키는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굉장히 귀중한 것으로, 못 알아듣게 되면 마츠다에게 지독히 야단맞기 때문이다.


「어이 고물. 몇 번 말해야 알아들을 거야.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병사로 가장해서 죽여버린다.」


어깨 근처까지 자란 머리카락을 난폭하게 잡아당기면서 마츠다는 「알겠어?」 라고 주의를 줬다. 히나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차피 내일이 되면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우선은 매일 얼굴을 마주보는 인간의 이름부터 외우게하자고 생각해 마츠다 야스케라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는데,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이름 말고 성만을 말해줄 걸 그랬다고 마츠다는 후회하고 있었다.

그래도, 겨우 한달 만에 여기까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회복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을 식별하고 이름을 부르고 질문에 수긍한다는 반응은 경과가 매우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완전히 대화가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꽤 관찰하기도 쉬워졌다. 매일매일 돌봐준 보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츠다가 제일 처음에 착수한 것은 새로운 무엇인가를 알고 배우는 힘이 그에게 있는가하는 조사였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 마츠다는 정기적으로 히나타의 뺨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그것도 꽤나 사정없이, 뺨이 부어오를 정도의 힘으로. 그러자 며칠 반복된 뒤에 마츠다가 손을 치켜든 순간 히나타는 몸을 긴장시키도록 되었기에, 학습능력은 정상적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그것만 알면 웬만한 교육은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다. 조금 고생했지만, 이해했을 때에는 고개를 끄덕이도록 가르치고, 식사를 스스로 하도록 훈육――그 즈음에서 대체 자신이 왜 양육같은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면 안되냐는 것을 깨달은 마츠다는, 프로젝트 회의를 통해서 츠미키가 참여할 것을 요청하게 된것이다. 덕분에 지금은 연구 쪽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래도 수술에 의해 한 번 모든 감정에서 손을 뗀 히나타는, 유아가 여러가지를 흡수하고 성장해가듯이 다시 그 과정을 걷고있는 것 같다. 그 경과는 정말 관찰할 보람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마츠다의 보고는 이미 프로젝트에 흥미를 잃었던 상층부의 관심을 자극하는 것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마츠다의 보고가 그들을 자극한 것은 꼭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다시 이용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 히나타는 실험체로써 그들의 눈에 들어, 프로젝트 외의 여러가지 실험에 끌려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덕택에 히나타의 상태는 안정되지 못하고, 외상도 끊이지 않았다. 날마다 다른 곳에 감겨진 붕대를 발견할 수록 마츠다의 기분은 악화되었다.

그래도 뇌를 간섭하는 실험에는 끌려가지 않았지만, 향후 어느 정도의 인격이 형성되고나면 실험에 이용당하는 것에 심적부하를 호소하게 될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하소연이 가능하게 된다면 다른 프로젝트의 참여요구를 거절하는 것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마츠다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으면, 겨우 일어난 츠미키가 조심조심 마츠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 저기, 그와 대화하는 거, 그만두는 편이 좋겠죠……? 그만둘게요, 관둘 테니까, 저를 내쫓지 말아주세요……!」

「아니, 자극은 많은 편이 좋아. 그대로 계속해.」


실제로도 낮중의 보살핌을 츠미키에게 맡기고 난 뒤부터 히나타는 더욱 감정이 풍부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런 건 여자쪽이 좋을 지도 모른다, 라고, 모성이란 것을 한조각도 갖고있지 않은 마츠다는 무감정하게 생각했다.


「이 녀석이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건 네 덕분인지도 몰라. 지금처럼 내게 도움이 되어줘」


아무런 생각도 없이 대충 그렇게 말하면, 두려워하던 츠미키는 순간 얼굴을 무너뜨리더니 뚝뚝 눈물을 흘리며 죄 풀어진 얼굴로 웃었다.


「우후후……저, 도움이 되는 걸까요……마츠다상의 도움이……이 학교의 도움이 되는 거네요……!」

「기분 나쁘니까 일일이 눈물이나 콧물을 흘리는건 그만둬. 네 수분 조절 기능은 어떻게 된거야? 나쁜건 얼굴만으로 해둬라」


그렇게 말하면 츠미키는 과할 정도로 빌면서 교복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이 학원의 성질상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괴짜들만 모여있는 것 같아서, 지금껏 유연하게 살아왔던 마츠다로서도 상태를 흩트리게 되는 일이 늘었다. 입학한지 1년이 지나가는 지금은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지만 마츠다에게 있어서는 사람과의 교제에 익숙해진다는 감각 자체가 기분나쁘다고 생각되는 것이었다.


「아, 그렇지, 마츠다상, 뭔가 변한것이 있다면 말하라고,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오……」

「있었나?」


날카로운 반문에 츠미키는 우물거리며 눈을 피했다.


「저, 저기, 바뀐 것인지는……하지만 저, 기뻐서……제가 기뻤을 뿐인지도 모르지만, 마츠다상에게 말할만한게 아닐지도 모르지만……」

「됐으니까 말해봐. 뭐가 있었는데? 두번 말하게 하지마」


초조해하며 재촉한다. 츠미키는 흠칫 몸을 움츠리며 겁먹은 채로 말했다.


「저기, 그, 방금, 울었었어요. 주륵, 하고 눈물이 넘쳐흘렀어요. 일단, 찍어두었는데……」


츠미키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사진 한장을 화면에 표시했다. 히나타를 정면에서 찍은 것으로 그는 사진을 찍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확실히 두 눈에서는 물이 떨어져, 볼을 흘러내려 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상상 이상의 수확에 흥미를 나타낸 마츠다는 휴대폰을 뺏어들고 그것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정말이네. 나도 처음 봤어. 대체 뭘 했길래 이렇게 됐지?」

「화내지 않는다고 약속해드린다면, 말하겠지만……」

「됐으니까 말하라고 했지. 두번 말하게 하지 말라고도 했고. 말이 들리지 않는다면 보청기를 가져와. 5분 기다려준다.」

「화내고 있잖아요오! 어째서 화내지 말아달라고 했는데 화내는 거예요!」

「네가 굼뜨니까 그렇지. 그 우물쭈물하는 얼굴을 보면 험한 말이 나간다고. 네가 나빠.」

「그, 그런……」


츠미키가 또 눈물을 그렁그렁하는 것을 보고 마츠다는 내심 이 녀석이 자신의 눈물을 히나타에게 칠한 것이 아니냐고까지 의심했는데, 세번째는 없다는 위협에 츠미키는 비로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얘기를 들어주는 게 너무 기뻐서, 저, 그의 앞에서 잔뜩 푸념을 늘어놓았어요……이지메 당했을 때의 이야기라던가, 무슨 일을 당했을때 얼마나 싫은 생각을 했었다라던가, 그런 것을 잔뜩 털어놓았더니, 그가, 아무 말도 없이 울어서……」

「……」


주의깊게 얘기를 듣던 마츠다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만약 히나타가 츠미키의 처지에 대해서 눈물을 흘린 것이라면 그것은 새로운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딱 일주일 전, 마츠다는 그에게 한가지 실험을 시키고 있었다. 철도 동호회에서 빼내 온 산 모형을 두고, 히나타를 그 앞에 앉히고 자신은 모형 사이의 건너편, 산 반대측에 앉는다. 산 모형은 높아서 의자에 앉아버리면 상대방은 보이지 않는다.

히나타 측의 산 자락에는 전차를, 마츠다 측에는 신호등 모형을 뒀다. 그 상태를 이해시킨 뒤 히나타에게 무엇이 보이냐고 물으면, 히나타는 전차를 가리켰다. 그럼 마츠다 쪽에서는 무엇이 보이겠냐고 묻자, 똑같이 전차를 가리켰다. 이것은 히나타가 제 3자라는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모든 인간은 자신과 같은 것을 보고 똑같이 사고한다고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분명 그랬을 터였다.

지금의 히나타에게는 이득과 손실이라는 생각이 몸에 붙어있지 않다. 츠미키를 동정하는 것으로 뭔가 얻어내겠다는 생각을 했을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공감하고 눈물을 흘렸을 가능성이 높다. 단 일주일만에 그는 거기까지 성장했단 것이다.

마츠다가 진지한 얼굴로 빠져드는 것을 보며 츠미키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정확히는 방해되니까 사라지라고 야단맞지 않도록 꾸벅 인사하고 방을 나섰다.

마츠다는 그녀를 격려하는 말 대신, 히나타의 팔에 박혀있는 링거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주사는? 언제 뽑으면 되는데?」

「제가 놓은게 아니에요, 도착했을때 이미 맞고 있었으니까……아마 슬슬 약도 다 떨어진 것 같고, 뽑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녀석들인가……이번엔 무슨 실험을 한거지? 제길, 점점 과격해지네……」


마츠다가 살펴보건대, 밖에서 움직이고 있는 무수한 프로젝트는 아마 커다란 하나의 계획에 집약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히나타라는 실험체를 서로 가져가려는 상황이 된 것이겠지. 교사가 입에 올렸던 『단계 2』 라는 말도 신경쓰였다. 그때에는 예정을 고치게 될 것이라고 그랬는데, 히나타가 여기까지 회복되었으니 그 이야기도 달라졌음이 분명했다.

끝나가고 있는 링거를 츠미키를 시켜 뽑은 뒤 그녀를 방에서 쫓아내고, 마츠다는 다시 산의 모형을 세팅하여 히나타를 그 앞에 앉혔다. 어린아이로 돌아갔다면 이러한 장난감들에 흥미를 표시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러한 의욕은 엿볼 수 없었다. 건너편에 앉아 일주일 전과 똑같은 실험을 시작하고, 마츠다 쪽에서 보이는 물건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마츠다의 등 뒤를 돌더니 그곳에서 보이는 신호등을 가리켰다. 역시 그의 인식은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대로 그의 인식 능력이 회복되고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 되었을 때, 불안이나 긴장과 같은 감각에만 무딘 반응을 나타내게 된다면, 이 프로젝트는 생각했던 이상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한 번은 폐인을 만든게 아니냐고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단계를 밟음으로써 인격을 재구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흥미로운 결과가 남는다. 현재 진행되는 『교육』의 과정에서 인격을 마음대로 수정할 여지가 있는 이상, 원초적인 희노애락이란 감정도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는 소리다.

그렇게 한 인간을 개조했을 때, 그것은 같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윤리적인 문제는 남을 것이다. 하지만 마츠다는 한 사람의 연구자로서, 윤리를 논의하기 이전에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츠미키에게 낮의 시중을 맡기고, 그럼 야간에는 누가 돌보느냐고 물어보면 마츠다 이외에는 없었다. 프로젝트 룸에서 묵게 된 것은 연구가 바쁘기 때문이라고 반 친구들에게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연구라기보다는 아이 보기에 가까운 일을 한다는 걸 반 아이들이 알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아무리 날카롭게 말해도 그것이 통하지 않는 인간을 상대하는 것은 마츠다에게 있어서 심하게 피곤한 작업이었지만, 역시 츠미키에게 상태를 전해듣는 것보다 자신의 눈으로 보는 편이 훨씬 쉽게 연구가 진행됐다.

프로젝트 룸 옆의 방은 빈 방이 되었다고 들었지만 그곳에 한개의 침대와 샤워실, 화장실도 병설되어 있다는 것을 마츠다는 히나타의 수술 직후에서야 깨달았다. 적어도 공사를 하고있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으니, 처음부터 마련된 곳이라는 거다. 어쩌면 마츠다에게 데리고 올 때까지 히나타는 그곳에서 관리됐는지도 모른다.

히나타는 그 옆방을 사용해 목욕하게 되었는데, 여전히 다른 팀에 의한 실험은 끊이지 않아 목욕할 수 있는 날도 한정되어 있었다. 이런 상처투성이 몸을 매일 보는 인간의 처지도 생각해 달라고 마츠다가 불평을 털어놓자 이번엔 별 대단한 상처도 아닌데 붕대만을 거창하게 감아놓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마츠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은 아니었지만, 가장 오랜 시간동안 실험체를 독점하고 있는 마츠다를 향한 비아냥이 담겨있는 건지도 모른다.

제대로 목욕조차 할 수 없다면 안되기에, 어느 날에는 히나타를 필요로 하는 팀 일당이 모두 모여 실험기와 휴식기를 정하는 회의를 실시했다. 거기에 모인 것은 상상 이상으로 많은 멤버로, 대다수가 키보가미네의 교원, 또는 OB였다. 보아하니 현역 학생은 마츠다 한 명밖에 없는 듯했다.

그 모임에 참석한 마츠다가 느낀 점은, 크게 두 종류의 팀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는 우선 임상실험을 위해 아무라도 좋으니 실험체를 필요로 할 뿐인 팀. 또 하나는 그 실험체가 히나타 하지메일 것을 요구하는 팀. 전자는 이른바 동업자들이라고 볼 수 있지만, 꺼림칙한 것은 후자였다. 회의의 횟수를 거듭할 수록 그 팀은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히나타 하지메에 대해서, 마츠다는 자세한 내용은 아무것도 모른다――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다. 은밀히 조사해보려고 하면 방해가 들어올 거라는 건 눈에 훤히 보였다. 그렇기에 마츠다는 수술 전에 그에게 직접 물어보았던 것이다. 히나타가 안고있는 트라우마는 확실히 일반 상식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 것이었지만, 그들이 그런 것을 가진 실험체를 여러가지 임상실험을 위해 필요로하는 거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지 않냐고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히나타 하지메라는 개인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가――언뜻 보기에 분야도 연구내용도 다른 팀들이, 동일한 인간을 손에 넣으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제 상층부의 불온한 움직임에도 납득이 갔다. 한 인간을 사용해 무언가 커다란 연구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한 손발로써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했지만 초심으로 돌아가면 이렇게나 커다란 프로젝트에 종사하면서도 학원 측이 모든 위험을 맡는다는 것은, 역시 마츠다에게 있어서는 조건이 좋은 환경이라고 볼 수 있었다. 만약 어떤 연구가 결실을 맺어 전세계를 발표할 날이 온다면 거기에는 마츠다의 이름도 들어가는 것이다. 학원 입장에서는 젊은 학생이 참여했다는 것을 전면에 내보이는 것이 더 좋으니까 말이다.

연구자들의 다양한 의도 가운데 정작 히나타는 여전히 입을 다문채 침대에 앉아만 있고, 자발성의 회복이 둔했다. 자신이 이렇게나 많은 인간들에게, 그것도 일본의 기술의 결실을 모은 듯한 엘리트들에게 필요로 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계속 자라고 있던 히나타의 키는 일단 진정된듯 180에 아주 살짝 모자라는 정도에서 그쳤다. 지금까지는 등을 구부리고 앉는 자세에 대해서 불평했던 마츠다도, 너무 꼿꼿히 허리를 세우고 있으면 방 안이 묘하게 비좁게 느껴지게 되었으므로 심한 잔소리는 하지 않게 되었다. 

눈 안에 들어왔을때 거슬린다고 느끼게 된 원인은 키 뿐만이 아니라, 머리카락이 자라났다는 것도 있었다. 어느 팀에게 붙잡혔을 때에 무언가를 투여받았는지 그 이후로 한 달에 수 센치의 속도로 머리카락이 자라게 되었다. 매일 그를 돌봐야하는 입장으로서 이와 같은 속도로 수염이 자라게 된다면 항의해야곘다고 생각했지만, 그쪽은 또 어떻게 손을 써둔 것인지, 다행히 온몸이 털투성이가 되는 일은 없었다.

마츠다도 머리를 짧게 자르는 편은 아니라 어느 정도 길러서 귀 옆으로 넘기는 식으로 하고 있었지만, 히나타의 머리카락은 이미 어깨 아래까지 자라있었다. 이발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들었을 때에는 아데란스(샴푸 브랜드)의 프로젝트라도 섞여있는 거냐고 불평을 말했지만, 츠미키는 마음에 들었는지 기쁘게 그의 머리카락 손질을 하는 듯했다. 매일 정성들여 빗질을 해주는 것 같다만은, 결국 다른 팀의 실험에 보내지면 유령같은 모습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그 날도 히나타의 머리카락은 어깨 부근에서 산발이 되어있어, 슬슬 목욕 시간이라고 깨달은 마츠다는 히나타를 옆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냥 목욕용 방이 되어버린 옆방은 보통의 자물쇠로밖에 관리되고 있지 않았지만, 생체인증을 하지 않으면 문을 여는 것이 불가능한 프로젝트 룸에서부터 히나타 혼자서는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마츠다는 그를 데리고 옆방으로 들어가 안에서 열쇠를 닫고 그의 목욕이 끝날때까지 대기하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불평만 잔뜩 말했던 마츠다도 이제는 그 방에 있는 침대에 누워 만화를 읽거나 가뜩이나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는 등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낮에 「전체적으로 아이 돌보기가 능숙해졌다」라고 츠미키에게 농담을 전해듣고 입을 다물었던 일이 떠올랐다.

능동적인 움직임이 적은 히나타도 역시 학습하는 힘을 상당히 되찾은듯 필요 최저한의 일이라면 스스로 하도록 변해갔다. 그렇기에 옆 방에 들어가면 스스로 옷을 벗고 정성껏 머리나 몸을 씻고, 제대로 물기를 닦고(머리가 자라기 시작하면서 바닥을 전부 젖게 만들기에 그것을 몇번이고 입이 닳도록 얘기했다), 목욕을 끝내는 것이 가능했다.

그가 목욕에 소요하는 시간은 15분 정도였다. 남자치고는 길지만 머리카락이 길기에 어쩔 수 없다고 마츠다는 납득했다. 불결한 상태로 프로젝트 룸에 머무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았다.

단편집 만화책을 보고있던 마츠다는 신고 있던 슬리퍼를 난폭하게 벗어던지고 침대에 누웠다. 한권을 다 읽었는데도 히나타는 샤워룸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시계를 보면 20분이 지나있었다. 고작 5분이 늦을 뿐이었지만 샤워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이상했다. 마츠다는 혀를 차며 슬리퍼를 고쳐신고 샤워룸을 들여다봤다.

수술 이후 히나타는 가끔씩 발작을 일으킬 때가 있었다. 온종일 지켜보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대체로 그 때문이었다. 이것만은 수술의 부작용이라고 외과팀도 인정하고 있었다.

발작으로 죽거나 하면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며 안을 들여다보면 히나타는 샤워룸 안에 똑바로 서서 거울 속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열기는 그다지 없었기에, 길게 샤워를 한 것이 아니라 저렇게 멀뚱히 서 있었을 거라는게 눈에 보였다. 마츠다는 어이없어 한숨을 쉬었다.


「……뭐하는 거야.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걸 모르는거냐?」

「야스케」


히나타는 빙글 돌아 몸을 숨기지 않고 불쑥 대답했다.


「정액을」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고 마츠다는 무심코 몇 초 굳어버렸다.

히나타가 내뱉는 말에는 단어뿐만이 아니라 조사도 붙게끔 변하고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간단한 글의 조립 정도는 할법했지만 다소 자발성이 적은 탓에 제 의견을 전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어, 말의 성장 스피드는 둔한 채였다.

그렇기에 그의 말로부터 모든 것을 짐작하기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정액, 이라는 단어를 귀에 담은 마츠다는 머리를 긁적이며 알몸의 히나타에게 눈길을 던졌다.


「너, 자위한 거야?」


예전에는 속옷을 입혀준 적도 있을 정도였기에 지금와서 알몸 상태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딴지를 걸 속셈은 없었고, 만약 히나타가 유일한 사적 공간인 샤워룸에서 자위를 하고 있었다고 하면 천하의 마츠다라도 신경을 써주려고 했다. 비록 상대가 의사 소통이 어려운 인간이라고 해도 동세대의 남자니까 말이다.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프로젝트 룸에서 갑자기 자위를 해서 마츠다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나았다.


「마스터베이션. 누군가가 가르쳐줬나보지?」


대답하지 않는 히나타에게 거듭 물어보지만 역시 그는 가만히 서있는 채로 움직이지 않고, 고개를 어느 쪽으로도 돌리지 않았다. 아마도 단어의 뜻을 모르는 것 같다. 모르겠는 때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라고 말해줄 필요가 있어보인다.


「정액을 어쩐다는 건데. ……아아, 알겠다. 제공해달라는 부탁을 받은거네. 그러니까, 나한테 하는 법을 배워오라고.」

「하는 법」


마침내 히나타가 반응을 보였다. 마츠다의 짐작은 맞은 것 같았다. 도대체 어느 팀이 무엇 때문에 그의 정액을 필요로 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온 몸에서 채취할 수 있는건 모조리 뽑아내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설마 그걸 사용해서 아이라도 만들려는 것인지. 어느 쪽이라도 소름돋는 이야기란 것엔 변함이 없다.


「이건 연구 범위 밖이다. 난 네 아빠가 아니라고. 츠미키한테라도 물어보는 게 어때? 분명 기뻐하면서 알려줄걸」


음담패설을 말해보아도 반응해 주는 이는 물론 그 의미가 통하는 상대조차도 없는 상황이다. 히나타는 곤란한 기색도 없이 그저 마츠다를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한 수 접고 들어간 것은 마츠다 쪽이었다. 끈기 겨루기를 하면 정상적인 정신을 가진 인간이 먼저 지기 마련이다.

마츠다는 원 모양을 만든 오른손을 허리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훑으면 된다고, 원숭이처럼. 네가 생각하고 싶은걸 생각하면서 훑어. 딸감까지 준비해줄 의리는 없어.」

「생각하면서」

「……네가 알고있는 여자는 츠미키 밖에 없으니까, 그 녀석으로 괜찮잖아. 벗기거나 만지거나 넘어뜨리거나, 열심히 상상해. 그 녀석이 취향이 아니라면……나도 모르겠다.」


그렇게나 친절을 베풀었던 상대에게서, 취향이 아니다, 너로는 남자 기능을 쓰지 못한다, 라는 것을 듣게 된다면, 츠미키는 귀찮을 정도로 풀죽을 것이 틀림없겠지. 마츠다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애초에 히나타는 츠미키라는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기에 과연 츠미키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너, 아직도 츠미키의 이름을 외우지 못한거냐. 그, 있잖아, 낮마다 널 돌봐주러 오는 그 육덕진 여자.」


설명해주니 히나타의 눈이 무언가를 전하고 싶은 듯이 마츠다를 쳐다봤다. 짚이는 바가 있는 모양인데, 그것이 정액 채취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는 것 같다. 시키는 대로 음경을 손가락으로 들어올려 꼴사납게 상하로 문질러보지만 손짓이 아무래도 작업적이라 일이 성사될 것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흥미도 관심도 없는 너한테 성적흥분이란게 존재하는 건가? 성욕은 인간의 본능이라지만, 그것을 끌어내기 위한 상상력은 별개의 장르인데」


중얼중얼 내뱉은 말은 히나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무책임하게 히나타에게 그런 것을 요구한 어딘가의 연구 팀을 향한 것이다. 만약 그것도 포함해서 마츠다에게 맡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거라면, 마츠다도 항의할 각오였다.

히나타는 흐물흐물한 채로 음경을 문지르고 있었으므로, 마츠다는 「관둬, 지금의 너로는 발기 못 해」 라고 말하고 타월을 던졌다. 반사적으로 그것을 받아든 히나타는 자신의 행위가 중단된 것에 대해서도 불만스러워하지 않고 차가운 머리를 수건으로 닦기 시작했다.

어깨에 들러붙어있는 긴 머리카락을 타월로 감싸고 타월채로 걸레를 짜듯 물을 빼내고 있다. 어쩐지 머릿결이 상해서 엉망이더라, 하고 마츠다는 납득했다. 오른쪽 머리를 그렇게 닦은 후 똑같이 왼쪽도 닦더니, 문득 히나타는 움직임을 멈췄다.

뚝, 뚝 머리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히나타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어깨를 부자연스럽게 들썩거렸다. 히끅, 하는 기묘한 소리가 목에서 울리고 있다. 발작이다, 마츠다는 급격히 얼굴색이 변했다.

히나타는 고통스럽다는 감각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보통사람들처럼 가슴을 누르며 고통을 호소하거나 목을 누르며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낼 수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도 모르고 그저 온 몸을 경직시켜 손 끝을 떨고있을 뿐이다.

마츠다는 주머니에 처박아둔 알약을 꺼내 재빨리 히나타의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히나타가 입을 닫기 전에 젠장, 하고 욕을 내뱉으며 제 집게손가락을 끝까지 쑤셔넣었다.

뿌득, 하고 세게 깨물어온다. 마츠다의 손가락에는 송곳니가 파고들어 점점 피부 속으로 꽂혀들어갔다. 마츠다는 오른손을 물린 채 왼손을 뻗어 샤워기를 틀었다. 기세좋게 분출된 물 쪽으로 히나타의 얼굴을 돌리고, 물어뜯기고 있는 손가락 사이로 물을 먹였다.

평소라면 약 정도는 스스로 먹게할 수 있지만 발작을 일으키게 되면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게 돼버려서 마츠다가 먹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히나타에게는 입 안에 무언가가 들어오면 반사적으로 씹어버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언제나는 근처에 있는 펜이나 젓가락 같은 걸 이 사이에 물린 후에 약을 씹지 못하도록 했었는데 이런 곳에서 발작을 일으키게 됐으니 어쩔 수 없이 손가락을 넣는 수밖에 없었다.

마츠다의 손가락을 희생한 상태에서 히나타는 혀의 뿌리를 움직여 약을 삼켰다. 목구멍이 움직인 것을 확인하고 마츠다는 그의 입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깊이 물린 손가락에서는 피가 흘렀지만 불평하는 것은 나중 일이다.

한동안 기묘하게 몸을 들썩거리는 히나타를 샤워룸에서 끌어내고 몸이 젖어있음에도 개의치 않고 침대에 앉혀, 응급 처지로 담요를 휘감아 그 위로 등을 쓰다듬어줬다. 몇 분이 지나자 딱딱하게 굳어있던 몸에서 힘이 빠져 히나타는 지친 듯 눈을 감았다. 맥박을 확인하면 안정하고 있었으므로, 마츠다는 어깨를 내리고 안도의 숨을 토했다.


「……진정한 건가」


샤워룸에 방치해둔 타월을 가져와 히나타에게 던졌다. 히나타는 그것을 받아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왼쪽 머리카락을 닦기 시작했다. 발작을 일으킨 뒤, 드물게 가벼운 마비증상을 보일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괜찮은 것 같다.

오히려 후유증이 남은 것은 손가락을 물린 마츠다 쪽이었다. 엄청난 피를 흘린 것은 아니지만 아픈 건 아픈 거였다. 작은 수건을 써서 피를 닦는데 슬쩍 히나타가 그 상처를 들여다보러 왔다.


「네가 씹은 거라고. 알겠냐?」


송곳니가 파낸 상처를 눈 앞에 들이대면 히나타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았기에 마츠다는 조금 놀랐다. 평소에 히나타가 스스로 무언가를 주의깊게 관찰하는 일은 없었다. 줄줄 불만을 읊으려고 했던 마츠다는 곧 연구자의 얼굴이 되어 히나타의 상태를 관찰했다.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에 대해서 어떠한 감정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미안하다던가 속죄하고 싶다던가 그런 고도의 것이 아니더라도, 슬프다던가, 어쩐지 기분이 별로다라던가.

마츠다는 그런 반응이 얼굴에 나타나지 않을까 주의해서――깊은 상처를 천천히 바라본 히나타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 것을 보았다.


「너……」


처음으로 보는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츠다의 상처에 흥미를 잃어버린 히나타는 다시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기 시작한다.

흥미를 잃었다는 것은 역시 방금 그 순간, 히나타는 마츠다에게 입힌 상처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 왜 웃었는지에 대해서는 이해도 상상도 하지 못하고, 마츠다는 멍하니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



드디어 본격적인 추위를 맞이한 때, 마츠다의 프로젝트는 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바보 아냐? 유령 같은 게 있을리가 없잖아 그런 식으로 여자애들을 놀래키려고 하다니, 최저라고 생각해.」

「그거야 나도 믿지는 않아! 그래도, 벌써 봤다는 놈들이 몇 명이나 있다고? 게다가 우리들 기숙사에서라고?」

「헤에~ 그래서 언니한테 심령사진을 찍게 하려고 했다는거야? 변함없이 최저인걸~ 방송국에라도 보내려고 했던 거야? 잡지에라도 보내려고 했을까나? 그것도 아니면, 인터넷에서 그걸로 관심받고 싶었어? 있잖아, 왜 그런 짓을 하려는 거야? 예비학과도 아니면서. 그런 창피한 녀석이 같은 반에 있다고 생각하면 공기가 지독해서 숨 쉴 수가 없는데!」

「그렇게까지 말 할 거 없잖아! 나는 그냥 무서워서 잠이 안 오니까 그런 건 가짜라는 증거가 필요했을 뿐이라고!」

「가슴을 펴고 당당히 꺼낼 말은 아니라고 생각함다!」


여자에게 둘러쌓여 울상을 짓고있는 것은 같은 반의 소우다였다. 언제나였다면, 시끄러워, 라고 한마디 내뱉고 두꺼운 책같은 걸 던졌겠지만 오늘의 마츠다는 그것을 못 들은 척 모르쇠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마츠다가 이런 이야기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라 누구도 그것을 부자연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까부터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내고 있는 한명을 제외하면.


「아니아니아니, 모두들도 싫을거 아냐, 유령 소문이 있는 기숙사에 돌아가야 하는데.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뭔가 그런 소문이 있는 자체가 싫잖아. 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마츠다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던 남자는, 갑자기 소우다에게 꽉 어깨를 붙잡혀서 놀란듯이 얼굴을 들었다.


「에? 그렇네, 나는……」


남자가 슬쩍 마츠다를 쳐다보면, 마츠다는 흥미없는 체하며 등을 돌려 외면했지만 그 등에서 잔뜩 위압감이 풍겨져 나오는 것이 보여서 무심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말하면 죽인다, 라고 말하는 듯한 오오라가 발산되고 있었다.


「유령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 더 말하면, 유령 이외의 누구도 없는 게 분명한걸. 그거야 기숙사 앞에는 경비원이 서있고, 애초에 외부자는 학원 안에 들어오는 것부터 불가능하잖아.」


남자는 마츠다가 가장 바라고 있는 대답을 선택하여, 위화감이 없도록 언제나의 어조로 말했다. 더욱 교묘히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장난스럽게 한 마디를 거들었다.


「게다가 만에 하나 유령이나 침입자가 우연찮게 섞여들어온다 해도, 나는 분명 습격받지 않을테니까 말야!」

「그게 본심이냐! 젠장, 왜 네놈의 행운은 그렇게 전지전능한 거냐고!」


보란듯이 유도당한 소우다가 분한듯이 남자에게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그것을 몰래 듣고있던 마츠다는 남자가 제대로 약속을 지킨 것에 안도하면서도, 그야말로 약점이 잡히고 말았다는 상황에 골머리를 앓았다.




프로젝트의 상층부에 발각된다면 예삿일로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마츠다는 이것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었지만, 어젯밤, 히나타는 프로젝트 룸에서 빠져나가 교직원동 밖으로 탈출했었다.

탈출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전날과 똑같이, 샤워시간이 길다고 생각해서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였다. 샤워기는 큰 물소리를 내며 샤워실 바닥을 때리고 있었으나 그 안에는 누구의 모습도 없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마츠다는 황급히 방 안을 둘러보고 프로젝트 룸에도 돌아가보았지만 히나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당했다. 샤워를 기다리는 동안 마츠다가 가끔 졸고 있는 것을 히나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샤워기를 틀어놓은 채로 사라졌다는건 마츠다의 눈을 속이겠단 의도가 있었다는 게 된다.

처음엔 어떤 위험을――예를 들어 귀중한 실험체가 납치된 것은 아니냐는 가능성을 의심했지만, 이 방은 안에서부터 열쇠를 잠그게 되어있었다. 프로젝트 룸을 열기 위한 생체인증기에는 몇 명의 지문이 등록되어 있었지만 목욕용 방 열쇠를 갖고 있는 것은 마츠다 뿐이므로, 열쇠를 열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마츠다와 함께 방 안에 있었던 히나타 밖에는 없었다.

황급히 그를 수색하기 위해 마츠다는 그가 향했을 장소가 어딜지 생각해보았다. 어디로 향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갈 수 있는 장소는 한정되어 있었다. 그냥 계단을 내려가서 교직원동 안을 배회하면 바로 경비원들에게 들킬 것이고, 그가 그러고 있었다면 마츠다는 금방 호출당했을 것이다. 즉, 그는 아직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가능성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교직원동의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을 가능성, 또 하나는 경비원의 눈을 뚫고 밖으로 나갔을 가능성. 금방 되돌려 놓기 위해서 전자의 가능성을 염두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가능성은 압도적으로 후자 쪽이 컸다. 그러한 짐작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마츠다가 평소 주머니에 매달고 다니던 열쇠 중 하나에는 교직원동의 기재반입용 엘리베이터 열쇠가 있었다. 경비원이 지키고 있는 정면 입구와는 반대의 반입구에 연결된 엘리베이터로,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하지만 단순히 열쇠를 꽂아 돌리기만 하면 누구라도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 열쇠도 히나타와 함께 사라진 것이었다.

대체 언제 빼앗겼는지는 모르지만 실수로 떨어뜨리지 않은 이상 이걸 훔쳐갔을 자는 히나타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히나타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므로, 밖으로 나갔다는 것도 분명했다.

마츠다는 외투도 걸치지 않고 밖으로 뛰어나가, 안면이 있는 경비원에게는 「기숙사에 꼭 찾으러가야만 하는 물건이 있다」 라고 거짓말로 둘러대며 그곳을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원인이 되어, 최근 수상한 자가 돌아다닌다는 보고가 있다며 경비원은 굳이 남부 지구까지 마츠다를 안내하여, 기숙사의 경비원에게 그를 넘겨주고 말았다.

우선 교직원동의 근처부터 조사하려고 생각했던 마츠다는 당장이라도 동부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이를 위해서는 기숙사에 물건을 가지러 왔다는 용무를 달성하지 않으면 안됐기에, 마츠다는 밤 복도를 달리며 잘 돌아가지 않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거기에서 그 현장과 우연히 맞닥뜨렸던 것이다.




코마에다가 『유령』을 만나게 된것은 마츠다가 기숙사에 도착하기 10분 정도 전의 일이었다.

밤 아홉시가 지났을 때였을까, 세탁물을 가지러 세탁소에 나갔다가 방으로 돌아와서 샤워를 했었다. 매우 추운 밤이었기에 느긋하게 욕조 속에서 시간을 보냈으니 입욕시간은 30분을 넘겼을 것이다. 그렇게 따뜻해진 몸으로 욕실에서 나왔을 때, 침대가 불룩하게 부풀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


이불 속에서 자신의 목욕이 끝나기를 기다려줄 여자친구 같은 건 사귀고 있지 않았고, 같이 방을 사용하는 룸메이트도 없었다. 조심 조심 다가가서 살펴보면, 침대에 기어들어가 있는 자는 남자였다. 허리 부분까지 길어있는 머리카락이 시트 위에 펼쳐져 있었기에 일순 철렁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체격은 어디를 어떻게 살펴보아도 남자였다. 그는 이불을 야무지게 덮고 얌전히 잠들어 있었지만, 코마에다가 들여다보자 번쩍 눈을 떴다.


「안녕」

「……」

「너, 누구야? 본 적 없는 얼굴인데……」


마츠다로부터 도망친 히나타는 여느때와 같은 환자복 차림 그대로였지만 샤워 도중 달아났기에 항상 감고있는 붕대나 거즈는 두고 나온 채였다. 드러난 몇 개의 상처를 본 코마에다는 얼굴을 찌푸렸다.


「상처투성이고……이 옷, 병원의 옷? 어딘가에서 도망나왔어?」


히나타는 질문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대신에 오싹 몸을 떨었다. 얇은 환자복 하나로는 겨울의 추위를 견딜 수 없는지 칠부 정도의 소매에서 드러난 팔에는 오돌오돌 소름이 돋고 있었다.


「아아, 추워서 곤란했구나. 그래서 내 이불 속에 들어간걸까? 잠깐 기다려, 지금 차를 내올게」


코마에다는 어깨에서 타올을 내리고 전기주전자에 스위치를 넣었다. 일분도 지나기 전에 물이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히나타는 그것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고, 그저 차가워진 발가락을 이불 속에서 꼬옥 웅크리고 있었다.

코마에다가 돌아와 홍차를 담은 머그컵을 히나타에게 건넸다. 히나타는 그것에는 눈길을 보내지 않고 가만히 코마에다만을 올려다보았다.


「말을 못하는 걸까. 내가 말하는 건 알겠어? 이거, 마시면 분명 따뜻해질 거야」


자, 하고 다시 한 번 머그컵을 내밀면 히나타는 머그컵이 아니라 코마에다의 손을 꼬옥 쥐었다. 그 손 끝이 너무나도 차가워서 코마에다는 하마터면 머그컵을 떨어뜨릴뻔 했다.

최근 이 근처에서 유령이 목격된다는 소문은 들어본 적 있었지만, 그 유령의 정체는 틀림없이 눈 앞에 있는 그일 것이라고 코마에다는 추측했다. 심할 정도로 기른 긴 머리카락, 환자복 사이로 보이는 섬뜩한 상처, 싸늘하게 식은 피부. 어느 것도 유령의 요소로 딱 맞아떨어졌다.

머그컵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깨달은 코마에다는 달여낸 차를 본인이 마시기로 했다. 한모금 홀짝이고 뜨거운 숨을 뱉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히나타는 코마에다의 왼손을 잡은 채로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모처럼 따뜻해진 몸이 그의 체온으로 점점 식어가는 것을 느꼈지만, 뿌리치지도 못하고, 코마에다는 어깨를 으쓱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무서운 색깔의 눈동자네. 그래도 예쁜걸」


히나타의 눈은 며칠 전 실험에 의해 타는듯한 어두운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언제나처럼 무슨 실험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마츠다에겐 알려지지 않았다. 『실험기』 인 만큼 무슨 대대적인 처치를 받은듯 며칠동안 그대로 두길 바란다며 눈가에 붕대를 감은 상태로 돌려받아, 붕대를 풀어보았을 때는 홍채 색이 이전과는 전혀 변해있었던 것이다. 시력도 약해져버린듯 물건을 잡으려고 할때면 거리감의 측정을 잘 하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색을 바꾸기 위한 실험이었는지, 시력을 낮추기 위한 실험이었는지, 어느쪽이 목적이고 어느쪽이 부작용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어느 쪽도 목적이 아니었고 히나타는 또 『실패작』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대개 자연으로는 생길 수 없는 눈동자의 색을, 코마에다는 흥미깊게 바라보았다. 히나타는 천천히 눈을 깜빡일 뿐 그 시선에서 도망치려고 하지는 않았다.

히나타의 몸이 또 한 번 움찔 떨었기에, 코마에다는 찬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제대로 잠그고 있었지만 오늘 아침부터 돌연 잠금쇠가 고장나서 문이 반쯤 열린채 닫히지 않게 된 것이었다. 내일에는 수리해주겠다는 얘기가 되어 있었지만, 오늘 밤은 이 추운 방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정성스레 목욕으로 몸을 녹이고 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유령의 갑작스러운 방문은 이 추운 밤에 사람의 피부라도 맞대고 자라는 하늘의 배려인지도 모른다. 그런 농담을 생각하며 혼자서 웃은 코마에다는, 적어도 외풍이 들어오지 않도록 문을 뭔가로 막아두자고 생각해 입구 쪽으로 향했다. 히나타는 코마에다의 손을 놓지 않고 그대로 입구까지 따라왔다. 마치 아기새의 부모라도 된 기분이었다.

너는 여기로 들어온 거지? 라고 문을 가리켰던 그 순간, 복도를 빠져나가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꾹꾹 눌리는 화장실 샌들의 발걸음 소리와 뒷모습으로 금방 알아챘다. 마츠다 야스케였다.


「어라, 마츠다군이네. 별일인걸」


무심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얼굴을 내민 히나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낮아진 시력으로 뒷모습을 바라보려고 했다. 그것이 마츠다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코마에다가 한 말에 반응하여 그의 이름을 덤덤히 말했다.


「야스케」

「에? 아, 혹시 너……마츠다군한테서 도망쳐 나온거야? 그럼 그는 지금 널 찾고 있는게 아닐까?」


말을 못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코마에다는 히나타가 입을 연 것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츠다군!」


큰 소리로 그를 불러세웠다.

그렇게 큰 목소리도 아니었지만 조용한 복도에서는 잘 들렸던 모양인지 방 앞을 지나치려던 마츠다는 언짢은 듯이 눈썹을 찌푸린채 돌아왔다.


「……뭐야. 나는 지금,」


장난아니게 바쁘다고――그렇게 말하려던 마츠다는 눈을 크게 떴다. 동부 지구의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는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던 그가 코마에다의 방 안에서 쑥 얼굴을 내밀고 있는게 아닌가.

할 말을 잃고 노골적으로 일그러진 마츠다의 표정을 보고, 코마에다는 자신의 추리가 옳았음을 확신했다.


「이 애, 그쪽에서 온거지?」

「……어디에 있었어」


이렇게 된 마당에 부정하는 것도 할 수 없어, 마츠다는 벌레라도 씹은 듯한 얼굴을 하곤 낮은 목소리를 뱉었다.


「내 방에서 자고 있었어」

「하?」


태평스러운 대답이 돌아와 마츠다는 더욱 미간에 주름을 잡고 히나타를 바라보았지만, 이런 곳에 서서 얘기를 계속할 수도 없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코마에다의 방 안으로 무단으로 밀고 들어가 등 뒤로 문을 닫았다――그럴 셈이었지만 문이 고장났기 때문에 반쯤은 열린 채였다.

서슴없이 안으로 들어와 멋대로 침대 위에 걸터앉으면 히나타도 그대로 마츠다의 옆에 앉았다. 아직도 손이 붙잡힌 채인 코마에다도 이끌린채 그 옆에 앉게되어, 세명이 나란히 침대에 앉은 기묘한 그림이 됐다.


「깜짝 놀랐어. 설마 정말로 유령이 있을 줄은」


코마에다가 장난스럽게 그렇게 말했기에, 마츠다는 히나타를 노려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반 친구들이 유령 이야기로 요란스러웠던 것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설마 유령의 정체가 자신이 관리하는 실험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수많은 목격 증언을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히나타의 탈주는 오늘밤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빠져나갔지? 우연찮게 나간 것도 아닐테지. 굳이 나한테서 열쇠를 훔쳤으니까. 기숙사는 어떻게 들어왔어? 이 녀석의 방에도 열쇠가 잠겨있었을 거 아냐?」

「자, 자, 그렇게 혼내지 마. 사정은 모르겠지만, 이 방에 들어온 건 그가 나쁜짓을 한 게 아니야. 운 나쁘게도, 내 방 열쇠가 고장났을 뿐이라구.」


히나타를 추궁하자 코마에다가 사이에 끼어들어 그렇게 말하더니 웃었다. 마츠다는 전부터 뭔가 꿍꿍이가 있는듯한 이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하필 그런 인간에게 기밀 프로젝트의 정보가 유출될 거라고는.


「『운 나쁘게』? 잘도 말하는군」


제 77기생 『초고교급의 행운』 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그는 양 손을 앞으로 내며 웃었다.


「아하하, 너도 그렇게 생각해? 맞아, 이건 최고로 운이 좋은 일이야! 마츠다군이 최근 바쁘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거기까지 말하고, 코마에다는 의도적으로 한 번 말을 끊었다.

아까 마츠다가 한 행동을 일부러 흉내내어 긴 검지손가락을 눈 앞에 들이밀고 마츠다를 가리키며 입가를 끌어올렸다.


「인체실험에 관여하고 있었다니 말야」


도전적인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마츠다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이 남자한테 들키면 성가신 일이 된다고, 라고 가슴 속에서 내뱉으면서.

유령이다 뭐다 장난치면서 실실 웃는 그 얼굴 뒤에 본성을 감추고, 상대가 가장 들키고 싶지 않아하는 부분까지 서슴없이 파고들어온다. 코마에다 말고 다른 사람이 히나타를 발견하더라도 그가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물론 알았겠지만, 그의 날카로운 눈치는 정상이 아니었다.


「정답이지? 평범한 환자라면 학원 내에 둘 이유가 없는걸. 네가 보살피고 있다는 건 뭔가를 연구하고 있는 걸까나. 최근 생긴듯한 상처가 잔뜩 있는 건, 학원 내에서 무슨 실험을 하고 있어서……그렇지? 있지, 넌 대체 누구야? 정신질환자 같은 건가?」

「하나 물어볼게. 그건 어떻게 된거야?」

「에?」


기분 좋게 추궁하고 있던 참에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아, 코마에다는 맥빠진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마츠다가 「그것」 이라고 지적한 것은 히나타가 계속 붙잡고 있는 코마에다의 왼손이었다.

코마에다는 옆에 앉은 히나타를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답했다.


「어떻게라니……무슨 뜻이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가 잡고있을 뿐인걸」

「뭘 했어?」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고 나서도, 히나타의 자발적인 행동은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못했다. 뭔가를 물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흔들면서 가끔 단어를 내뱉기는 한다만 그 뿐이다. 하지만 지금, 히나타는 확실히 코마에다의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다. 그런 사소한 그의 행동이 연구의 방향을 좌우하는 것을 모르는 코마에다는, 진지한 얼굴과 마주하고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니까. 그가 내 침대에서 자길래 살펴봤더니, 눈을 뜨고 일어나서……추워하는 것 같길래 차를 타서 내왔는데 차는 받아주질 않았어. 뭐, 나같은 쿠즈가 마츠다군의 환자를 대접하려고 했던 게 마음에 들지않는 건 당연한 걸까?」

「시끄러워, 요점만 말해, 쿠즈」

「……그래서 쿠즈라고 말했는데. 그렇게 화내지 말아줘. 이걸로 세번째로 말하지만,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슬슬 놓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야.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건 이쪽이라구?」


코마에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렇게 말하면, 마츠다는 턱에 손을 얹고 생각에 잠겼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히나타는 갑자기 능동적인 행동을 하게된 것일까. 애초에 히나타가 어떤 의도로 탈출한 건지도 알 수 없으니까, 혹시 그것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갑자기 히나타가 움직였기에, 서로 노려보던 두 사람은 동시에 그쪽을 쳐다보았다. 그는 계속 잡고있던 코마에다의 손을 놓고, 언제나처럼 침대 위에 힘없이 제 손을 두고 있었다. 코마에다와 마츠다는 무심코 얼굴을 마주보았다.


「……내가 하는 말, 이해하고 있구나. 미안해, 싫다는 뜻이 아니었어.」


자신과 거의 키차이가 나지 않는 히나타의 머리를 옳지옳지, 라고 쓰다듬으며, 코마에다는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히나타는 딱히 상처받거나 기쁜듯한 모습도 아니었고, 멍하니 시선을 공중에 두고 있었다.

히나타의 행동을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의 탐색을 중단했다. 마츠다로서는 여기서 머리를 싸매봤자 소용없는 일이었고, 코마에다로서도 아무리 물어본들 제대로 된 답변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예상했다.

언제까지 입씨름을 계속해도 결말은 나오지 않는다. 잠시 조용해진 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코마에다였다.


「마츠다군이 그렇게 안색을 바꾸고 찾고 있었다는 건, 분명 굉장히 소중한 관찰대상이라는 거지?」

「……무슨 말이 하고싶어」

「알고 있잖아? 나에게도 협력하게 해줘, 라는 거야. 아무래도 이 아이는 나를 좋아하는 것 같고, 나도 그가 싫지 않아. 이 아이가 나를 상대로 할 때에 한해서 이상한 행동을 취한다고 한다면, 네 프로젝트에 나를 끌여들어야 하는게 맞지 않겠어?」


코마에다가 바람을 감추는 것도 없이 그대로 털어놓자, 마츠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코마에다의 제안은 서로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근거로 하고 있었다. 만약 코마에다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마츠다는 프로젝트의 담당자로서 그와 같은 말을 꺼내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에 있었다.

그럼에도 한숨을 쉬었던 것은, 귀찮은 남자를 끌어들임으로써, 또 귀찮은 걱정거리가 늘어나는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란 마츠다의 개인 사정에 불과했다.




교직원동에 처음 발을 내딛은 코마에다는 스쳐지나가는 교원에게 애교 가득한 미소를 보내며 특별 대우받는 기분을 만끽하고, 기분 좋아보이는 발걸음으로 프로젝트 룸으로 들어갔다.

생체정보는 사전에 등록 준비를 모두 마쳤기에 지문을 파묻으면 문이 열렸다. 안은 코마에다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담했지만 얼핏 보기에도 비싸보이는 기계가 몇 대씩이나 줄지어져 있었다.

마츠다는 그 기계에 파묻힌듯 책상 앞에 앉아있고 히나타는 간소한 침대 위에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코마에다가 모습을 드러내면 히나타는 눈동자만을 그쪽으로 돌렸다.


「실례할게」

「과자상자 같은 것도 안 챙겨왔냐?」


마츠다는 수중의 자료에 눈을 떨어뜨린 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실제로 빈손으로 온 코마에다는 쓴웃음을 지었다.


「눈치가 없어서 미안해. 마츠다군은 음식 취향이 까다롭다고 들었으니까. 원하는 게 있다면 내일은 뭔가 사서 올게」

「매일 올 필요 없어. 내가 부를때만 오면 돼. 손이 가는 녀석은 한명으로 충분하다고」


그런 말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려버리고, 코마에다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방 안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지정 교복 위에는 입학 전부터 애용했던 짙은 카키색 코트를 입고 있다. 바지속 주머니에 사탕이 들어있는 것을 깨달은 코마에다는 하나를 꺼내 마츠다의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아, 뭔가 주머니에 있었어. 이거 줄게」

「필요없어」

「자, 너한테도 줄게」


거절의 말도 흘려듣고 또 하나를 히나타에게 내민다. 히나타는 사탕과 코마에다를 한번씩 본 후, 양 손을 내밀어 받아들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코마에다는 제 전자 학생수첩을 열어 히나타에게 자신의 프로필을 보여주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나는 코마에다 나기토라고 해, 잘 부탁할게. 네 이름도 알려주지 않을래?」


히나타는 전자 학생수첩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코마에다, 라고 말했다. 히나타가 문자에 반응을 보이는 것은 처음 보았으므로, 책상 위에 다리를 쭉 뻗고있던 마츠다는 의자를 돌려 두 사람을 주의깊게 관찰하기로 했다.


「맞아. 코마에다야. 네 이름은?」

「코마에다」

「……그건 내 이름이잖아. 설마 너 생이별한 내 숨겨진 형제라도 되는거야?」

「관둬, 그 녀석에게 이름은 없으니까. 그보다 너, 왜 그 쿠즈는 성으로 부르면서 나는 이름으로 부르는 거야?」


절반은 연구심, 나머지 절반은 개인적 불만으로 마츠다가 추궁하면, 히나타는 마츠다 쪽을 바라보며,


「야스케」


라고 덤덤하게 말했기에, 코마에다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쿠즈는 이름으로 부를 가치도 없다나봐. 질투나는걸, 마츠다군」

「……」


코마에다는 모르겠지만, 히나타는 여전히 츠미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직도 매일 만나는 인간의 이름조차 외우지 못하는데, 어째서 코마에다의 이름은 인식했을까. 마츠다는 코마에다에게 보이지 않도록 히나타의 데이터를 넘겨보았지만, 코마에다와의 접점이 발견될 것 같지는 않았다.

진지하게 연구에 몰두중인 마츠다에게 코마에다는 태평한 태도로 농담을 던졌다.


「이름이 없다는 건, 설마 그런거야? 그 있잖아, 자주 만화에 나오는 호적도 없는 인간이란거……슬럼가에서 태어나 뒷세계에서 자라왔다, 같은」

「망상도 정도껏 해라」

「현실을 알려주지 않으니까 망상하는 거잖아. 정말 너무한걸. 그렇지?」


코마에다는 히나타에게 동의를 구하듯이 고개를 기울이더니 그가 손에 두고있는 사탕 포장을 벗겨 입 안으로 넣어주었다. 마츠다가 「바보」 라고 말함과 동시에 히나타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사탕을 빠득 깨물었다.


「조심하라고. 저 녀석 입 안에 들어온건 뭐든지 물어버리니까.」

「……주저없이 씹어버리네. 맹견주의 같은 느낌이야」


모처럼 건네준 사탕이 단 몇초만에 부서져 코마에다는 유감이라는듯 어깨를 으쓱했다. 가만히 앉은 채 미동도 없이 얌전한 와중에 빠드득 하는 사탕을 깨무는 격렬한 소리만이 들려왔다. 이상한 아이야, 라고 생각한 코마에다는 이 환자의 연령을 물어보려고 했으나, 그보다 먼저 마츠다가 입을 열었다.


「어이, 쿠즈. 질문에 대답해. 어디선가 이 고물이랑 만난 적은 없었나?」

「……마츠다군은 말야, 사람을 이름으로 부른 적 있어? 나는 쿠즈니까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불러?」


일부러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되묻는다. 대체로 「너」 라고 부르는 것 같다만, 두 사람 이상을 앞둔 때는 다른 호칭을 쓰는 것 같다. 코마에다는 입학하고 마츠다와 같은반이 된 때부터 대체로 「쿠즈」 나 「고미쿠즈」 같은 걸로 불려오고 있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헐뜯음이었기에 입만은 살아있는 코마에다도 그것을 사용해 자학적인 말을 하는 일이 늘어났을 정도였다.

마츠다는 초조한 모습으로 펜을 돌리며 코마에다를 노려보고 있었기에 코마에다는 어쩔 수 없이 질문에 답했다.


「없어. 이런 인형씨와 만난 적이 있다면 단번에 알았을걸」


꾹, 하고 히나타의 미간을 찌르려고 했으나 긴 머리카락에 방해받는다. 코마에다는 눈가를 뒤덮고 있는 머리카락을 정성스레 나누어 옆으로 흘려주었다. 붉은 눈동자가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맞아, 이 아이의 나이는? 우리들과 비슷한 정도일까?」

「뭐 그렇지. 그러니까 『아이』라고 불릴 연령은 아니라고. 애초에 아이같은 체격도 아니잖아.」


그렇게 말했을 쯤에 마츠다는 책상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깜빡이며 빛나는 걸 눈치채, 인상을 쓰면서도 그것을 집어들었다. 잠깐 통화하고 올 테니까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라, 라고 단단히 일러두고 프로젝트 룸을 나선다. 남겨진 코마에다는 방긋 웃으며 사양않고 히나타의 몸을 더듬더듬 만지기 시작했다.


「그 『초고교급의 신경학자』에게 주목을 받는 대상이라니 너무 훌륭해……너에게는 대체 뭐가 숨겨져 있는 걸까? 아쉽게도 네게 물어본들 알아낼 순 없겠지만」


눈만 꿈뻑거릴 뿐인 히나타를 보며 코마에다는 쿡쿡 웃었다. 바람대로 마츠다의 관심을 끌어 학원 주도의 극비 프로젝트에 끼어드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왜 히나타가 그 때 코마에다의 손을 놓지 않았는지는 코마에다 자신도 짐작가는 게 없었다. 그 외에도 뭔가, 연구자로서의 마츠다에게 눈에 띌 만한 반응을 또 보여주면 좋을 텐데

그렇지만 전문가가 아닌 코마에다로서는 뭘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기에, 눈 앞의 그에게 「뭘 하고 놀까?」 라며 물었다.


「그래, 끝말잇기라도 할래? 그럼 나부터 시작할게. 음, 『링고』」

「야스케」


잠깐의 기다림도 없이 그렇게 답한 히나타는 마츠다가 나간 문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코마에다는 「거기선 『고릴라』 같은걸 말해주길 바랬는데 말이지」 라며 한숨을 쉬었다.


「……마츠다군은 전화중이야. 곤란한걸, 말을 잘 모르는걸까. 그럼 손가락을 써서 놀아보자. 가위바위보는 어때? 가위바위보, 라고 하면서 손을 내미는 거야」


얼굴 앞에 주먹을 들어보이자 문을 바라보던 히나타의 관심을 끄는 것에는 성공했다. 코마에다는 손 모양을 바꾸며 룰을 설명했다.


「이게 바위. 바위에 이기는게 보자기. 보자기에게 이기는게 가위. 가위에게 이기는 건 바위. ……기억할 수 있을까나」


승패가 세 패턴밖에 없는 간단한 룰일 텐데, 입 밖에 꺼내보니 그에게는 어려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험삼아 「보자기에게 이기는건?」 이라고 확인해보면, 히나타는 망설임없이 「가위」 라고 답했다. 원래부터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룰은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좋아, 그럼 해볼까」


가위 바위 보, 라고 천천히 말하면서 보자기를 냈다. 히나타는 주먹을 만들고 있었다.


「어느 쪽이 이겼는지 알겠어?」

「……」


히나타는 얼굴을 들어 코마에다를 봤다. 아무래도 졌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라고 판단했지만 그것보다도 어느새인가 붙잡힌 왼쪽 손목이 신경쓰였다. 지난번 밤과 똑같다. 강한 힘으로 붙잡힌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결코 불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어딘가 자신도 모르는 마음 속을 자극당한 듯한, 그런 감각이었다.

왼손을 붙잡힌 채로 10판을 이어갔다. 코마에다는 한 번도 지지않고 전승했다. 그것은 물론 코마에다의 『행운』 의 위력이기도 했지만 승률을 올린 데에는 다른 원인도 하나 있었다.


「있지, 적한테 힌트를 주는 것도 좀 그렇긴 한데, 가위는 싫어하니? 한 번도 내질 않았잖아」


히나타는 바위와 보자기의 두가지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코마에다가 그의 눈 앞에 가위를 만들어 보이면 히나타는 그것을 흉내내서 두 손가락을 세우려고 오른손을 떨었다. 그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 것을 보고 코마에다는 겨우 이해했다.


「놀랐어. 싫어하는 게 아니라, 못 만드는 거야?」


히나타는 오늘 낮에 한 번 발작을 일으켰고 오른손에는 그 때 마비가 아직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위의 모양을 잘 만들 수 없었다. 마비가 있었던 것을 모르는 코마에다는 그의 손을 잡고 손가락을 세우는 일을 거들었다. 보자기의 상태에서 검지와 중지를 제외하고 접어주면 조금 일그러졌지만 가위의 모양이 완성되었다.


「그래, 그런 느낌. 그럼 한 번 더 하자. 가위 바위, 보.」


그에게 외우게 한 가위를 내도록 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외쳤다.

――하지만, 히나타는 망설임없이 보자기를 냈기에 그를 이길 작정으로 주먹을 냈던 코마에다는 얼굴을 찌푸렸다.


「……일부러지? 내가 주먹을 낼걸 알고서 보자기를 낸거지?」


운으로 진 적은 거의 없지만, 이번 승패는 운이 아니다. 어느 쪽도 전략을 갖고 손을 내밀었다. 자신에게 가위를 가르쳐줬으니까 다음은 가위를 낼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런 생각이 히나타에게 있었을 것이다. 우연히 보자기를 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코마에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모르겠는걸. 이 보안을 뚫고 나간 적도 있고……너, 사실은 머리가 잘 돌아가고 있는거 아냐? 설마 바보인 척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천재인데 그걸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같은 건가?」


답을 찾아내려는 듯이 흘끗 시선을 날려보아도 히나타는 변함없이 공허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있을 뿐이다. 이래서는 떠보는 것도 못하겠는걸. 코마에다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네가 천재라면 이런 대우를 받고 있을리가 없나」


그의 몸에는 언뜻 보아도 팔 다리 여기저기에 붕대가 감겨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멀쩡한 부분이 적을 정도였다. 실험대상으로밖에 취급되지 않는다는건 분명했다.

너덜너덜한 몸을 위로하듯이 살짝 끌어안으며 커다란 반창고가 붙어있는 뺨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얼굴생김은 다른 평범한 남학생들과 다를바가 없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붉은 눈동자를 제외하면.


「대체 무얼 보고, 뭘 느끼고 있는걸까……사실은 화내거나 즐거워하거나 하니? 나하고 놀아서 즐거워?」


아무리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어도 그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얼굴을 찌푸리는 것도 없고 경계하는 기색도 없다. 보통은 조금 정도는 얼굴을 굳혀도 될 상황이지만――그렇게 생각하자, 어떡해야 그의 감정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라는 흥미가 생겼다.

코마에다는 짓궂게 엷은 미소를 짓고 히나타의 뺨을 양 손으로 잡으며, 무저항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가볍게 누르고 금방 떨어져나와, 기대하며 그의 얼굴색을 살폈지만 역시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의 반응을 끌어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제 욕심을 채운 것에 만족감을 느껴, 코마에다는 입꼬리를 올리며 후후 웃었다.


「나는 언제나 생각해. 모두들 키스에 너무 거창한 이유를 필요로 하는게 아닐까? 라고. 그저 피부가 접촉하는 것 뿐인데 말야. 드라마나 영화나 현실에서나, 전부 꼭 구질구질하게 이유가 붙잖아. 어깨를 두드리거나 뺨을 만지는 일처럼 키스도 그냥 하고싶을 때에 평범하게 하면 될텐데」


딱 좋은 상대를 찾아냈다는 듯이 코마에다는 몇 번이고 입맞춤을 반복했다. 반응이 없는것은 시시했지만 거부하지 않는 것은 귀찮지 않아서 좋았다. 아무리 인형같다고 해도 체온이 존재하고, 입술은 부드러운 탄력을 돌려주었다.


「입술으로 접촉하는거, 기분 좋은데 말야. 이유같은건 필요 없는데」


목에 손을 감아 깊게 입맞추며, 코마에다는 살짝 혀를 밀어넣었다. 손 끝에 닿는 긴 머리카락을 빗어넘기며 혀를 옭아매려던 그 때, 코마에다는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히나타의 버릇을.

따뜻한 혀끼리 접촉된 순간, 히나타는 반사적으로 빠득 위 아래의 치아를 맞추었다. 가차없이 혀를 물린 코마에다는 황급히 입가를 가리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절단되지는 않았지만 혀의 표면에서 거센 피가 번져나와 순식간에 입 안에 확산되면서, 입가를 가리고 있는 손바닥까지 붉게 물들였다.


「읏……」


마치 각혈이라도 한 것처럼 손가락 사이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마츠다의 책상에 있는 티슈 한장을 뽑아 입가를 닦으려고 했을 때, 프로젝트 룸의 문이 열리며 이변을 감지한 마츠다가 코마에다의 곳까지 달려왔다.


「너……대체 무슨일이」


괜찮냐, 라고 어깨를 두드린다. 코마에다는 곤란한 듯이 눈꼬리를 내리며 베에, 하고 혓바닥을 내밀었다. 보통의 피부와는 달리 잇자국이 남는 일은 없었지만 혀의 표면이 넓게 벗겨진 것을 보고 마츠다는 그 상처의 이유를 살폈다. 이 방에서 이런 부상을 입으려면 뭐든지 깨무는 그 인간에게 혀를 물리는 방법밖엔 없다. 예상대로 코마에다가 흘린 핏자국은 히나타가 앉아있는 침대쪽에서부터 이어지고 있었다.


「뭘 한 거야 이 카스……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했지」

「……결국 카스까지 돼어? 어라, 고미쿠즈랑 카스 증엔 어디가 더 아래야?」


아픔 탓에 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처럼 나불거리는 코마에다를 보고, 마츠다는 핏대를 세우며 그를 노려보았다.


「카스인게 당연하잖아. 카스는 청소기로 빨아들여야 하고, 고미쿠즈는 손으로 줍지 않으면 청소할 수 없으니까」

「에, 그럼 혹시, 다소 동정으 여지는 이다고 생각해즈는 거야?」

「쫒겨나기 싫으면 그만 입 다물어」

「네에」


마츠다는 내밀어진 혀에 거즈를 대고는 코마에다에게 세게 눌러 지혈을 할 것을 명령했다. 출혈은 심했지만 입 안이라면 피가 멈추는 속도도 빠를 것이었다. 당분간 식사나 대화는커녕 침을 삼키는 데도 통증이 따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업자득이다.


「일단 물어보겠는데, 뭘 했어?」

「키스해슬 뿌니야. 그가 무는 버릇을 완저니 잊어버려쓰니까, 내가 쿠즈였을 뿌니지만……카스였던가?」

「그만 됐어. 평생 입 닥치고 있어 이 호모새끼」

「방금 그에게는 말해지만, 나는 키스에 그러게까지 이유를 피료로 하지 않아」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입 다물고 있어.」


코마에다를 완전히 조용히 만들고 몇분 뒤, 거즈를 교환할 때에는 대부분의 출혈은 멎고있었다. 표면에 상처가 있었지만 그 아래의 근육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다. 기왕이면 이번 기회로 쓸데없는 소리도 못하게 됐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마츠다는 반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보다 먼저 할 말이 있었다.

거즈로 입안을 누른 코마에다를 데리고 히나타의 앞에 서게 해, 그 상처를 히나타에게 보여주면서 마츠다는 야단치듯이 말했다.


「네가 한 거라고. 알겠어?」


얼마 전 마츠다가 손가락을 물렸을 때에 던진 질문과 같았다. 그때 히나타는 분명히 상처를 확인하고는 어째서인가 미소를 지었었다. 그 이후 히나타가 웃는 것은 본 적이 없다. 불의의 사고이지만 히나타의 모습을 관찰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


역시 그는 상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사과의 말도 변명도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직 약간 피가 배어있는 혀를 보며 히나타는 굳어있었다.

점점 통각을 느끼게 된 코마에다가 혀를 입 안으로 넣었다. 쇠맛이 가득 퍼지자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표정을 경직시킨다. 그것을 본 히나타는 코마에다의 손을 잡고 크게 눈을 깜빡였다.

그 순간 눈꼬리에서 눈물이 구슬모양을 이루며 뚝 흘렀기에, 마츠다도 코마에다도 놀라움에 말을 잃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주륵주륵 굵은 눈물이 떨어져 환자복에 뚝뚝 얼룩을 만들었다. 눈동자는 여전히 커다랗게 뜨인 그대로라 어떤 감정도 엿볼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눈물만은 계속해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네가 상처입힌 거야. 사과할 수 있겠지」


사죄의 말을 가르쳤던 적은 없지만 마츠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치 유치원 선생님 같다고 생각한 것은 가슴에 담아두고, 코마에다도 빤히 히나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눈물을 흘릴 뿐으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마츠다는 팔짱을 끼고 신음했다.


「뭘 했는지 모르겠는 건가? 아니면 알아도 속죄할 방법을 모르는 건가……?」

「그런 건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어. 한 번 더 해보면 돼」


코마에다는 거즈를 퉤, 뱉어내고 아까처럼 히나타의 얼굴에 다가섰다. 경계되는 일은 없이 입술은 쉽게 접촉되었다.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신 마츠다를 힐끗 보고는, 코마에다는 두려움 없이 혀를 침투시켰다.

부드러운 혀를 찾아내서 혀끝으로 가볍게 두드리곤, 끈적하게 혀 전체를 감아올렸다. 상처에 말로 못 할 통증이 느껴졌지만 입 속을 탐하는 쾌감은 그것을 이겨내고 있었다. 입술을 빨아대면서 점점 깊이 파고들고, 침과 피가 섞이고 있는 것을 충분히 느낀 뒤, 코마에다는 천천히 얼굴을 떼어냈다.

그치? 라며 되돌아보면 아연실색한 마츠다의 얼굴이 있었기에 코마에다는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히나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도 그는 기뻐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고, 그저 구역질이 날 것 같은 맛일게 분명한 침을 꿀꺽 삼킬 뿐이었다.



*****



외부에 호출될 일이 늘어나는 바람에 요즘의 마츠다는 어느때보다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말투가 사나워지긴 했어도 푸념을 내뱉지는 않았기에, 즉 불평조차 흘릴 수 없을 정도로 기밀 프로젝트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코마에다로서도 예상이 가능했다.

줄곧 방에 박혀만 있는 히나타를 위해 뭔가 운동이 될 만한 것을, 이라고 생각한 코마에다가 줄넘기를 구입하고 프로젝트 룸을 찾은 날은 운 나쁘게도 실험기에 막 들어서기 시작한 날로, 히나타는 도저히 운동을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코마에다가 방에 들어가자 히나타는 입구까지 마중을 나왔지만 오른발에는 화려하게 붕대가 감겨있어 걸을 때에도 다리를 끌고 있었다.

마츠다가 전화를 받느라고 방 밖으로 나가면 코마에다는 언제나처럼 몰래 히나타의 붕대를 풀고 상처의 상태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역시 오늘 신경쓰이는 건 오른발의 붕대다. 어떤 상처가 숨어있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바라보면 그곳에는 20센티 정도의 커다란 꿰맨 자국이 남아 있었다.


「상처……라기보단 수술흉터네. 대체 뭘 당했어?」


히나타에게 물어보지만 대답은 없다. 코마에다는 맥이 빠져 붕대를 원래대로 돌려놓고 가져온 줄넘기를 바닥에 던졌다.


「모처럼 가지고 왔는데 말이야. 오늘은 뭘 할까? 가위바위보는 슬슬 질렸을테고」


가위를 낼 수 있게 된 뒤부터 히나타의 승률은 치솟아 최근에는 코마에다와 호각의 승부를 하게 되었다. 코마에다를 상대로 호각으로 싸운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놀랄만한 일이지만, 게임 자체가 너무 심플한 나머지 코마에다 쪽에서 질려버리고 말았다. 한편 끝말잇기나 연상 게임 등 말장난에는 여전히 서툴러서, 코마에다가 아무리 설명해도 엉뚱한 단어가 돌아올 뿐이었다.


「그럼 간단한 뇌 트레이닝을 해볼까. 지금부터 기숙사에 있는 내 방의 배치를 설명할테니까, 잘 기억하면서 들어봐. 마지막엔 그걸로 퀴즈를 낼거니까 정답을 맞출지 어떨지로 승부하자」

「……」


히나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코마에다는 후후, 미소지으며 검지를 세우고 그를 가리켰다.


「나는 꼼꼼한 편이니까, 방의 배치는 깔끔하게 바둑판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아아, 너는 한 번 본 적이 있었지. 그럼 간단히 맞춰버릴 지도 모르겠네? 우선, 방 안쪽에는 침대가 있어. 그닥 고급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뭐 잠을 자는데에는 충분하단 느낌일까. 이 침대가……그래, 칸으로 치면 2칸 정도 크기로 창을 향해서 놓여있어. 창가에 둔건 그냥 안정감이 있어서였는데 겨울을 맞이하고 굉장히 후회했어. 커튼이 그렇게 두껍지 않았거든. 참고로 커튼의 색은 베이지 색이야」


처음 만났던 때 그가 기어들어가 있던 침대다. 히나타가 어째서 그곳에 있었는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때마침 그때 문이 반쯤 열려있었으니 온기를 취하기 위해서 들어왔다, 같은 거겠지. 하지만 동부지구에 있는 이 방에서 먼 기숙사까지 찾아온 이유는 여전히 불투명한 채다.


「그리고 침대의 바로 옆에 수직이 되도록 한 칸 정도, 그곳엔 작은 옷장이 있어. 벽에 딱 붙어있고. 밑에서부터 두개의 서랍엔 여름옷이 가운데 두개엔 겨울옷이 제일 위에는 속옷이 들어있어. 반에서 나보다 훨씬 유명해진 『럭키팬티』는 늘 거기에 넣어둬.」


일부러 쓸데없는 정보를 얘기해서 혼란시키며 코마에다는 쉴틈없이 설명을 이어갔다.


「그와 반대쪽 벽에는 목재 책상이 두 칸 분량, 그 오른쪽에는 책장이 한 칸 분량. 책상 앞에는 의자가 한 칸 분량. 그 의자에서 뒤의 벽까지는 여섯칸 정도가 있는데 벽 앞에는 소파가 놓여있어. 소파의 크기는 한 칸 분량, 옆으로는 두 칸 분량이야.」


방의 대략적인 배치 설명을 마친 코마에다는 드디어 퀴즈의 내용을 그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사실은 좀 더 정보를 추가해서 당황시킬 수도 있었지만 너무 복잡하게 되면 도중에 생각하는 걸 포기해버릴까봐 그만뒀다.


「이 상황에서 내가 방의 한가운데에 섰다고 치자. 바둑판이라면 정 가운데가 애매하지만 뭐 중심에 있는 4칸 중의 한가운데에 서있다고 칠게. 지금부터 나는 방 안을 이동할거야. 내가 말한 방향으로 내가 말한 방향만큼만 걸었을때, 눈 앞에 있는게 뭔지 맞출 수 있을까?」


말로만 전달된 정보만으로 뇌 속에 방의 약도를 만들고 코마에다가 말한대로 칸을 이동시켜 골의 위치와 주변에 있는 가구를 맞추자는 퀴즈였다. 기억력, 추리력, 탐구력이 필요하다는, 즉흥에서 만들어낸 놀이치고는 꽤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럼 갈게. 먼저 앞으로 두칸, 그 방향 그대로 뒤로 한칸, 90도 오른쪽으로 도는 동작을 5번 반복한 후에 앞으로 한칸, 만약 오른쪽에 가구가 있을 때는 왼쪽으로 한칸, 눈 앞에 가구가 있을 경우는 오른쪽으로 한칸, 양쪽에 가구가 있는 경우는 그대로 뒤돌아서――」


일부러 평소보다 빠른 어조로 말한다. 분명 그는 뇌 속이 뒤집어지는 감각에 빠지고 있겠지. 코마에다는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코마에다는 자신의 방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고 골도 이미 정했기 때문에 아무리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도 혼란스럽지 않지만 히나타는 그렇지 않을 거였다.

입을 쉬지 않고 그대로 설명을 이어가고 있으면 히나타는 대뜸 코마에다의 말을 자르듯이 말했다.


「처음 위치」


중단당한 코마에다는 「에?」라며 말을 끊었다. 요즘 말이 많은 코마에다와 오래 있어서 그런지 히나타는 상당히 의미가 통하는 말로 대화할 수 있게 성장했다. 코마에다도 그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살피는 기술이 몸에 붙고 있었기에, 그가 아직도 처음의 위치를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에? ……싫은걸, 처음의 위치는 스스로 생각해. 네 칸중의 어느쪽이라고……」


하지만 히나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말했다.


「골이, 처음 위치. 오른쪽에 의자가 있을 뿐」


코마에다에게 힌트를 알아내려던 것도, 생각하기를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히나타는 코마에다가 말을 끝내기보다 앞서 답을 말한 것이었다. 코마에다 말대로 칸을 움직이면 결국 처음 위치로 돌아갈 뿐으로, 그 시작점 4칸의 가운데 주변에 있는 것은 의자 뿐이라고.

이것에는 과연 코마에다도 말을 잃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코마에다가 생각해둔 정답 그대로였다. 일부러 쓸데없는 정보를 추가하고 귀찮은 말장난을 치지만 최종적으로는 시작지점으로 돌아갈 뿐인――그런 심술궂은 퀴즈.


「……」


코마에다는 잠깐동안 말없이 히나타를 바라봤지만, 그가 자신만만한 것을 보고는 포기하고 두 손을 들어 항복했다.


「재미있네. 어째서 마지막까지 들으려고 하지 않았어? 내가 짓궂어서 만약 네 추리가 맞았다고 해도 지금 답을 바꿔버릴 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아무리 네 통찰력이 우수해도 너는 절대 정답을 맞출 수 없게 되잖아.」


코마에다가 그렇게 털어놓은 시점에서 그 『짓궂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사용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사전에 답이 유출된 것도 아니니 정답은 언제든지 변경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마지막까지 말한 후에 정답을 맞췄다고 해도 그건 틀렸다고 말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래도, 코마에다가 알고 있는, 진짜 정답.」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승부는 나의 승리.」


간단히 마무리짓는 것을 보며, 코마에다는 깊이 숨을 내쉬었다. 히나타가 말한 대로였다. 준비해둔 정답을 도중에 바꾸게 될 때, 진짜 정답을 알고있는게 코마에다 밖에 없다는 것은, 코마에다만은 진정한 승패를 알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가리켰다.


「그 말대로야. 내가 졌어. 정말, 너에겐 늘 놀라게 돼……」


기억력과 통찰력 정도의 얘기가 아니다. 코마에다라면 그런 정답을 준비한다, 라는 것까지 간파당한 완패였다. 히나타의 머리 회전 속도에 혀를 내둘렀지만 그것과 같은 정도로 신경이 쓰였던 것은 그가 처음으로 『나(보쿠)』라고 말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마츠다와 코마에다의 이름을 입에 올린 일은 몇 번인가 있었지만 자신을 가리키는 단어는 무엇 하나도 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단어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히나타에게는 『자신』이란 존재가 없었다. 묻는 말에 대해서 상당한 정확성으로 대답할 수 있게 됐어도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다던가 무엇을 생각한다던가, 그런 것을 전한 적은 없었다.

자아가 싹트고 있는 것일까, 코마에다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런건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한다. 마츠다가 돌아오면 제일 먼저 보고하기로 결정하고 확실하게 성장하고 있는 히나타의 머리를 옳지옳지라며 쓰다듬었다.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왼쪽 눈은 커다란 안대로 덮여있었다. 안대라고 해도 끈으로 고정시킨 물건이 아니라 의료용 테이프로 적당히 거즈를 붙여놓았을 뿐이다. 묻지도 않고 테이프를 뜯어보면 보기에도 끔찍하게 부어오른 눈이 모습을 드러냈기에 코마에다는 마치 자기 일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이거 말야……실험이라기보단, 폭력 뒤에 생긴거지? 얻어맞았다던가, 그런 거지」

「……」


히나타는 제 몸에 대해서는 일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목을 흔드는 것조차 없는 것은 아마도 말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일까, 라고 코마에다는 추측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답을 듣지 않아도 매일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환자복 앞을 풀어보면 몸 곳곳에 상처가 남아있다. 붕대를 감고있는 장소는 어느 정도 상처가――약품으로 지져진 듯한 자국과 메스로 갈라졌던 것 같은 자국 같은 실험체다운 상처가 붙어있었지만, 그 이외의 푸른 멍은 어떤 조치도 없이 방치상태였다. 맞거나 난폭하게 들이받았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멍.

그가 받고있는 폭력에 대해서 몇 가지의 짐작은 있었다. 예를 들면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환자를 앞에 두고, 실험이 잘 진행되지 않아서 열이 받았다던가. 반대로 실험과는 관계없는 곳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항도 없다는 것을 이용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사용했거나 가학심을 채우기 위해 주먹을 휘둘렀다던가. 혹은 여러가지로 미묘한 입장에 있는 마츠다를 향한 간접적인 괴롭힘일 수도 있었다.

옷이 벗겨지는 바람에 추운지 몸을 떨고 있는 히나타의 등을 팔로 감싸고, 코마에다는 그를 부드럽게 껴안았다.


「지켜줄 수 없어서 미안해. 나는 이 방 밖의 일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있지, 너는 이런 대우를 받고 아무 것도 느끼지 않아? 그럴 리 없겠지. 아팠을 거야. 싫다고 생각하지만 말하고 싶진 않아? 아니면, 말하고 싶은데 못하는 거야?」


질문에 답해준다면 코마에다에게도 그를 지킬 수단이 있을 지도 모르는데, 역시 히나타는 침묵을 지켰다. 분명 마츠다도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고, 시간 낭비라는 걸 깨닫고 이 상처들에 눈을 감고 있는게 틀림없다.

코마에다는 그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상냥한 키스를 했다. 입술을 파묻고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번갈아 먹으며 가볍게 빨아들였다. 뜨거운 숨이 새는 것을 느끼면 기뻐졌다. 표정은 변함없어도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확실히 반응을 해주는 것이다.

머리를 껴안고 맞물림을 깊게 하여 거칠게 혀로 입 안을 헤집어도, 이제 히나타가 혀를 깨무는 일은 없었다. 변함없이 뭔가를 먹도록 입 안에 넣어주면 바로 씹어버리지만, 적어도 키스로 사람의 혀를 씹으면 안된다는 건 학습한 것 같다.


「있지, 네 쪽에서도 해줄래……? 키스, 이제 배웠잖아?」


입술을 묻은 채로 속삭였다. 히나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보고 배운대로 입술을 눌러왔기에 코마에다는 키스 중간에 후후, 하고 숨을 흘려보냈다.


「그래, 항상 내가 하는 것처럼 혀를 넣고 빨아봐……괜찮아, 물거나 하지 않아」


코마에다가 말한대로 순순히 혀를 넣어 히나타는 살며시 코마에다의 혀를 빨았다. 침이 자연스럽게 분비되고 뇌 속까지 젖어가는 쾌감이 서서히 물들어 왔다. 응, 하고 쉰 목소리를 내며 코마에다는 히나타의 등을 끌어안고 자신의 욕망대로 탐닉하는 듯한 키스를 했다.

잠깐 숨을 멈추고 있었던 걸까. 입술을 떼면 히나타의 호흡은 조금이지만 흐트러져 있었다. 단지 그것뿐인데, 젖은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는 것을 보면 욕정하게 되었다. 뺨에 입술을 밀어붙여 그대로 미끄러지듯이 한 쪽 귀로 옮겨가 혀 끝으로 할짝할짝 핥으면 히나타는 이상하단 눈으로 코마에다를 바라보았다.


「흥분 돼?」

「……」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모습이 귀여워서 코마에다는 웃었다. 위로하듯 안대 위에 입맞추고, 목에 감긴 붕대에도 키스하며, 상처 투성이인 몸 위를 부드럽게 혀로 핥았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들고……」


가슴팍에 미세하게 붙어있는 푸른 멍이 보기에 따라서는 키스마크처럼 보여서 코마에다는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문득 그런 제 감정을 자각하고, 한 번 키스를 멈추고 얼굴을 들었다.


「이상하지. 너는 학원에게 기대받고, 많은 분들께 주목받고, 그 기술을 확립시키기 위한 귀중한 소재일 텐데……어째서 불쌍하다고 생각해버리는 걸까. 이건 희망을 위해 필요한 희생이라고, 알고 있는데도.」


거기서 히나타가 몸을 떨었기에, 코마에다는 벗겼던 환자복을 그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열려있는 가슴 부근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면 히나타는 감정없이 자신의 몸을 내려보았다.


「아, 이상한건 네가 아니라 나야. 아니, 나인걸까……? 솔직히, 여기에 오게 된 이후로 뭔가 이 학원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본성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거든. 이상한 건, 그들이 아닐까 하고」


왜 그런 것을 생각하는지, 코마에다 자신도 잘 알 수 없었다. 정부 공인을 받는 이 나라 최고의 학원이니, 코마에다 개인이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자신은 그저 빛나는 장소에서의 청춘을 보내고, 무난히 졸업을 맞았으면 되는 거였을 텐데――생각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머리 구석에 몰아넣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상처받으면서 아무 말도 못하는 그를 보고 있으면, 아무리 해도 그런 생각을 하게되고 말았다.


「이런 주제넘은 생각,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분명 나는 너한테 정이 많이 생겼을 뿐인거야」


이 얘기는 여기서 끝, 이라며 아무렇게나 마무리를 지어버렸지만, 정이 생겼다는 게 감정을 토대로 한 진실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저항없는 인형을 상대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은 코마에다도 마찬가지였다. 제 장난감을 다른 사람들이 만지는게 싫은, 그 뿐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사실은 아주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란 작은 부분을 파고들수록, 코마에다는 또 다른 본능으로 그를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본래 이 학원도 그렇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었다. 키보가미네는 재능을 가진 인간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소중히 갈고 닦아서 세상에 배출한다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는 이런 좁은 방 안에서 이런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할 수록 학원을 향한 불신은 커져갔다.

허리 주위를 쓰다듬으며 입술에 장난걸듯 키스를 보내고 있던 코마에다는, 흥미 본위로 아슬아슬한 부분을 자극하기로 마음먹고, 환자복 위에서 허벅지를 문질문질 손끝으로 더듬었다. 조금은 표정을 바꿔주지 않을까 하고 눈치를 보면서 계속했는데, 문득 시선을 내리자 그의 고간 부근이 부풀어 오른 것을 깨닫고 코마에다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흥분했어? 기쁜걸, 나같은 놈의 애무로 느껴줬구나」


천 위에서 손바닥으로 문질문질 자극한다. 조금 강하게 자극하면 히나타의 표정이 바뀌었다. 과연 본능에는 이기지 못하는 것인지, 당황한듯 만지작대고 있는 부분을 바라보고 있다.


「너, 이런 게 뭔지 알고 있을까나」

「……마스터베이션」


교과서같은 대답이 바로 돌아와, 묵묵히 무언을 관철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코마에다는 놀라서 눈을 깜빡거렸다.


「알고 있구나」

「야스케가」

「헤에! 그 마츠다군이 가르쳐 준거야? 꽤 괜찮은 아버지 하고 있잖아」


지식이 있어서인지 만져지고 있는 것을 경계하는 기색은 없다. 그 마츠다가 하반신의 일까지 직접 맡아주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으니, 아마 하는 법만을 가르쳐준 정도겠지. 그렇게 판단한 코마에다는 환자복을 벗겨 발기한 성기를 속옷에서 꺼내주겠다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옷을 벗겨내면 바로 벌떡 발기한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 코마에다는 김샌듯이 그것을 잡았다.


「어라, 속옷 안 입었어? 설마 항상? 아니면 입는 걸 잊어버린걸까」


손 끝으로 강하게 훑자 히나타가 몸을 비틀었기에, 코마에다는 조금 힘을 약화시켜 상냥하게 뿌리부근을 자극하기로 했다. 오른발의 상처는 아직 새것이니 날뛰다가 벌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히나타의 호흡은 한 눈에 보기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거칠어지고 있었다. 괜찮아, 라고 등을 어루만지고 안심시키면서, 서서히 자극을 높여가며 몰아붙였다.


「모습을 보아하니, 해본 적은 없는 것 같네. 이렇게 문지르면 기분 좋지?」

「……」


유감이지만 목소리를 듣지는 못할 것 같았다. 히나타는 숨을 내쉬는 것이 고작으로 점점 단단해지는 자신의 성기를 볼 여유도 없이 꾸욱 눈을 감고 있었다. 평소엔 그다지 좋지 않은 얼굴색이 지금만은 발그스름한 색을 띄고 있어, 기분이 좋아진 코마에다는 침대 아래로 내려와 무릎을 꿇어 그의 고간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고, 부풀어 오른 성기를 입 안에 담았다.


「응……」


실험기에는 제대로 목욕도 하지 못한다고 들었지만 매일 깨끗이 몸을 닦아지고 있어서인지, 운동도 하지 않고 땀을 흘릴 기회가 없는 그에게서는 별다른 체취가 나지 않았다. 다만 귀두 끝에서 번지는 액체가 천천히 입 안에 퍼지면 과연 코마에다도 그 맛에는 얼굴을 찡그렸다. 비리지는 않았지만 신맛이 나서 그덕에 점점 침이 분비당해, 얼굴을 위 아래로 움직이며 핥는 동안 질척질척하는 소리가 났다.

뺨을 움푹하게 오므려서 뿌리부터 세게 빨아들이면 히나타는 예고도 없이 코마에다의 입 안에 사정했다. 움찔, 움찔하며 뿜어나오는 정액을 전부 혀로 받아내며, 코마에다는 천천히 입술을 떼어냈다. 젖은 성기의 끝과 입술 사이에 가느다란 점액질의 실이 이어졌지만 금방 뚝 끊어졌다. 히나타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호흡을 가다듬으면서도 자신의 성기 끝에 남아있는 하얀 잔재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혀를 훑어 입 안에 있던 정액을 손바닥에 뱉어낸 코마에다는, 씨익 웃으며 그것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네가 내보낸 거야. 아핫, 꽤 진한걸.」


지독한 냄새라고 생각했지만, 들뜬 탓인지 그 냄새에마저 오싹오싹해지고 말았다. 히나타는 타액이 섞인 정액을 빤히 바라보는가 싶더니,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일어서서 한쪽 발을 질질 끌며 작은 종이컵을 가지고 돌아왔다.


「정액」


그렇게 말하며 코마에다의 앞으로 내밀었다. 뭔가 싶어 바라보면 종이컵 안에는 몇주 전의 날짜와 『채정』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런 것까지 실험에 사용하려고 하는구나」


순식간에 기분이 다운돼 미간을 찌푸린 코마에다는 보란 듯이 정액을 다시 핥아먹었다. 안 줄거야. 라고 짓궂게 말하면 히나타는 말없이 컵을 내렸지만, 정액 샘플은 바로 채취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라는 그럴싸한 말을 덧붙이자 그도 납득한 듯했다.

침으로 젖은 하반신을 닦아주려고 마츠다의 책상에서 티슈를 상자째로 가져온 코마에다는 변함없이 히나타가 자신의 사타구니를 빤히 쳐다보는 것을 발견하고, 아직 마츠다 군은 돌아오지 않았고, 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히나타에게 몸을 바싹 붙였다.


「한 번 사정을 경험하고 나면 참을 수 없게 되니까, 스스로 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됐을 거야. 마츠다군에게 배운 거지?」


그렇게 말하며 히나타의 오른손을 잡고, 풀죽어 있는 것을 쥐게 했다. 그러면 무엇을 가르쳐주기도 전에 그는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기에 코마에다는 본능이란 대단하구나, 라며 감탄하고 말았다. 식사조차 스푼을 제대로 쥐려고 하지 않는 그인데 성욕은 그것에 이겼단 소릴까.

쾌감에 면역이 없는 탓인지 금방 고개를 치켜든 성기를 보고, 코마에다는 아까 전부터 근질거렸던 자신의 하반신을 스윽 더듬었다. 일부러 애태우듯이 건드리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오싹오싹했다.


「나도 흥분해버렸어……저기, 이번엔 내껄 만져줄래?」


바지 앞을 열어 반쯤 선 성기를 꺼내들고, 코마에다는 히나타의 귓가에 속삭였다. 유감스럽게도 자발적으로 만져주려고 하지는 않았기에, 그의 손을 잡아 쥐게 만들었다. 자신보다 조금 커다란 손이 성기를 감싸면 그것만으로도 한층 흥분되었다.

서투른 손길로 쓰다듬어지면 초조함에 견딜 수가 없었다. 코마에다는 대신 그의 성기를 문질러올리며 몇 번이고 입맞춤했다. 서로 숨이 가빠지고 키스도 깊어져서, 두 사람은 입 옆으로 침이 흐르는 것에도 개의치 않고 쾌감에 빠져들었다.


「있지, 섹스할까」


히나타의 몸을 천천히 침대에 눕히고, 이미 그럴 마음인 코마에다는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교복 바지와 트렁크 팬티를 거칠게 벗어던져 그의 위에 걸터앉고, 히나타의 성기에서 새어나온 액을 손가락에 뭍혀 코마에다는 그것을 스스로 엉덩이 사이에 발랐다. 흥분한 탓인지 표면을 빙글빙글 문지르는 것만으로 벌름거렸다.

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다 빼며 몸을 움찔거릴 때마다 발기한 성기가 움찔움찔 흔들렸다. 히나타는 누운 채로 그것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이대로 다리를 벌리고 앉은 채로 삽입하여 허리를 흔들면, 히나타의 몸에 가는 부담도 적을 것이었다. 아직 덜풀린 구멍을 그의 성기에 맞추며, 「넣고 싶지?」 라고 유혹하듯이 바라보며 물어본다. 히나타는 어느 쪽으로도 고개를 흔들지 않았지만, 코마에다는 스스로 구멍을 벌리면서 천천히 허리를 낮추었다.


「아, 으……, 들어가려나……」


이물질이 들어오려고 하면 입구의 근육이 멋대로 수축되어 닫히고 말기에, 할 수 없이 억지로 허리를 밀어붙여서 파묻어갔다. 눌리듯이 하여 내부에 깊게 박히도록 했다. 헐떡이며 전부 삽입을 마치면 히나타의 배 위에 똑 땀이 한방울 떨어졌다.


「들어, 갔어……. 굉장해, 안에 들어와 있는게, 느껴져……」


숨을 몰아쉬고 그렇게 말하면서, 아랫배를 누르며 형편없는 미소로 웃어보인다. 히나타는 깊게 숨을 내뱉고 멍하니 코마에다를 올려다봤지만 천천히 허리를 들어서 반쯤 빼내면, 두 사람은 동시에 신음같은 소리를 질렀다.


「너도, 기분 좋아……? 아프지 않은거지?」


코마에다는 왕복하듯이 허리를 흔들면서, 몸을 사용해 그의 성기를 훑어올렸다. 전부 빠질 정도까지 허리를 들어올려 귀두 부분으로 입구를 자극하고, 단숨에 기세를 더해 엉덩이를 푹 내렸다. 그러면 등 뒤로 찌르르 하고 감전되는 듯한, 겪어본 적 없는 감각이 피어올랐다. 입이나 손으로 해주는 것보다 히나타도 더 느끼고 있다는 것은 몽롱해진 그의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 있지, 허리 흔들어도, 좋아……자, 또 기분 좋게, 되고 싶잖아, 가고 싶지 않아……?」

「읏……」


하지만 히나타는 말을 인식할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자신의 배 위에 올려진 코마에다의 손을 꽉 붙잡을 뿐으로 스스로 움직이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런 때에도 단단히 언제나처럼 코마에다의 왼손을 쥐고 있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것도 어느샌가 본능에 가까운 수준으로 주입된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코마에다가 좋을 대로 허리를 흔들면, 결합부에서 들리는 희미한 소리가 고막을 애무하듯이 자극하기 시작했다. 거칠게 엉덩이를 부딪히면 부딪힐 수록 그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이 기분 좋아서, 코마에다는 작게 헐떡이면서 자신의 성기 끝을 만지작거리고, 황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젖혔다.

그때,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를 막듯이 복도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마츠다의 발소리였다. 코마에다는 순간 제정신으로 돌아왔지만, 이제와서 어떻게 발뺌할 수도 없서, 아―아, 라고 중얼거리며 입구를 바라보았다.

문을 열고 뛰어들어온 마츠다는 침대 위에 겹쳐있는 두 사람을 보고 코마에다가 히나타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게 아니냐고 순간 착각했지만, 자세히 보면 코마에다의 바지와 속옷이 침대 위에 펼쳐져 있고, 긴 가디건 아래로부터 단단히 연결된 결합부가 보였기에, 입을 열자마자 바로 「죽어」 라고 말하면서 벽을 세게 내리쳤다.

떨어져 있더라도 히나타의 상태를 알 수 있도록 마츠다는 항상 히나타의 팔에 리스트 밴드형 계측기를 감아놓아, 심박수의 혼란을 감지하여 모니터링 할 수 있도록 해놓았던 것이다. 마치 격렬한 운동이라도 하는 듯이 빠르게 심박수가 날뛰기 시작했기에 부랴부랴 달려왔더니, 그야말로 격렬한 운동이 한창이었다는 소리다.


「미안, 해 마츠다군……금방, 끝날테니, 까」


일단 자신의 앞을 가리려는듯 히나타의 배에 올려둔 손을 꼬면서, 코마에다는 다급하게 말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허리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고, 너도 슬슬 갈 것 같지, 라며 구멍을 꾸욱 조여올린다. 히나타는 읏, 하고 신음하고 몸을 꼼짝못한채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코마에다의 안에 사정했다. 코마에다는 그런 히나타의 모습을 눈에 새기면서 제 성기를 문질러 절정에 도달했지만, 본 적이 없는 히나타의 표정에 눈을 빼앗긴 것은 연구자인 마츠다로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츠다는 히나타의 위에 앉아 여운에 젖어 황홀경에 빠진 코마에다를 난폭하게 밀쳐내 침대 밑으로 떨어뜨리고, 얼굴을 붉히고 있는 히나타를 들여다보았다.


「너, 섹스 할 수 있었던 거냐. 왜 이 남자 상대로는 발기한 거야? 호모 투성이냐고, 여긴 대체 어떻게 돼먹은 거야. 어이 거기있는 호모, 콘돔도 없이 했겠다. 뒤져버려.」

「마츠다군, 일에 쫒겨서 고생하는 건 알지만, 점점 말투가 거칠어지는 느낌이 드는걸」


코마에다는 부딪힌 엉덩이를 문지르며 마츠다에게 등을 돌려 티슈로 정액이 묻은 구멍을 가볍게 닦았다. 옆에 샤워룸이 있다는 얘기는 전에 들었으니까 속옷과 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은 후, 샤워룸 좀 빌릴게, 라며 방을 나가려고 했다.

거기서 중요한 것을 떠올려, 위화감이 남은 아랫배를 문지르면서 「그렇지」 라며 몸을 돌렸다.


「마츠다군에게 말해야 할 게 있었어」

「말 걸지마. 오징어 냄새나. 호모가 옮아.」


싫은 기색을 보이지만 전혀 들어주지 않으려는 태도는 아니었다. 코마에다는 어깨를 움츠리며 변명했다.


「호모라고 단정지어버린 것 같네. 반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만은 참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은걸. 그게 아니라 실은, 그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 아까 흥미로운 일이 있었거든. 보고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요점만 말해」


중요한 실험체를 맘대로 덮친 일을 용서한 것은 아니지만, 코마에다의 보고는 연구에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 될 때가 많았다. 할 수 없이 들어보자는 태도를 취하면 코마에다는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그가 『나(보쿠)』라고 말했어. 나하고 말장난을 할 때에 『나(보쿠)의 승리』라고. 이건 분명 아주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부디 너의 견해도 들려주길 바래. ……아, 그 전에 샤워부터 빌릴 테니까 돌아오면 가르쳐줘」


일방적으로 말하고 방을 나가버린 코마에다에게 무엇도 묻지 못하고 마츠다는 말없이 히나타를 내려다보았다. 하반신을 드러낸 그는 자신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것을 보는 마츠다의 눈은 지금까지 이상으로 악화되고 있었다.



*****



「전에 너한테 말했던 건 기억하고 있겠지?」


네. 히나타는 답했다. 본부대로 의자에 깊게 앉고 허리를 곧추 세운채 상대의 눈을 바라보면서.


「너는 완벽한 존재가 된다. 인간의 모든 희망을 모은 완성형이 될 것이다.」

「그것을 위한 첫단계로써, 너는 불필요한 고뇌로부터 해방되었다.」

「수많은 실험과 샘플 채취에 의해 여러 재능을 모으기 위한 사전준비를 갖췄다.」

「나머지는 네 각오 뿐이다. 알고 있겠지?」


네. 네. 네. 네. 모든 말에 규칙적으로 답한다. 프로젝트 룸의 『밖』에서 진행되는 이 교육에서, 필요한 일은 모두 버릇이 될만큼 가르치고 있었다.

치졸한 말은 머리에서 제거시키고, 말투부터 철저하게 주입하여 다시 가르쳤다.

표정 하나 하나도 세세하게 지도받아, 기대에 부응하게끔 되었다.

어떤 고통을 받아도 견딜 수 있도록 훈련받았다.

그것이 무엇을 위해서인지, 누구를 위해서인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지금의 히나타로는 어느 하나 알지 못한다. 그저 텅 빈 머리에 가득 밀어넣어진 것을 그대로 꺼내고 있을 뿐이었다.


「너는 선택받은 인간이 될 것이다.」

「너는 사용자 측의 인간이 될 것이다.」

「지금 네 곁에 있는 자들도 전부 이용하라.」

「너를 위해서. 인류의 희망을 위해서.」


네. 그렇게 대답하며, 히나타는 『곁에 있는 사람』을 떠올렸다.

이는 학원 최고위에 소속된 프로젝트로, 그것과 연결되는 형태로 마츠다 야스케가 이끄는 『뇌 신경 조정 프로젝트』가 존재했다. 그것과 비슷하게 여러 프로젝트가 히나타를 연구하여, 정신기능, 신체기능, 심지어 외모에 이르기까지 이상적인 형태를 완성시킬 준비를 겨우 마쳤다.

엄청난 수의 인간과 만났지만, 곁에 있는 사람, 이라는 말을 들었을때 떠오르는 것은 아주 소수의 인간의 모습 뿐이다. 어두운 실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네 명의 노인을 응시하면서도, 히나타는 멍하니 생각했다.

――마츠다 야스케는, 자신이 완성된다면 기뻐해 줄까.

실제로 그렇게 생각된 것은 아니다. 히나타는 자신의 사고를 그렇게까지 고도로 정리하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직 히나타에게 남아있는 원시적인 감정은, 그 남자가 기뻐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자신이 완성되면 모두가 기뻐한다. 모두의 희망이 된다. 철저하게 만들어진 히나타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단 한가지, 가슴 언저리에 걸리는 말이 있었다.


『이상한 건, 그들이 아닐까, 하고』


얼마 전, 코마에다가 히나타에게 했던 말이었다. 히나타는 그 말을 제대로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말했을 때의 그의 괴로운 듯한 표정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들, 이라는 건 학원을 가리켰다. 즉 학원이 보살피고 있는 자신도 포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이상한 것일까. 인류의 희망을 위해 완성되려고 하는데, 그것이 이상하다고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만약 모두가 기뻐해 주어도, 그때 그는 웃어주지 않는다는 것일까.

정리되지 않는 사고를 방류해도 결론이 나올 일은 없고, 히나타는 언제나처럼 뇌 속에서 메아리치는 그것들을 잡음으로 판단하여 차단했다.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똑같았다.

――히나타 하지메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



길게 느껴지던 겨울이 슬슬 끝을 맞이할 무렵, 코마에다는 조금씩, 그러다 확실히 학원에 대한 불신감을 격화시키고 있었다. 마츠다는 이전보다 프로젝트 룸을 비우는 일이 늘어나, 이제는 농담도 험담도 말하지 않게 됐다. 돌아왔다고 생각하면 어려운 얼굴로 책상 앞에 앉아 막대한 양의 자료와 기싸움을 시작하기 일쑤였다. 그 등에는 뭔가 굉장히 무거운 것을 등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 코마에다는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스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예감은 하나의 계기를 맞이함으로써 맞아떨어지게 되었다.



실험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히나타는 코마에다와 함께 있던 때에 발작을 일으켰다. 마츠다는 방에 없었지만 그에게서 긴급 시 대응을 배웠던 코마에다는 본부대로 약을 먹이고 잠시 등을 쓰다듬은 다음 그를 침대에 뉘여 재웠다.

일단 마츠다에게 연락은 넣었지만 회의 중인지 휴대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만약 만일의 일이 생기면 어쩌면 좋지, 라고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었을때 비로소 마츠다로부터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미안, 연락이 온 걸 몰랐어. 고물의 발작이냐』


마츠다도 심박수의 이상을 감지하고 있었으므로 빠르게 용건을 물었다. 긴급시와 헷갈리기 때문에 앞으로 일절 섹스하지 말라고 일러두었고, 코마에다로부터 연락이 온 것을 포함하여,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발작을 일으킨 것이라고 짐작한 듯했다.


「응, 맞아. 시킨대로 약을 먹이고 재우긴 했는데, 아직 괴로워 보여서……」


슬쩍 히나타를 바라본다. 이불을 덮은 그는 미간에 주름을 넣고 하아, 하아, 와 같은 호흡을 반복하고 있었다. 코마에다는 시트를 쥔 그의 손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히나타는 눈을 감은 채였지만 무의식중에 손을 더듬어 코마에다의 손을 찾아내 꾸욱, 하고 꼭 잡아왔다.


『열은 어때. 침대 머리맡에 체온계가 있잖아.』

「재볼게. 잠깐만 기다려」


체온계의 전원을 넣어 히나타의 겨드랑이에 끼운다. 살짝 이마를 만져본 것으로도, 잴 필요도 없이 뜨거운 것을 알 수 있었다.


「열, 있었어. 어쩐지 평소보다 멍하게 있는다고 생각했는데……미안,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사과하지 마. 너에게 간호 책임을 맡긴 기억은 없어. 지금 진정된 상태라면 일단은 괜찮아. ……이것이 끝나면 바로 돌아간다. 무슨 일이 있으면 또 가르쳐줘』


그렇게 말하고 마츠다는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쪽에서의 잡음은 들리지 않았으니 회의를 잠시 빠져나와 통화한 거겠지. 코마에다는 검온이 끝난 채온계를 빼내며, 마츠다군은 실은 꽤 상냥하지? 라고 웃으며 히나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츠다는 그로부터 한시간 뒤 프로젝트 룸으로 돌아왔다. 검온 결과가 38도였다는 것을 듣고 「높은데」라며 얼굴을 찌푸렸지만 그때에는 히나타의 호흡도 진정되어 있었기에, 일단 안도하며 어깨를 내린다.


「어이 고물, 내가 누군지 알겠냐」

「봐, 마츠다군이 돌아왔잖아」


곁에 있던 코마에다가 가볍게 툭툭 볼을 건드리면, 얕은 잠에 빠져있던 히나타는 어렴풋이 눈꺼풀을 열었다. 초점이 없는 눈동자를 본 것만으로 발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마츠다는 불쑥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야스케……」

「아니, 마츠다다. 이제 기억하라고」

「이럴 때까지 그럴 거 없잖아」


어이없어 눈을 반쯤 뜬 코마에다가 마츠다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제대로 들어갔는지 윽, 하고 신음한 마츠다가 항의의 눈빛을 보냈지만, 코마에다는 아랑곳않고 히나타에게 말을 걸었다.


「깨워서 미안해. 좀 더 자는게 어때? 괜찮아, 곁에 있어줄테니까」

「……」


히나타는 자신이 잡고있던 코마에다의 손을 가만히 보고, 느리게 몸을 뒤척였다. 전부 뜨인 눈동자가 코마에다를 올려다보고 있다. 아무래도 잘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라고 깨달은 코마에다는 쓴웃음을 지으며 책 한권을 꺼냈다.


「그럼 책이라도 읽을까. 마침 보여주고 싶은 책이 있었어」


가져온 것은 한 권의 사진집이었다. 대체로 독서는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걸로 끝내는 일이 많은 코마에다가, 굳이 책방까지 찾아가서 사온 것이었다. 달을 테마로 한 사진집으로, 표지에는 보기 좋게 보름달이 둥실 떠올라 있었다.


「너는 볼 수 없는 게 불쌍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코마에다는 특수처리된 창을 보며 말했다. 낮에는 간신히 햇빛이 비쳐오지만 밤이 되면 깜깜하게 되어, 달빛이 방 안까지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그런 방 안에서만 지내고 있는 그를 위해 이 책을 산 것이다.

책상으로 돌아간 마츠다가 드물게 코마에다의 말에 반응을 보였다.


「불쌍하다인가. 너, 자주 그 녀석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네.」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건 실례다……라고 말하고 싶어? 마츠다군은 그런 트집잡기를 좋아하는 편? 불쌍하다는 기분이 동정밖에 없다는건 아니라고 생각해. 나는, 이 기분이야 말로 『무엇인가 해주고 싶다』라는 행동욕구의 근원이 된다고 생각하거든」

「……」


코마에다가 필요 이상으로 강한 어조로 말하자, 마츠다는 의자를 돌리고 예리한 시선을 보내왔다. 코마에다는 자신이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적의를 풀듯 웃어보였다.


「그렇게 경계하지 말아줘. 딱히 그를 밖으로 도망치게 해주려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일이 하고 싶었다면 진작에 했어. 아무리 나라도 네 주변에 있지 않으면 그가 살아갈 수 없다는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히나타를 밖으로 도망치게 해주어도 도저히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겠지. 만약 코마에다가 곁에 있어준다고 해도, 오늘처럼 발작을 일으킨다면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회복할 가능성이 있는지 어떤지 알 수 없는 그의 목숨을 평생 책임질 정도의 각오가 코마에다에겐 없었다.


「나는 그저 그를 폭력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주고 싶다던가, 예쁜 달을 보여주고 싶다던가, 그런 걸 생각할 뿐이야. 제대로 현실에 대해서 자각하고 있어. 이런 식으로 말야.」


히나타가 포장을 벗기고 있는 사진집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히나타를 옥상으로 데려가 진짜 달을 보여주는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아니까 이렇게 사진을 보이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낯선 밤 하늘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히나타를 스윽 쓰다듬으며, 코마에다는 복잡한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싫은 예감이 들어. 아마 네가 내게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일 거야. 나는 그에게 너무 정을 주고 있어. 그를 상처입히는 것들을 원망까지 하고 있어」

「자각하고 있다니 다행이군. 학원을 적으로 돌릴 정도로 바보는 아니잖아, 너도.」

「그게 아냐……내가 걱정하는건 『내가 키보가미네에 적의를 갖는다』 그 자체야. 너도 내 재능에 대해, 알고 있잖아」


마츠다는 코마에다의 『행운』의 이야기를 개인적으로 들었던 적이 있었다. 전국의 평범한 고등학생 중에서 추첨으로 선정됐다는 코마에다가, 그 이외에도――아니, 좀더 본질적인 『행운』이라고도 불릴만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 『재능』은 나를 괴롭히는 것들을 청산하기 위해, 그에 맞는 벌을 내려줘. 시대극에서 악당이 반드시 패배하는 것처럼 말야.」


전에 들었던 것과 같은 말을 풀어내는 코마에다에게, 마츠다도 그때 했던 말을 그대로 뱉었다.


「그런 능력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초자연 현상이거나 종교겠지」

「……그런 소리를 듣는건 이제 익숙해. 믿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난 이제 아무래도 좋아. 이런걸 왜 너에게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불안한거야 나는. 지금까지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을 원망하는 거니까……」


책이 들어있던 봉투를 내려다보며 코마에다는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1년 전 이 학교의 문을 처음 들어섰을 때에는, 이 문에서부터 재능 넘치는 인간들이 수없이 배출된 거구나, 라며 가슴 설레했던 것이다. 입학하고 나서도 일상 속에는 자극이 넘쳐났다. 설비 시설도 보통의 고등학교와는 차원이 달랐고, 그것을 이용하는 초고교급의 학생들 속에서 고교생활을 보낸다는 데에 코마에다의 마음은 충족되고 있었다. 그런 빛나는 장소를 제공해준 학원에 대해서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았다――이 소년을 만나기 전까지는


「너무 깊게 생각하지마라. 이 학원이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는 너도 알고 있잖아? 네 재능을 믿는다던가 믿지 않는다던가 쓸데없는 논의를 하기 전에, 애초에 대상이 너무 커다랗다는 소리다. 학원을 부수다니 있을 수 없어. 네가 바라는 것만으로 운석이라도 떨어져 준다면 모르겠지만.」


마츠다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고 다시 의자를 회전시켜 등을 돌렸다. 실제로 운석에 의해서 『처벌』했던 경험이 있는 코마에다는, 이걸 알려주면 마츠다는 깜짝 놀라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기에 조용히 있기로 했다.


「……그렇네. 확실히 너무 깊게 생각했나봐. 현실적이지 않은걸. 학원이 무너진 모습이라니, 나도 도무지 상상되지 않고」


마츠다는 더 이상 말을 할 생각이 없어보였기에, 코마에다도 거기서 이야기를 중단하고 묵묵히 사진집을 보고있는 히나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초승달의 사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달, 알겠어?」


옆에서 들여다보며 막연한 질문을 던지자, 히나타는 조금 생각한 뒤에,


「달은……태양과, 싸움을 해」


라고, 더욱 막연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예상도 하지 못한 답변에 눈을 동그랗게 뜬 코마에다는, 그것이 「태양과 같은 시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깨닫고, 무심코 목소리를 높여 웃고 말았다.


「아하하! 의외로 시인이구나. 알겠지, 누군가와 달을 보게되는 일이 생기면,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말해주는 거야」


*옛날, 일본의 소설가가 "I Love You"라는 표현이 일본인의 정서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달이 아름답네요", 라고 번역한 것에서 비롯된 유명한 시적표현.


그런 농담을 말하면서, 「있지 있지 마츠다군, 초고교급의 시인이라는 자리는 없어? 그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라고 웃음을 섞어서 물어보지만, 마츠다는 잡음은 일체 차단하여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기에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싸우고만 있는 건 아니야. 낮중에도 달이 보일 때가 있으니까……그래도 태양에게는 지고 있으니까 역시 사이가 나쁜 걸까? 아, 이건 사이 좋아보이지 않아? 새벽 달.」


어떤 한 페이지를 열어보이면 히나타는 눈썹을 꿈틀하고 움직이고 놀라는 표정을 보였다.


「하늘이, 붉어」

「아침 노을이거든. 하늘 윗부분은 아직 어두우니까, 달이 보이는 거야」

「하늘은, 파래」

「평소에는 그렇지. 그치만 일출과 일몰때는 붉에 변하는 거야. 에에, 왜였더라?」


등 뒤에 물어보아도, 역시 마츠다의 대답은 없다. 코마에다는 가볍게 어깨를 움츠리며 어쩔 수 없이 제 스마트폰을 사용해 조사하기로 했다.


「여기 있다. 빨간색은 강해서 멀리까지 닿는대. 그러니까 일출이나 일몰처럼 조금밖에 나오지 않을 때엔, 강한 빨간색만 보인다고……, 근데, 벌써 흥미가 없어보이네」


모처럼 알기 쉽게 설명해줬건만, 히나타는 사진집에서 눈을 돌리고 있었다. 반응을 보건대 아무래도 붉은 하늘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탁, 하고 책을 닫으면 히나타가 목 안쪽에서 작게 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기에, 코마에다는 자신이 갖고 있던 생수의 뚜껑을 열어서 그에게 건넸다. 히나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따뜻한 물로 목을 축였지만, 겨우 한모금만을 마시고 코마에다에게 페트병을 돌려줬다. 벌써 된거야? 라고 코마에다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괴로운 듯한 표정이 그의 입가에 뒤덮여 있는것을 보고 흠칫했다. 안색이 좋지 않다. 기분이 나쁜듯,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먹이지 않는 편이 나았으려나……저기, 마츠다군,」


히나타의 등을 쓰다듬으며 마츠다를 부른 순간, 히나타는 몸을 접어 그 자리에서 구토하고 있었다. 웨엑, 하는 괴로운 소리와 함께 질척질척 토사물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 코마에다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마츠다도 부랴부랴 달려왔다.


「저질렀군. 위도 약해지고 있는 거겠지. 이번 실험기는 길었으니까 말야.……」


히나타는 아침부터 식욕이 없는지 잘 먹지 않았던 것도 있어,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시트와 이불, 히나타의 환자복을 갈아입히고 마루를 좀 닦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 마츠다는 우선 히나타의 옷을 벗기려다 문득, 침대 옆 의자에 앉아있던 코마에다가 굳어있는 것을 깨달았다.


「마츠다군」


코마에다는 히나타의 긴 머리카락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앞머리를 쓸어 올려 뒤로 넘겨주고 있던 참이었다. 구토로 체력을 사용해 괴로운듯 어깨를 들썩이는 히나타의 얼굴과 자신의 몸을 멍한 모습으로 번갈아보고 있다. 잘 보면 코마에다가 입고 있는 코트에도 피해가 번져있는 것이 보여, 마츠다는 얼굴을 찌푸렸다.


「샤워해도 좋아」


과연 딱하다고 여겨 옆 방을 손가락으로 가르키지만, 코마에다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얼른 씻고 와, 덩달아 토할 것 같으니까」 라고 말하려고 했던 그 때, 코마에다는 굳은 채로 불쑥 말했다.


「나, 그와 만난 적이 있어」

「뭐라고?」


그 소리에는 마츠다도 손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코마에다는 눈을 크게 뜨고 히나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는 긴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던 그 얼굴을 말끄러미.


「내가 만났을 때에는 머리카락이 짧고, 눈도 이런 색이 아니었어.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구. 키도 좀 더 작았어. 1년 전 정도.……입학식 전날에 만났거든. 분명, 코다카 고등학교의 교복이었다고 생각해. 아주 조금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지만, 다시 한 번 사진이든 뭐든 보게되면 확실히 알 수 있어. 그의 데이터가 있다면 보여주지 않을래?」


안달난듯한 코마에다가 다그쳐오기에 마츠다는 무심코 아무 말도 하지 못한채 침묵하고 말았다. 코마에다가 말한 특징은 마츠다가 처음 만났을 때의 히나타와 거의 일치했다. 더욱이 출신 학교의 이름까지 맞춘 부분에서, 코마에다가 적당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게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마츠다는 잠시 고민한 끝에 그 자리의 정리를 코마에다에게 맡기고, 자신은 책상 안에서부터 히나타에 관련된 자료를 꺼냈다. 수술 후에 관찰해온 수많은 데이터에 파묻혀 본래 그 자신에 대한 데이터는 겨우 종이조각 몇 장 분량밖에 발견되지 못했다. ――아니, 원래부터 이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트와 이불 커버를 바구니에 넣고 히나타가 입었던 옷과 자신의 코트도 일단 거기에 팽개친 뒤, 코마에다는 마츠다가 전달해온 자료로 눈을 돌렸다.

거기에는 한 인간의 프로필이 늘어져 있었다. 붙어있는 사진에는 경계하고 있는듯한, 겁내는듯한, 그런 눈을 한 남학생이 비치고 있다. 지금 침대에 앉아있는 그에게서 받는 인상과 크게 다른 것은, 길게 자란 머리카락이나 색깔이 변한 눈의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사진 속의 그에게선 표정이 읽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확신했어. 틀림없어. 그야.」


분명하게 낯이 익은 모습이었기에, 코마에다는 자신을 갖고 단언했다.


「이름, 역시 있었네. 휴가군인가.」


코마에다가 프로필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하면,


「……제대로 읽어. 다만 절대 입밖에 내지 마라.」


라고, 마츠다가 포기한 듯한 말투로 이름이 적힌 란 위를 가리켰다. 후리가나에는 「히나타」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명령대로 소리를 내는 것은 하지 않고 코마에다는 마음 속으로만 그 글자를 중얼거렸다.

프로필에는 특이한 부분은 아무것도 없고, 학력도 극히 보통에, 병력의 란에는 특히 없다고 적혀 있었다. 만약 그가 원래부터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 마츠다의 치료를 받는 것이라면 이곳에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을 리가 없었다.

거기까지 눈으로 읽어도 마츠다는 자료를 뺏어들려고 하지 않았기에, 코마에다는 낮은 목소리로 마츠다에게 물었다.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뭔가 엄청나게, 싫은 예감이.


「이거, 왜 나에게 보여주는 거야?」

「네가 보여달라고 했잖아. 왜 이렇게나 함께 지내놓고 지금까지 눈치 못챘던 거냐, 얼간아」

「눈치챌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내가 만났을 땐 평범한 인간이었단 말야.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있었고, 환자라는 느낌도 아니었어.」


1년 전에 만났던 때의 일을 회상하며 코마에다는 강하게 반박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면 기억해냈을지도 모르지만, 그 때 전차 안에서 만났던 것은 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것에 비해, 코마에다가 그 날 밤 만났던 『그』는 마치 말을 잃은 유령과도 같았다. 그 강렬한 첫인상 탓에, 지금까지 그 가능성조차도 생각지 못했다.


「전부 이해했어……이건 그를 치료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아냐. 그를 망가뜨린 프로젝트인거지.」


지긋지긋하다는듯 내뱉고 자료를 내팽겨친 코마에다는 날카로운 눈으로 마츠다를 노려봤다. 코마에다도, 마츠다를 원망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다른 팀에서 돌아온 히나타에게 상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마츠다도 똑같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고, 가끔씩 갈등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폭발된 감정을 완전히 억누르는 것은 할 수 없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그 날 밤, 코마에다는 마츠다를 떠보기 위해서 『인체실험』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프로젝트 룸에 초대받고부터는, 실제로 그가 이곳저곳을 건드리고 있는 것을 목격해왔다. 그러나 설마 이렇게까지 끔찍한 일에 손을 대고 있었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마음 속에 가라앉히고 있던 감정에 불이 붙어, 어두운 색으로 불타올라갔다. 코마에다의 눈동자에 그 웅덩이처럼 고여있던 증오가 비치고 있는 것을 보고, 마츠다는 각오를 정했다.


「……이 녀석은 반년 전에 여기서 뇌 수술을 받았다. 눈의 뒤쪽으로 쑤셔넣은 도구로 뇌를 휘젓는, 그런 수술이지. 네가 전에 이 녀석과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모르지만, 수술 전 이 녀석은 불안과 긴장을 남들보다 배로 끌어안고 있는 타입이었다.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말이지. 수술에 의해서 그것들이 나아지는 것이 기대되고 있었어. 그 결과 생겨난 것이 이 녀석이야. 수술이 실패해서, 이렇게 여기서 돌봐주고 있었단 소리다.」


담담하게 늘어놓은 말에 거짓은 하나도 없다. 언제나 섞어넣던 신랄한 농담도 더해지지 않았다. 코마에다는 그 말이 진실임을 알아보고, 마츠다를 노려보며 아까보다도 더 낮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다시 한 번 물을게. 왜 나한테 그걸 얘기해주는 거야?」

「말할 예정이었으니까다.」


마츠다는 기죽지 않고 즉답했다.

각오라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때에 정했을 터였다. 위험이 미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 분명했던 인체실험. 리스크는 모두 학원 측이 갖는다――그렇게 들었어도, 마츠다는 줄곧 죄의식을 짊어지고 있었다. 이미 망가뜨려놓고, 이제와서 지킨다니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지만, 마츠다 나름대로 그를 이 이상 망가뜨리지 않도록 전력을 다하려던 셈이었다.

코마에다를 이 프로젝트에 끌어들이면서 마츠다의 고뇌는 심화되고 있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구원이 되고 있었다. 특히 지금 그가 보내고 있는 규탄하는 듯한 눈은, 마츠다가 무엇보다도 구하고 있던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게 된 히나타에게 의존하게 될 때마다, 자신은 용서받아서는 안 된다, 원래라면 심한 증오를 받아야 마땅한 인간인 것이라고 스스로 타일러 왔으니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어왔던 프로젝트를 회상하면서 마츠다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악몽 같은 기억만이 잔뜩 되살아나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콜록 콜록 기침하고 있는 히나타에게 다가가서 그 등을 어루만지며, 마츠다는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이 녀석의 재수술이 결정됐어. 다음주다. 이번엔 전보다도 화려하게 하게 될 거다. 두개골에 드릴로 구멍을 뚫는 타입으로 말이지. 리스크는 지난 수술 이상으로 높아. 최악의 경우엔 죽는다. 최고의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이 녀석은 이 녀석이 아니게 돼」


그러니까 너에게는 말할 작정이었다――. 그렇게 말을 끝맺으면, 코마에다는 주먹 쥔 손을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 태연한 어조로 마츠다가 사실을 고하는 것을 봤지만, 그 심정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이번 수술에는 나도 참가한다. 최선은, 전력으로 다할 셈이다.」


오늘까지 수없이 회의를 거듭하고 물고 늘어지며 겨우 내놓은 결과였다. 외과팀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고 자신도 전부 책임을 지는 각오로 그 자리에 참가하는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완수하기 위해 수술은 국소 마취하고 수술 중의 환자의 상태를 지켜보면서 진행할 것. 큰 반발을 받은 마츠다는 그것들 모두를 침묵시키기 위한 반박 재료와 증명을 준비할 수 밖에 없어, 밤낮을 책상에서 작업에 몰두해왔던 것이다.

마츠다의 선택이 옳은지 어떤지, 그렇다고 해서 그를 용서할 수 있는지 어떤지, 코마에다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츠다를 믿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코마에다가 해왔던 일이라고 말하면, 고작 아이 돌보기 정도의 것에 불과하니까.

기분 나쁘다, 고 말하며 코마에다는 프로젝트 룸을 나갔다. 마츠다는 자신이 등에 업은 것의 무거움을 재확인하며, 침대 위의 히나타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너는 이걸로 괜찮은 거냐? 네가 되고 싶었던 평범하지 않은 것이라는 건……이런 거였어? 응? 히나타」


입에 담는 것이 금지된 그 이름을, 일부러 입 밖으로 누설시켜 본다. 히나타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란듯이 몸을 떨었지만, 자신을 움직이게 만든 그 말의 의미는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것이, 『그』와 마츠다의 최후의 대화가 되었다.